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민주 Jan 27. 2021

따뜻한 사람의 의무

남편은 바른생활 사나이다. 보통은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난다. 그는 축구 게임을 좋아하는데, 밤새 하는 타입은 못되고(잠이 많다) 주말 아침 일찍 일어나 게임을 한다. 최근 부담을 느꼈던 회사 업무가 끝나 마음이 편안해졌는지 그는 오랜만에 주말이 아닌 평일 밤에 축구 게임을 켰다.


반면 나는 원래는 새벽이 되어서야 잠자리에 드는 사람임에도, 왠지 그 날은 아침부터 졸리고 피곤했기 때문에 평소보다 일찍 침실로 발걸음을 옮겼다.


나는 내가 항상 눕는 쪽에 눕는다. 두 명이 매일 같이 잠드는 하나의 침대. 난방을 하지만 이불속엔 아직 한기가 있다. 나는 몸이 따뜻하고 온기가 잘 유지되는 체질(?)이기 때문에 이불속에 잠시 들어가 있으면 금방 뜨끈해진다. 남편도 매번 놀랄 지경. 내 배게를 줄곧 베고 뒹굴 뒹굴 하고 있던 중 남편의 자리가 너무 차가울 것 같아 손을 뻗어보았다. 으으 차가워. 남편이 이불속으로 들어왔을 때 따뜻하면 좋겠어서 남편의 자리로 옮겨 누웠다. 남편의 베개를 베었다. 나의 체온으로 침대가 따뜻해졌다.


나의 체온으로 어떤 작은 공간이 따뜻해진다니. 뭔가 차원을 넘어선 마법 같은 일이라고 생각했다. 이불과도 이렇게 온기를 나눌 수 있구나. 나의 따스함이 닿으면 너도 그렇게 되는구나.


남편이 게임을 마치고 침실로 들어왔다. 자기 자리에 누워있는 나를 보고 웃는다. 이불속으로 들어온 남편의 손이 차다. 곧 따뜻해질 것이다. 따뜻한 내가 녹여주니까. 그래. 차가운 손은 따뜻한 손이 녹이는 거다. 따뜻한 손이. 따뜻한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작가의 이전글 평범한 우리가 만들어낸 작금의 세태, 그리고 다윗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