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Feb 24. 2021

친구와 이별하는 이야기


가장 가까운 친구로 지내는 한 언니가 있다. 언니와는 어떤 얘기든 다 편하게 한다. 누가 나와 가장 가까운 사람이냐-누군가 묻는다면, 남편, 부모님, 내 동생, 아마 그다음이 이 언니일 거다. 언니와 나는 교회에서 만나 친한 사이가 됐다. 사실은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빠른 년생으로 언니가 학교를 1년 더 일찍 들어갔기 때문에 언니라고 불렀고 지금도 왠지 "**언니"라고 부르는 게 더 자연스럽다. 우린 14-5년가량을 알고 지냈지만 크게 다툰 적이 없다. 매일 연락하지 않아도, 오랜만에 연락해서 안부를 나눠도 전혀 어색하지 않다. 언니는 나의 실수를 나의 진심으로 오해하지 않으며, 기쁜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해 주고, 슬픈 일이 있을 땐 같이 슬퍼해주는 그런 사람이다. 언니는 겉모습만 보면 마르고 가냘픈 사람이지만, 누구보다도 튼튼하고 묵직한 느티나무 같은 사람이다. 내가 결혼하게 되면서 나의 고향을 떠나왔기 때문에 예전처럼 자주는 못 보지만 그래도 서너 달에 한 번은 보려고 하는 것 같다.


2010년 초반이었나, 언니는 어떤 시험을 준비하고 있고 나는 대학원에 다니고 있었다. 나는 자주 밤 새 책을 읽고 리포트를 쓰는 것에 많이 지치고 힘든 상태였지만, 그래도 날이 밝으면 뭔가 새로운 에너지를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당시 언니는 피부 질환으로 많이 아파했었는데, 사실 큰 힘이 되어주지는 못하고 있었다. 내가 어떤 사람을 정말 아끼고 좋아한다고 해도, 아픔을 함께 한다는 게 정말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는 걸 그때 깨달았다. 언니는 아픈 몸 때문에 잠을 잘 자지 못했고 굉장히 힘들어했다. 우리는 교회 친구였기 때문에 어찌 됐든 일요일에는 꼭 만났다. 어느 날 예배가 끝나고 식당에서 언니와 함께 밥을 먹으려고 앉아있는데 내 앞에 마주 앉은 언니가 웬일인지 나와 눈을 마주치려 하지 않았다. 내가 무슨 말을 하거나 질문을 해도 언니는 짧게 대답하거나, 그냥 고개만 끄덕거렸다. '무슨 일이 있나?'싶었지만 그냥 그런가 보다 했다. 밥을 다 먹고 일어서려는데 언니가 힘들게 입을 열어 말했다. 당분간 나를 안 보고 싶다고. 나의 마음은 심장이 떨어진 것처럼 쿵- 하고 내려앉았다. 나는 언니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대뜸 언니에게 사과했다. 언니가 아픈데 외면해서 미안해요. 함께 해주지 못해서 미안해요. 언니 그래도 우리 봐야죠. 제가 기도할게요 언니. 무슨 이별하는 연인처럼 우리는 교회 식당 한쪽에서 훌쩍훌쩍 울며 서로를 위로했다. 미안해요. 미안해. 똑같은 말인 듯 다른 말 두 마디만이 계속해서 얽히고설켰다.


습관적으로, 자주 과거로의 여행을 떠나는데, 그때마다 떠오르는 얼굴들이 있다. 함께 있는 게 정말 너무나도 즐거웠는데, 좋은 추억들이 많은데- 그래도 지금은 보지 않는 친구들. 마치 계절이 바뀌면 풍경이 바뀌는 것처럼 내 곁에 있는 사람들도 바뀌는 것 같다. 너무 자연스럽게. 서로 큰 상처를 주고, 받고 아픈 마음으로 돌아서는 경우도 있지만 그냥 서로 최선을 다해도 함께 할 수 있는 시간이 다 되어버린 건지 그냥 그렇게 멀어지기도 한다. 우리는 원하는 게 달랐다. 누군가는 받고만 싶었고 누군가는 주고받고 싶었고 누군가는 그냥 흘러가듯 자연스러운 관계를 원했다. 누군가는 연인처럼 가까운 사이를 원했고 누군가는 가족처럼 모든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어 했다. 누군가는 나에게 더 많은걸 받고 싶었지만 실망하여 돌아섰고, 누군가는 한 때 소중히 여겼던 나의 애정을 사소하고 시시한 것으로 만들어 버렸고, 누군가는 그냥- 너무 바빠서 사라졌다. 그렇게 나는 친구들과 몇 번의 이별을 했다.


내가 사랑하고 사랑했던 친구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마치 내가 친구들의 수만큼 많은 밧줄들을 몸에 감고 당겼다 놨다 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으으으 너무 피곤해졌다. 머리를 다시 굴렸다. 물에 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어딘가로 떠내려가고 있다. 누군가는 나와 함께 많은 거리를 헤엄쳐 간다. 목적지에 다다라 그는 물 밖으로 나간다. 나는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다시금 동동 떠 내려간다. 누군가는 잠시 통성명만 하고 다른 길로 휘리릭 떠내려간다. 우리 모두 다 헤엄치고 있지만, 모두 다른 물줄기로 가고 있다. 처음엔 그냥 다 잡으려고 했다. 어디가. 가지 마. 나랑 있어. 나랑 계속 계속 친구 하자. 나랑 제일 친한 친구가 되어줘. 절대적인 사람이 되어줘. 안돼? 흑, 너무 우울해. 흐흑, 너무 슬퍼. 젖은 눈을 비비며 울다가 우리가 가는 길이 다르다고 생각하니 어느 순간 마음이 편해졌다. 동동. 눈물을 닦고 오늘도 나는 흘러간다.

작가의 이전글 고마 한번 웃어주이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