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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민주 Feb 09. 2021

지극히 개인적인 기록의 역사

부제: 구독자님들 절 받으세요.

안녕하세요. 오늘은 제 글을 읽어주시는 분들께 괜히 말을 걸고 싶어서요.


글을 통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 드러내야 하는가를 고민하곤 하는데요, 항상 개인적인 이야기를 쓰긴 하지만 오늘은 특별히 제 '기록의 역사'에 대해서 써 보려고 합니다. 다들 그러셨겠지만 왠지 숙제가 일기 쓰기라면 쓰기 싫어지지 않나요? 괜히 남이 뭐 하라고 하면 할 준비를 이미 다 마친 상태여도 왠지 하기가 싫은 게 사람 마음인 거 같아요. 일기도 그렇고 독서록도 그렇죠. 그래서 아주 어렸을 땐 기록으로 뭔가를 남기는 게 수고로웠는데, 선생님이 도장 찍어주시고 스티커 붙여주시고 그걸로 상도 주시니까 태도가 조금 바뀐 것도 같아요. 사실 저희 어머니는 뭔가 기록하는걸 굉장히 좋아하시는 스타일이셔서 정말 엄청 적으시거든요? 설교노트, 레시피 노트, 영어 공부 노트 등등. 그걸 제가 닮은 거 같기도 하고요.


초등학교 때까지는 누군가의 칭찬과 스티커를 받으려고 열심히 이것저것 썼다면, 중학생이 되고 나서부터는 나의 마음을 솔직하게 편견 없이 털어놓을 곳을 찾아 빈 종이를 서성거렸습니다. 적어도 종이에 뭔가를 적을 때면 나중에 누가 보든 뭐하든 그 순간에는 솔직할 수 있어서 그게 제일 큰 해방감을 줬던 것 같아요. 자의로 나의 하루를 돌아보기 시작한 게 바로 그때부터입니다.



2002년 제 일기장의 일부입니다. 당시 제 일기장의 이름은 꼬챙이였고 저는 킁킁이라는 닉네임을 사용했는데요, 아마 제가 비염 때문에 숨소리가 커서 킁킁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 같아요. 저렇게 내용을 써놓고 아래에는 그 날 내가 들었던 노래, 그 날의 기분에 따른 노래들을 써놓았습니다. 당시 팝 뽕(?)에 빠져 팝 음악만 들었던 터라 제니퍼 로페즈, 엔싱크, 아론 카터 등의 목록이 쪼르륵 있더라고요. "징챠 재밌어."이라니. 정말 귀엽고 웃기네요.ㅋㅋ


저는 여전히 어떤 것에 대한 제 감상을 적는 걸 좋아합니다. 제 일기장에는 가수, 영화, 모델, 배우, 노래들에 대한 저런 웃긴 평가들이 굉장히 많아요. 대부분 진지합니다.


꼭 BGM을 적어놓는 나. 2010년에 아이티에서 한 달을 지내면서 이런저런 사건들을 기록해 놓았는데 역시나 시간이 흐른 뒤 보니 너무 귀하네요.


성경 말씀이나, 내가 좋아하는 인용구들을 굳이 옮겨 적는 일도 자주 합니다. 마음이 평안해지는 느낌이 듭니다.


그냥 뭘 적어요. 계속 적습니다.(개인적인 내용이 있는 부분은 살짝 블러 처리했어요)


이렇게 2021년 새로운 일기장까지 왔습니다.


처음 브런치를 시작하게 된 건, 끄적이는 걸 좋아해서이기도 하지만 온전히 글로만 '나'라는 사람을 누군가에게 소개하고, 내 생각을 나누고, 보이기 쉬웠기 때문이었어요. 제가 글을 잘 쓰는 사람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저는 제 글이 좋습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나서부터 거의 생각할 짬이 나는 모든 순간에 '이걸 글로 적어볼까?''저걸 글로 적어볼까?'하고 있어요. 좋아요가 하나 더 눌리면 남편과 함께 신나 하기도 하고요.


최근 자기만의 방을 다시 읽었습니다. 마치 브런치의 이 지면이 저만의 방이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저는 이 지면에 뭐든 적을 수 있고, 뭐든 전달할 수 있겠지요(읽어주신다면요). 그렇게 생각하면 마음이 뜨거워지고 웅장해집니다. 어느 때엔 너무 소소하고 사소해서 이걸 '여정'이라고 부를 수 있을진 모르겠지만, 이 여정에 함께 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35살이지만 아직도 어른이 되면 뭘 할지 꿈꾸고 상상합니다. 저보다 나이가 더 적으신 분이든 많으신 분이든, 마음껏 꿈꾸고 상상하는 오늘 그리고 내일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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