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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r 18. 2021

주방에서의 딜레마

 결혼 전, 부모님 모두 손님 치르는걸 너무 좋아하셔서 항상 요리하느라 집 치우느라 바쁘셨다. 별 얘깃거리나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사람의 온기가 훈훈하게 도는 그 분위기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 식구는 네 명뿐인데 손님들, 친구분들 주려고 하도 요리를 많이 하셨던 덕분에 원하든 원치 않든, 어머니가 하는 요리나 주방 살림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게 되었다. 이 요리는 이렇게 하는 거야-식의 강습(?) 같은 건 없었지만 파 다듬기, 멸치 똥 따기, 마늘 갈아서 소분하기, 등등 사소한 주방에서의 일들을 익혔고 요리 실력도 나쁘지 않아서 그럭저럭 결혼해서도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니 살림이란 만만치가 않은 거였다. 끼니마다 밥을 차리는 것도 차리는 건데 2 식구이다 보니 채소나 식자재를 우리  명에 맞게 소량으로 사면 비싸고,  저렴한 맛에 대용량으로 사면 썩어서 버리곤 했다. *이나 *컬리처럼 새벽 배송, 로켓 배송을  종목으로 삼는 기업들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개인적으로 배송 기사들의 처우 문제, 과로, 블랙리스트 이슈  여러 가지로, 사실 플랫폼 기업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로켓 배송이나 새벽 배송이 너무 편해서 이용할 수밖에 었다. , 채소나 남은 음식을 보관할  비닐만큼 효율적인  없었다. 어느 정도 외부 요인을 차단해주니까 비닐을 쉽게  뜯어 감싸서 넣어버리면 뭐든 신경  일이 없었다. 하지만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편한 주방 생활' 심적인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바쁠 땐 장을 보러 가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아이들은 끼니도 중요하지만 간식도 잘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조금 비었다 싶으면 저녁 7-8시쯤 어플들을 켜서 새벽에 배송이 가능한 물건들을 살펴보고 쉽게 고른다. 우리 집 앞까지 가져다주니까 너무 편하고 좋다. 뭘 먹어야 될지 모르겠을 때도 어플을 본다. 매일 된장찌개만 먹을 수는 없으니까 뭐 특별한 거 없을까 하고 화면을 내리다 보면 특정 어플에서만 판매하는 전국 각지의 빵, 음식, 디저트 등 꼭 필요하지 않아도 장바구니에 담을 수밖에 없는 신기한 물건들이 넘쳐난다. 너무 편한 건 사실이다. 직접 가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이 음식이, 클릭 한 번에 집으로 안전하게 배송되어 온다니! 마*컬리에서 파는 품목들은 가격대가 좀 있다 보니 많이 주문해봤자 한 달에 두 번 정도였는데, 밤새 새벽 배송을 기다리며 잠드는 것만큼 설레는 일도 없었다. 오프라인 매장들에서는 구입이 쉽지 않은 비건 상품, 친환경 상품들도 쉽게 보고 구매할 수 있었다. 어플을 켜서 정독하는 것이 일상 속의 작은 기쁨이 되고 있었다.


 어디 나가서 본격적인 '운동'을 해보진 않은 사람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언제고 약자와 소수자와 연대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나에게 계속해서 거슬리는 문제가 있었다. 주문에 따른 막대한 쓰레기, 그리고 배송 기사들에게 주어지는 가혹한 노동 조건과 처우가 그것이었다. 나 편하자고 누군가의 불행을 자꾸만 가중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자꾸만 과로로 배송기사들이 죽고, 다치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지만 회사 측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계속 주문하고 아무렇지 않게 묵과해도 괜찮은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왜 비닐을 뜯으면서, 택배 상자를 뜯으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게 왜 나여야 하는가. 역시 살림은 여자의 것이라 그런 걸까. 이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최근 한 달간은 위와 같은 플랫폼 업체에 아무런 주문도 넣지 않고 있다. 이것저것 주문하고 싶은 물건들은 많지만 곧 탈퇴할 생각이다. 어쨌든 다 함께 편한 길은 없지 않을까 어렴풋이 결론을 내려본다. 결국 나의 불편만이 당신의 삶을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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