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th FIWOM_밤이 오면, 누구나 알지만 누구도 모르는
밤이 오면, 불현듯 생각나는 악몽들이 있을 것이다. 주인공 엔젤은 잠을 자려 눈을 감을 때마다, 잔상처럼 그를 따라다니는 엄마의 마지막 모습에 힘들어한다. 이제 막 소년원을 나온 그에게 아빠는 엄마를 대신해 복수할 대상이자, 내재되어 있는 불안감 같은 존재이다. 엄마의 죽음 후 동생과 위탁가정에 전전하면서 살던 엔젤은 출소 후에도 한 곳에 정착하지 못하고 이곳저곳을 떠돌게 된다.
<밤이 오면>은 한 아이의 트라우마가 당사자를 만나게 되면서 발현하는 일들과 그 후 변화하는 모습을 잔잔하게 표현한다. ‘바다’와 ‘가족’을 통해서 엔젤이 나아간다는 점이 독특하고 새롭다. 특히 바다는 가족과의 추억이 담긴 장소이자, 엄마에 대한 그리움을 불러일으키는 매개체 역할을 한다. 가족들과 자주 소풍을 가던 곳이기도 하고, 눈을 감고 잘 들어보면 도로의 차가 지나가는 소리들이 파도 소리 같다는 엄마의 말을 연상시키기도 한다. 가족은 엔젤에게 양면의 감정을 느끼게 해 준다. 아빠는 직면하기 어려운 과거를 자꾸 마주하게 하고, 벗어나고 싶은 인물이다. 하지만 동생은 누구보다 자신을 필요로 하고, 현실에서 구해주고 싶게 한다. 동생과 함께 바다에 가는 장면은 그래서 남다른 의미가 있다. 반복되던 굴레에서 벗어나 이제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동생과 함께해야 하는, 새로운 가족으로서의 출발점을 맞이한다. 그렇기에 결말은 다소 현실적이다. 그가 원하는 복수를 할 수는 없었지만, 자신이 매일 살아가야 할 이유를 바라보면서, 엔젤은 한 층 더 성장한다.
‘대체 왜 다시 집으로 돌아간 거야?’
우리가 무심결에 가정폭력에 노출되어 있는 사람들에게 말하는 또 다른 폭력이다. 영화의 제목처럼, 가정폭력은 누구나 알지만, 그 안의 사정은 누구도 모르는 사실이다. 영화는 가정폭력을 겪은 사람들을 보호하는 쉼터를 제공하고, 그들의 권리를 위해 노력하는 활동가 킷 그루엘을 중심으로 그가 어떻게 여성들을 도와주는지를 카메라에 담는다. 실제 가정폭력의 생존자이기도 한 그는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경찰학교에서 시뮬레이션을 통해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또한 피해자에게 계속 접근해오던 가해자를 경찰이 체포하도록 도움을 주고, 피해자들에게 유리한 증언을 도와주기 위해 증거를 모으기도 한다.
디나 월터스라는 여성은 남편에 의해 지속적으로 폭력을 당해왔고, 아이가 그 모든 과정을 목격하게 되면서 더 큰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는 매번 다시 집으로 돌아갔지만, 마지막으로 피해를 입었을 때는 걸을 수 없을 정도로 끔찍한 부상을 당했고 이제는 법정 싸움으로 번지게 되었다. 이 상황이라면 당연히 가해자가 형량을 받고, 사건은 깔끔하게 종결될 것이라 생각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특히 미국의 경우에는 관할 주의 사건이 아니면 법적 효력이 제대로 발휘하지 않는다는 점, 가해자를 따라간 것이 강제가 아닌 자유 의지였다는 점이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었다. 그러나 디나는 초반 가족 여행을 간다는 가해자의 말에 따라나선 것이었고, 그곳에서 그런 비극적인 일이 발생할 줄은 자신도 알 수 없었다. 다행히도 당시 디나를 응급실에서 치료한 간호사와 주변 인물들의 증언으로 가해자는 다시 형량을 받고 수감되었다. 아이러니한 점은 형량에서 크게 작용한 부분이 폭력이 아닌, 납치라는 점이다.
이 다큐멘터리를 보는 동안 가장 크게 든 생각은 정말 사소한 것들에서 우리가 폭력의 잔재를 눈치챌 수 있는 것들이 충분히 존재한다는 것이다. 수년간에 걸쳐 전 세계적으로 폭력은 꾸준히 발생하고, 해마다 많은 사람들이 가정폭력으로 인해, 그것도 자신이 예상한 방법으로 안타까운 죽음을 맞이하고 있다. 간혹 이를 견디다 못해 가해자를 살해하는 경우 또한 발생하는데, 이들은 오히려 바깥세상보다 교도소 안에 있을 때 더욱 안전함을 느꼈다는 인터뷰는 정말 충격적이다. 디나의 전화로 인해 이상함을 눈치챈 이웃 사람처럼, 우리 또한 주변의 가장 사적이고도, 널리 퍼져있는 폭력의 신호를 빨리 알아차려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