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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안지현 Nov 01. 2021

얼굴 반쪽이 무너지며 깨달은 사실

나를 잊지 말아요.

일, 육아, 공부를 병행할 때 나를 아는 많은 사람들이 한 마디씩 했다. 

“왜 그렇게 힘들게 살아? 안 힘들어?” 

나는 안다. 그들의 말이 나를 향한 걱정인 것도, 또 한편으로 질투인 것도 말이다. 

나의 대답은 늘 똑같았다. 

“안 힘든데.” 

그냥 하는 말이 아니었다. 

진심으로 나는 힘들지 않았다. 오히려 즐거웠고 행복했다. 

세 역할 모두 좀 더 잘 해내지 못함이 아쉬울 만큼 괜찮았다. 




그날은 토요일이었다. 

느지막이 일어나 ‘아점’을 먹었다. 평소와 다르지 않듯 주말 아침이라 빵을 먹었다. 

남편이 잼을 발라 토스트 한쪽을 건넸고 나는 한 입 베어 물었다. 

꼭꼭 씹힌 토스트는 주스와 함께 내 목구멍을 타고 넘어갔다. 

그런데 이상했다. 분명 딸기잼을 바른 토스트였는데 단맛이 없다. 

주스를 마시는데 왼쪽 턱 아래로 주스가 주르르 흘러내린다. 


맞은편에 앉은 남편이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한 마디 한다. 

“거울 봐봐. 뭔가 자기 얼굴이 이상해.” 놀란 마음으로 화장대에 앉았다. 

세상에……. 얼굴 반쪽이 무너져 내려 있다. 

움직이려 해도 움직여지지 않는다. 눈을 깜빡여도 왼쪽 눈은 그대로 있다. 

부들부들 떨리는 손으로 조심스레 볼을 잡아당겨본다. 완전한 감각 마비는 아닌 것 같은데 느낌이 이상하다.

병명이 무엇인지 모르지만 일단 병원에 가야 할 각이다. 


다행히 집 뒤에 종합병원이 있어 걸어가도 3분이면 갈 수 있다. 

주섬주섬 패딩점퍼를 입고 목도리를 칭칭 둘러 싸맸다. 

남편이 옷을 입으며 큰 아이에게 말한다. 

“잠깐만 동생하고 있어. 엄마랑 얼른 병원 다녀올게. 엄마가 아픈 것 같아. 잠깐 있을 수 있지?” 

“싫어. 나도 같이 갈래. 동생이랑 둘만 집에 있기 무서워.” 

큰 아이이가 취학 전이니 당연하다. 어린 동생하고 둘만 집에 있어본 적도 없다. 

남편이 아이를 설득하는 동안 나는 이미 운동화를 신었다. 

“괜찮아. 나 혼자 다녀올게. 아이들하고 있어. 지금 병원 가면 감기 바이러스 천지야. 괜히 애들까지 고생시킬 게 뭐 있어?” 


아무렇지 않았다. 

혼자 병원에 못 갈 정도로 아프지 않았다. 

집에서 병원까지 정말 걸어서 3분이면 충분했다. 


바람이 무척 차갑다. 

칭칭 둘러맨 목도리를 한번 더 꽉 조여 맸다. 

바람이 너무 세게 불어 눈물이 나왔다. 

‘내가 만약 잘못되면……’ 


그 짧은 시간 내 머릿속은 수만 가지 가설로 정신이 없다. 병원에 도착했다. 

종합병원은 언제나 사람들이 많다. 신경외과에 접수를 하고 대기실에 앉았다. 누가 볼까 고개를 숙였다. 

이것저것 장치를 붙이고 신경 검사를 했다. 

귀에서 볼로 가는 7번 신경에 문제가 생겼단다. 그

 후로도 한두 번 서 있지 못할 만큼 어지럼증이 찾아오기도 했다. 

양방치료를 마치고 이튿날 한의원을 찾았다. 왼쪽 얼굴 위로 수십 개의 침이 꽂힌다. 

그렇게 석 달간 열심히 치료를 받았다. 




그때 내가 담당한 중국어 특성화 반이 있어서 수업을 빠질 수가 없었다. 

동료 직원들에게는 말하지 않았다. 그냥 목이 좀 아픈 걸로 해 두었다. 

수업은 마스크로 얼굴을 최대한 가리고 들어갔다. 발음이 세고 말하는 것이 어려웠다. 

후배들에게는 솔직하게 이야기를 하고 양해를 구했다. 

우리만 아는 사실로 하고 우리끼리 잘 헤쳐 나가자고 부탁했다. 


마스크를 벗기까지 한 달이 조금 더 걸렸다. 

도서관 수업으로 시간을 돌리기도 하고 중국 영화를 보기도 했다. 

의리 있는 후배들은 약속을 지켰다. 그들은 무사히 졸업했고 지금까지 안부를 전하는 사이가 되었다. 




그 해 1월은 무척 추웠다. 

새해가 되고 나는 올해 좋은 일만 가득하리라 바랐다. 

새해 나에게 이런 일이 생기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내가 집에서 병원으로 걸어가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내가 잘못되면 우리 아이들은 어떡하지? 남편은 어쩌지? 걱정했을까? 

아니다. 


내가 생각해도 참 이상하다. 

나는 그 순간 가족보다 ‘나’를 걱정했다.

 ‘너 참 불쌍하다. 뭐 한다고 이렇게 열심히 살았니? 너 참 안쓰럽다. 앞으로 너 어떡할래?’ 

미치도록 내가 불쌍했고 안쓰러웠다. 제대로 한번 돌아봐 주지 않은 나 자신에게 화가 났다. 

무엇을 위해 무엇 때문에 이리도 정신없이 지내온 걸까? 

밀려드는 후회와 자괴감에 얼굴보다 마음이 더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다짐했다. 

이제는 나를 좀 돌보며 살자고 말이다. 

치료를 잘 받았음에도 후유증이 남았다. 

좌우의 눈 깜빡임 속도가 미세하게 다르고 내려앉은 왼쪽 근육은 2% 부족한 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무표정으로 사진을 찍음 확연히 티가 나는 바람에 그 후로 사진을 찍을 때면 엄청 환하게 웃는다. 

의식적으로 나의 모든 안면근육 조직을 힘껏 당겨 올려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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