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 부모님 모두 손님 치르는걸 너무 좋아하셔서 항상 요리하느라 집 치우느라 바쁘셨다. 별 얘깃거리나 특별한 행사가 없어도 사람의 온기가 훈훈하게 도는 그 분위기를 좋아하셨던 것 같다. 식구는 네 명뿐인데 손님들, 친구분들 주려고 하도 요리를 많이 하셨던 덕분에 원하든 원치 않든, 어머니가 하는 요리나 주방 살림을 어깨너머로 보고 배우게 되었다. 이 요리는 이렇게 하는 거야-식의 강습(?) 같은 건 없었지만 파 다듬기, 멸치 똥 따기, 마늘 갈아서 소분하기, 등등 사소한 주방에서의 일들을 익혔고 요리 실력도 나쁘지 않아서 그럭저럭 결혼해서도 재밌게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막상 결혼하고 보니 살림이란 만만치가 않은 거였다. 끼니마다 밥을 차리는 것도 차리는 건데 2인 식구이다 보니 채소나 식자재를 우리 두 명에 맞게 소량으로 사면 비싸고, 또 저렴한 맛에 대용량으로 사면 썩어서 버리곤 했다. 쿠*이나 마*컬리처럼 새벽 배송, 로켓 배송을 주 종목으로 삼는 기업들에 반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개인적으로 배송 기사들의 처우 문제, 과로, 블랙리스트 이슈 등 여러 가지로, 사실 플랫폼 기업들을 신뢰하지 않는다.) 로켓 배송이나 새벽 배송이 너무 편해서 이용할 수밖에 없었다. 또, 채소나 남은 음식을 보관할 때 비닐만큼 효율적인 게 없었다. 어느 정도 외부 요인을 차단해주니까 비닐을 쉽게 툭 뜯어 감싸서 넣어버리면 뭐든 신경 쓸 일이 없었다. 하지만 환경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 '편한 주방 생활'에 심적인 제동이 걸리기 시작했다.
바쁠 땐 장을 보러 가는 것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특히 아이들을 키우는 엄마들이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아이들은 끼니도 중요하지만 간식도 잘 챙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냉장고가 조금 비었다 싶으면 저녁 7-8시쯤 어플들을 켜서 새벽에 배송이 가능한 물건들을 살펴보고 쉽게 고른다. 우리 집 앞까지 가져다주니까 너무 편하고 좋다. 뭘 먹어야 될지 모르겠을 때도 어플을 본다. 매일 된장찌개만 먹을 수는 없으니까 뭐 특별한 거 없을까 하고 화면을 내리다 보면 특정 어플에서만 판매하는 전국 각지의 빵, 음식, 디저트 등 꼭 필요하지 않아도 장바구니에 담을 수밖에 없는 신기한 물건들이 넘쳐난다. 너무 편한 건 사실이다. 직접 가지 않으면 맛볼 수 없는 이 음식이, 클릭 한 번에 집으로 안전하게 배송되어 온다니! 마*컬리에서 파는 품목들은 가격대가 좀 있다 보니 많이 주문해봤자 한 달에 두 번 정도였는데, 밤새 새벽 배송을 기다리며 잠드는 것만큼 설레는 일도 없었다. 오프라인 매장들에서는 구입이 쉽지 않은 비건 상품, 친환경 상품들도 쉽게 보고 구매할 수 있었다. 어플을 켜서 정독하는 것이 일상 속의 작은 기쁨이 되고 있었다.
어디 나가서 본격적인 '운동'을 해보진 않은 사람이지만, 내가 할 수 있는 한 언제고 약자와 소수자와 연대하겠다고 마음을 먹은 나에게 계속해서 거슬리는 문제가 있었다. 주문에 따른 막대한 쓰레기, 그리고 배송 기사들에게 주어지는 가혹한 노동 조건과 처우가 그것이었다. 나 편하자고 누군가의 불행을 자꾸만 가중시키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자꾸만 과로로 배송기사들이 죽고, 다치고, 노동조건 개선을 요구하지만 회사 측에선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한다. 계속 주문하고 아무렇지 않게 묵과해도 괜찮은 걸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일까 생각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억울한 마음도 들었다. 왜 비닐을 뜯으면서, 택배 상자를 뜯으면서 죄책감을 느끼는 게 왜 나여야 하는가. 역시 살림은 여자의 것이라 그런 걸까. 이 감정을 어떻게 정리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최근 한 달간은 위와 같은 플랫폼 업체에 아무런 주문도 넣지 않고 있다. 이것저것 주문하고 싶은 물건들은 많지만 곧 탈퇴할 생각이다. 어쨌든 다 함께 편한 길은 없지 않을까 어렴풋이 결론을 내려본다. 결국 나의 불편만이 당신의 삶을 편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