일하는 여자에게 임신은......
새로운 부서에 발령받고 반년이 채 지나지 않아 그토록 바라던 ‘행복(태명)’이 찾아왔다.
결혼 후 3년째 되는 해였다.
함정 근무 중에 아이를 가지면 육상 부서로 발령이 난다.
임신한 여자 경찰관을 함정에 태울 수는 없는 노릇이다.
무슨 오기인지 임신해서 배를 내렸다는 소리가 듣기 싫었다.
여경들은 함정으로 발령 오면 임신을 한다는 말들에 엮이고 싶지 않았다(사실 그 말이 다 근거 없는 말은 아니었다). 그렇다고 하더라도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닌데 나는 그랬다.
육상 부서로 왔으니 아이를 가져도 된다.
누가 뭐라고 할 사람도 없고 결혼한 가임 여성의 임신은 당연히 축하받을 일이다.
그런데 왜 불편하지?
임신 사실을 보고하기까지 2주 넘게 고민했다.
언제 말씀드리지? 뭐라고 말씀드리지? 발령 오자 마자 임신했다고 하면 싫어하겠지? 내 머릿속은 복잡했다.
제 자리에 앉아 호흡을 가다듬는다. 몇 번의 깊은숨을 내쉬고 나서야 등 뒤에 앉아 계신 계장님께 걸어갔다.
결재를 받으며 “저, 계장님,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이 한 마디를 입 안에서 굴리고 굴려 간신히 꺼내 놓았다.
고개를 돌려 나를 올려 다 보는 계장님의 눈빛이 본론을 재촉한다.
“저 임신했습니다.”
됐다. 내가 해야 하는 말은 끝났다. 다음은 내 몫이 아니다.
축하한다는 말을 들은 것도 같고, 아닌 것도 같다.
썩 좋아하는 표정이 아니었던 것은 기억한다.
그날이었는지 그다음 날이었는지 계장님은 회의 시간 부서원들에게 내 임신 소식을 알렸다.
그 분위기도 애매했던 것 같다. 불편했다.
주수가 늘어갈수록 배가 나오기 시작했다.
임산부가 입는 임부복이 따로 있었지만 최대한 늦게 입었다.
여경들 사이에선 바지를 개조해 입기도 했다.
맨다리를 드러내는 치렁치렁한 원피스의 임부복보다 복제규정 위반이긴 하지만 그 편이 훨씬 나았다.
예정일이 정기 발령 이후였지만 정기 발령에 맞춰 파출소로 발령이 났다.
당시 파출소에는 여경이 네 명 있었는데 그중 두 명이 출산이 얼마 남지 않은 산모였다.
임신한 여경은 산모와 태아의 건강을 위해 야간 근무를 할 수 없다.
그럼에도 임신한 여경들은 의례 경찰서가 아닌 파출소로 발령이 났다.
딱히 부당하거나 불공평한 발령은 아니지만 불편했다.
첫 발령지가 파출소 소속 검문소였지 파출소 근무를 제대로 해 본 것은 아니었기에 이번이야 말로 파출소 업무를 제대로 배워 볼 수 있는 기회이기도 했다.
생각해보니 입사이래 계속 첫 발령이다. 함정, 경찰서, 파출소.
만약 내가 다시 십 수년 전 그때로 돌아간다면 당당하게 임신 사실을 보고할 수 있을까?
여전히 자신이 없다.
여전히 일하는 여자에게 임신은 오로지 개인의 책임이다.
내가 출산을 위해 자리를 비워도 대체인력이 없다. 나의 업무는 남은 사람들이 고스란히 나누어 가져야 한다.
대체 인력이 있다면 임신 사실을 쉽게 알릴 수 있을까?
슬기로운 직장생활을 위해 가족계획은 어떻게 세워야 할까?
만약 후배 여경들이 묻는다면 나는 어떤 대답을 해 줄 수 있을까?
대답 대신 손이나 꽉 잡아주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