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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Mar 02. 2021

불안하고 아름다운 모녀의 성장통

드라마 지니 앤 조지아(Ginny & Georgia, 2021)

(작품에 대한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엄마는 내가 아프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항상 답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엄마는 내가 먹고 싶은 건 다 만드는 마법사와 같은 요리사였다. 엄마는 내가 언제나 기댈 수 있는 느티나무 같은 존재였고, 기쁜 일과 슬픈 일을 나누고 싶은 첫 번째 사람이었다. 가장 가까운 친구이자, 가장 멋진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런 감정도 사춘기를 지나면서 차츰 소멸되어갔다. 엄마는 크게 달라진 게 없는데 내가 변한 건지 엄마의 흠 같은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엄마는 뭐든 다 알고, 뭐든 다 잘하고 완벽한 사람인 줄로만 알았는데, 아니었다. 내가 어려서 잘 몰랐던 거였다. 내 눈에 뭔가 씌었던 거였다.


 엄마를 향한 나의 사랑이 사춘기 이전에는 100점 만점이었다면, 사춘기 때는 거의 마이너스로 떨어졌다. 나는 엄마가 하는 행동들이 이해되지 않았다. 엄마의 잔소리, 충고, 심지어 엄마의 다정한 손길과 편지, 메모, 따뜻한 한마디, 긍정적이고 부정적인 것과 상관없이 엄마의 모든 것들이 나에게는 그저 스트레스 요인에 불과했다. 모든 게 참견처럼 느껴졌다. 나라면 엄마 같은 엄마가 되지 않을 거란 생각을 많이 했다. 나는 친구 같은 엄마가 될 거야. 나는 참견하지 않을 거야. 나는 잔소리하지 않을 거야. 나는 그렇게 엄마를 부정해 내며 '내'가 누군지 찾아가는 듯도 했다.


 사춘기가 지나고, 엄마에게 큰 교통사고가 났다. 엄마는 꽤 오랫동안 병원에 입원해있었다. 당시 나는 고등학생이었는데 오전에는 0교시 때문에 정말 일찍 집을 나서야 했고, 저녁에는 밤 10시까지 의무적으로 자율학습을 해야 했기 때문에 별로 집에 있을 시간도 없이 정신없이 하루를 보냈던 기억이 난다. 엄마도 아프고, 나도 바쁘고, 아빠는 따뜻한 사람이었지만 하루가 어땠는지, 친구들과의 관계가 어떤지를 묻는 다정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냥 집에 오면 씻고 늦은 간식을 먹고 자거나, 밤늦게까지 라디오를 들었던 것 같다. 엄마가 없는 우리 집은 고요했다.


 시간이 흘러 엄마와 떨어져 14개월여의 시간을 미국에서 보내게 되면서, 먼 거리에서, 엄마에 대한 내 마음을 정리해 볼 수 있었다. 엄마가 나에게 해주었었던 말들, 엄마의 온기, 엄마의 음식, 엄마가 주는, 세상에서 가장 목이 졸리지만(?) 따뜻한 포옹. 일기장 여러 장을 엄마, 아빠에 대한 얘기로 꽉 채웠다. 내가 어떠한 사랑을 받고 자랐는지, 나를 위해 엄마와 아빠가 희생해야 했던 게 무엇이었을까를 생각해보며 울기도 했다. 미국에서의 생활을 끝내고 왔을 때 서로를 향해 느꼈던 그리움만큼 우리는 더 성숙해졌다. 그동안 그리웠던 만큼 배려하고 인내했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 나는 나였다. 어쨌든 '다른' 사람이니까. 그리움이 아무리 컸어도 부딪히고 다투게 되는 포인트는 여전히 같았다. 내가 20대 중반이 되자 엄마는 50대가 되어 갱년기를 보내고 있었다. 항상 누군가를 돌보며 자신의 존재 의미를 찾던 엄마는, 누군가의 사랑과 돌봄과 관심을 원했다. 그제야, 엄마는 나에게 신이 아닌, 나와 같은 인간이 되었다.


pc: imdb

 "지니 & 조지아"는 엄마와 딸의 이야기이다.( 취약한 여성인권, 가정폭력, 인종차별 등의 여러 가지 이슈들이 담겨있지만 이번 글에서는 논외로 하기로 한다.) 지니와 조지아는 모녀 사이로, 엄마인 조지아는 폭력과 성적 학대를 일삼던 양부 때문에 가출해 떠돌이 생활을 하다가 15살 때 임신해 지니를 낳는다. 지니의 생부 자이언과 그의 부모는 부유하고 책임감 있는 사람이었지만, 아이를 뺏길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 조지아는 그 집에서 도망쳐 나온다. 그녀는 청소일을 하면서 지니를 키워보려 하지만, 그걸로는 어렵다는 걸 깨닫고 언젠가 티브이에서 본 불법 포커 도박장을 연다. 하지만 곧 그녀의 불법 행위는 덜미를 잡히게 되고, 혹시나 엄마가 온전치 못하다는 이유로 아이를 빼앗길까 봐 청소일을 맡아주던 호텔의 관리인과 가짜 결혼을 한다. 아이를 지키기 위해서. 조지아는 이후 몇 차례 다른 이들과 연애, 결혼을 하는데 이 모든 관계 속 조지아의 가장 큰 우선순위는 바로 하나, 자녀들이다.


 조지아는 아이들을 지킨다는 가장 큰 신념으로 인생을 개척해 나간다. 자신의 전 남편 케니가 지니를 성추행하자 가차 없이 스무디에 독을 타 살해한다. 그가 죽자 그들은 새로운 동네로 이사를 한다. 텍사스에서 보스턴의 부촌 웰스 베리로. 지니는 하도 이사를 많이 다닌 탓에 사귈 수 없었던 친구들을 사귀고, 남자 친구를 만나고, 웰스 베리의 삶에 만족하는 듯했다. 하지만 조지아의 과거가 지속적으로 가정을 흔든다. 모녀는 서로를 사랑하지만 끔직이도 대립한다. 둘은 분노를 가득 담아 서로에게 말한다. "너는 나고, 나는 너야." "엄마는 나고, 나는 엄마야." 과연 지니는 엄마 조지아와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 조지아는 지니의 행복을 사수할 수 있을까?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된다는 건 어떤 것일까를 거의 항상 생각해보는 요즘은, 엄마와 아빠를 향한 마음이 예전 같지 않다. 철이 들어서 그런 걸까. 나의 부모는 나 한 명을 그들과는 다르게 길러내려고 부단한 노력과 희생을 했다. 나도 부모가 되고 싶다. 아이를 가지고 싶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내가 해낼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이 든다. 부모의 등 뒤에 올라타선 보이지 않던 것들이, 부모의 품에서 떨어져 나와 멀리서 바라보면 보인다. 사실 부모의 등은 그렇게 넓지 않았다는 것, 사실 그들은 완벽하지 않다는 것, 가라앉거나 떠내려가지 않도록 엄청난 힘으로 물장구를 치고 있다는 것. 겉으로 백조처럼 곧고, 번듯한 가정을 가지기 위해 엄마 아빠가 쉼 없이 쳐야 했던 물장구가 이젠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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