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순기능
매번 꾸준히 글을 쓰자는 다짐이 얼마 가지 못하고 흐지부지된다.
언젠가는 내 이름의 책도 출간하고 싶다는 꿈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사실 내 이름이 들어간 책이 이미 출간된 적도 있다.
고등학생 때이다.
김정현 작가의 <아버지>라는 소설이 있었다. 나는 그 소설을 참 인상 깊게 읽었다.
소설은 100만 부 이상 팔리면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출판사에서는 기념으로 '아버지에게 편지 쓰기' 공모전을 열었고 입상작품에 대해 <아버지 전상서>라는 제목으로 책을 출간했다.
내가 고등학생 때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가장 어려웠다.
아빠 하시는 일이 번번이 잘못되면서 빚도 지고 생활비도 없어 정말 깜깜했던 시기였다.
힘든 상황에 대한 모든 원망이 아빠에게 향했다.
우연히 본 아빠의 뒷모습에 미움과 고마움이 뒤엉켜 마음이 참 무거웠을 때 그 소설을 읽었고, 그런 마음으로 쓴 편지였다.
출판 기념회에 아빠와 함께 참석했다.
특별한 경험이었지만 완벽하게 유쾌하지만은 않았던 그날의 기억이 새삼 떠오른다.
시인이 꿈이셨던 아빠는 기계를 다루는 기술자가 되었다.
그 기술자는 평생 기술로 자식들을 키워내셨다.
아빠를 생각하면 엄마를 떠올릴 때만큼 마음이 아리지만 제대로 아빠에게 내 마음을 표현한 적도 없다.
내가 태어났을 때 아빠는 '뼈를 갈아서라도 잘 키울 거야.'라고 하셨단다.
그 말이 어떤 의미인지 엄마가 되고 나니 조금 알 것 같다.
내가 글쓰기에 대해 거부감이 없는 것이 시인이 꿈이었던 아빠의 유전자가 들어있기 때문일 것이라 믿고 싶다. (이 얘기를 쓰려고 했던 것은 아닌데......)
어쨌든 나는 ’ 100일 동안 100장의 글 쓰기‘라는 프로젝트를 통해 83일째 꾸역 꾸역이라도 글을 쓰고 있다. 글이 주는 위로, 사랑, 응원, 치유,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순기능을 가지고 있는 '글쓰기 행위'에 대해 아이들도 나의 유전자가 섞여 있길 바라는 마음에 백백 글쓰기 50일쯤 되었을 때 두 아들에게 제안을 했다.
엄마가 100일 동안 매일 글을 쓰고 있는데, 너희도 동참하면 원하는 것 하나를 선물로 사주겠노라고 말이다. 잠깐 우리 집 룰(rule)을 하나 소개하자면,
우리 집에서 아이들은 선물을 선택할 때 5만 원 이하로만 가능하다.
생일, 어린이날 받을 수 있는 선물의 한도가 5만 원인 것이다. 물론 스킵도 가능하고 소멸 기한은 없다.
그렇기에 아이들은 선물을 고를 때 매우 신중한 편이다.
아이들이 원하는 선물은 대부분 5만 원을 훌쩍 넘는 경우가 많다. 그럴 때는 스킵해 놓은 액수를 합산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번에는 한도가 정해지지 않은 선물을 살 수 있는 것이다.
가히 파격적인 제안이다.
믿기지 않는 듯 아이들은 재차 물었고 확답을 받은 후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글을 쓰고 있다.
오늘로 한 달째니 이 친구들의 목표 의식 또한 칭찬할만하다.(도대체 어떤 선물을 원할지 두렵기까지 하다.) 의도야 어떻든 매일 꾸준히 글을 쓰는 아이들이 대견스러워 물었다.
“정말 하루도 안 빠지고 글을 쓰다니 대단하다. 동력(動力)이 뭐야?”
큰 아들이 씩 웃으며 대답한다.
“엄마~ 이게 바로 자본주의의 힘이지!”
언젠가 백만 원이 훌쩍 넘는 애플 노트북을 사달라길래 안된다고 했더니,
분한 마음에 '자본주의 폐해'라는 주제로 블로그에 장문의 글을 쓰며 나를 압박하던 큰 녀석이다.
자본주의 사회를 사는 우리 아이들이 자본주의가 뭔지 제대로 이해한다면 아마도 엄마인 나보다 훨씬 풍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글쓰기가 자본주의 순기능이 되었으니 어쨌거나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