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Feb 18. 2021

고마 한번 웃어주이소

단상: 주차장 차단기 앞에서

평생 (굳이 따지자면) 서민 아파트에서 살았고, 부모님께서 하셨던 철물점을 가끔 보곤 했기 때문에 철물점의 주 고객인 중년 아저씨들과 대화를 이어가는 것에 별 부담이 없었어서 아파트 경비 아저씨들과도 가깝게 지냈다. 밤늦게까지 좁은 경비실에서 텔레비전을 보고 계시는 모습에 피로가 뚝뚝 묻어나 박카스나 비타민 음료를 사다 드리기도 했다. 지금은 돌아가셨지만, 한 경비원 할아버지가 근무하실 땐 경비실 안에 들어가서 도란도란 이야기도 나누고 그랬었다. 결혼하고 거처를 옮겼는데 지금 집에는 경비 인력이 따로 없다. 대신 과외 수업을 위해 방문하는 학생들의 아파트 입구에서 경비원 분들과 마주친다. 마주쳐야만 한다. 그래야 차단기를 올려주니까. 예전 집에선 주차장 차단기 앞에 서서 "아저씨 00호요~"하면 아저씨가 마치 자동인 것처럼 차단기를 올려주시곤 했는데, 요새 내가 과외하러 가는 두 아파트는 모두 몇 호에 방문하는지, 방문 목적이 뭔지, 핸드폰 번호는 뭔지, 언제쯤 출차하는지를 모두 말해야 한다. 그렇지만 두 아파트 사이에도 차이점이 있다. 매번 입차할때마다 느끼는 건데, 이 차이는 내가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를 다시금 되돌아보게 할 만큼, 나름 인상적인 차이점이었다.


A 아파트는 유력 국회의원이 전입해온다며 언론에서도 크게 떠들었던 고급 아파트였다. 평수가 막 엄청 크고 고급지고 그렇다기보단, 더블 역세권의 신축 대단지 브랜드 아파트였다. 요새 여느 아파트들이 다 그렇듯이, 이 아파트도 주차장에 입차 하려면 반드시 차단기 앞에 잠시 대기하면서 주차증을 받아야만 한다. 최근에는 방문하는 집에 직접 인터폰을 걸어 지금 입차하는 차가 '진정으로' 그 집에 방문하는 게 맞는지 확인하는 규칙을 새로 만들었다. 3년째 똑같은 집에 수업 가는데 꼭 이렇게까지 해야 되나 하는 마음이 자꾸만 들면서 애초에 정들 것도 없었지만 있던 정도 떨어졌다.


 A 아파트의 차단기 옆 경비원 초소에는 항상 한 명의 경비원이 상주하는데, 여러 명이 교대로 초소를 지킨다. 사실 경비원들에 대해서 특별한 인상 같은 건 느낄 겨를이 없었는데 보통은 단순하게 '잘 왔다 가시라'던지 '들어가세요'라던지 '감사합니다'와 같은 그냥 상투적인 인사들을 서로 주고받은 후 나는 차를 끌고 들어가면 땡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독 한 명의 경비원 아저씨는 특이한 태도를 보이셨다. 아저씨는 일단 아무 말씀도 없었다. 내가 말을 하면 그냥 아무 말 없이 주차증을 적은 후 쳐다보지도 않고 검지와 중지 사이에 끼워 넣고 내 쪽으로 내밀었다. 묘하게 기분이 나빴다. 그 아저씨네 집에 놀러 온 것도 아니고 굳이 '안녕하세요, 들어가세요, 일 잘 보고 가세요' 등의 말을 들어야 할 의무 같은 건 당연히 없지만, 마치 나를 없는 사람 취급하는 것 같아서 어딘가 꽁기했다. 고급차를 타고 들어와도 그럴까? 연예인이 방문해도 저럴까? 희한한 생각들을 했다.


B 아파트는 A 아파트 인근에 있는 (지금은 집 값이 많이 올라) 비싼 아파트지만 상대적으로 조금 더 서민적인 분위기의 아파트이다.(달리 표현할 말을 못 찾겠다. 혹시 있다면 지도 편달 부탁드린다.) B 아파트에 수업을 간지는 한 5달 정도 되었는데, 과외 차 방문했다고 하니 주차증을 따로 끊어주지 않고 입구에서 그냥 호수와 방문 목적만 알리고 슝-가면 되었다. B 아파트의 경비원 분들은 상대적으로 나이가 많으셨다. 대부분 70대 이상의 어르신들 이셨다. B 아파트에 들어갈 때 항상 두 경비원 분들 중 한 분을 마주치는데, 한 분은 항상 "금방 나가시죠?" 하면서 차단기를 올려주시고, 다른 한 분은 "자, 가세요!" 하면서 차단기를 올려주신다. 아마 내 얼굴을 기억하고 계신 것 같았다.


세상이 많이 바뀌어서, 누군가는 정이라는 게 많이 없어졌다고도 한다. 한편으론 우리가 예전에는 너무 허물없이 경계 없이 살아왔던 게 아닌가 싶기도 하다. 나는 B 아파트의 경비원 할아버지들이 어딘가 더 정감 가고 좋지만, 지금처럼 많은 것이 변해버린 세상에서는 어떤 감정 소모도 없고 할 일만 프로페셔널하게 딱 해버리면 되는 A 아파트의 경비원 아저씨처럼 행동하는 것이 더 경제적일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난 어쩔 수 없는 옛날 사람인가 보다. A 아파트의 그 경비원 아저씨를 만날 때마다 어딘가 울적한 건 왜일까.





작가의 이전글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의 역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