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에 다니고 있거나, 어떤 형태로든 기독교의 설교나 성경의 내용을 접해본 사람이라면 다윗의 이름을 한번 이상은 들어봤을 것이다. 다윗은 지금까지도 이스라엘의 위대한 왕으로 추앙받고 있으며 꼭 이스라엘 사람이 아니어도 기독교인들은 다윗을 굉장히 본받을 만한 성경 속 인물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은 그가 이스라엘을 잘 다스렸기 때문에, 어떤 상황에서도 하나님과 깊은 교제를 나누었던 인물이었기 때문에, 말 그대로 위대하기 때문에(?) 위대한 왕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나는 그의 어떤 큰 업적이나 뛰어난 행적 때문에 그가 위대한 게 아니라, 철저한 회개와 자기반성 끝에 회복을 몸소 체험한 인물이기 때문에 위대하다고 생각한다. 생각보다 잘못을 인정하고, 반성하고 속죄하는 삶을 산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대개는 자신의 죄를 부정하거나, 반복적으로 똑같은 죄를 짓는다.(여기서 죄란, 기독교 교리에서 말하는 원죄가 아니고 범죄를 의미한다.)
다윗은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로 많은 이의 믿음에 본보기가 되어 왔다. 하지만 우리 모두 이미 알고 있듯, 그는 치명적인 죄를 저지른 적이 있다. 그는 유부녀인 밧세바와 동침하였고, 왕의 막대한 권한으로 밧세바의 남편 우리야를 전쟁터로 보내 죽게 한다. 다윗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모른 체하고 있다가 선지자 나단의 책망으로 그제야 자신의 죄를 깨닫고 고백한다. 성경에 의하면, 다윗의 죄로 밧세바와 다윗의 사이에서 낳은 아기는 심한 병에 걸려 죽는다. 후에 다윗의 아들이 다윗의 첩을 강간하고, 그의 재위 기간 동안 크고 작은 전쟁이 끊이지 않는 등 죄에 따른 결과는 너무나도 참혹했다. 범죄는 그것 자체로 하나의 사건이며 종결이 아니라 무수한 결과의 시작인 것이다. 나단의 책망이 있은 후, 다윗은 신하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7일 동안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금식하며 기도한다. 그는 자신의 죄를 치욕스럽게 여겼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알았으며 철저히 회개했다. 그는 가롯 유다처럼 목숨을 끊지도 않았고, 요나처럼 도망치지도 않았다. 그는 자신의 죄에서 얼굴을 돌리지 않았다. 적어도 그의 회개는 진심처럼 '보였다.'
때는 바야흐로 2017년, 나는 우리 교회의 교회학교 부서에서 반을 맡고 있었다(교회학교 부서는 보통 유치부, 초등부, 중등부, 고등부 등 학년 별로 나뉘어 있다.). 한 유명 청소년 사역자의 성추문 기사가 떴다. 그가 담임하던 교회의 학생들을 강제로 추행했다는 내용이었다. 페이스북 등 내가 줄곧 들어가 지켜보던 기독교 신문사와 각종 커뮤니티는 연일 시끄러웠다. 그 사건이 있기 전까지 나는 그를 여러 부흥회와 집회에서 본 적이 있었고 아이들의 반응도 좋았기에 '하나님이 크게 쓰시는 사역자다'라는 생각을 하곤 했었다. 그는 청소년의 성에 대해 이야기했고, 순결에 대해 설교하곤 했다. 그랬던 그가 미성년자를 성추행하고, 합의하는 과정에서 성경을 들먹이고 사실을 은폐하려는 시도도 했었다니. 정말 충격 그 자체였다. 그러던 와중에, 우리 부서를 담당하셨던 당시 전도사님께서 교사 회의 때 그 사역자를 두둔하는 발언을 했다. 그는 그 사역자가 다윗처럼 아픔과 시련 끝에 더 크게 쓰임 받기를 소망한다고 했고, 세상은 꼭 전도사나 목사 등 교역자들의 범죄와 허물에만 혈안이 되어있다고도 했다. 나는 너무 화가 났다. 대체 전도사님의 발언 가운데에 피해자들을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 어디 있느냐, 다윗이 아픔과 시련 끝에 더 크게 쓰임 받은 게 아니고 그는 그의 죄의 대가를 치러야만 했고 그건 정말 혹독하지 않았느냐 어떻게 지금 이 시점에서 그런 걸 바랄 수 있느냐, 등 화가 나서 이런저런 말들을 쏟아 냈다. 다윗의 죄는 '그를 더 크게 사용하기 위해'(구역질 나는 표현이다) 하나님이 주신 시련도 아니요, 한 여성의 유혹 때문에 일어난 피치 못한 사건이 아니고 그가 직접 참여하고 저지른 '범죄'가 아닌가? 내 기억이 맞다면 그 사역자는 그 이후에 별다른 코멘트를 덧붙이지 않았다.
정의당 김종철 의원의 성추문을 기사로 접하고선 하루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 무기력하기도 했다. 성범죄란 무엇일까. 저들에게 여성은 동지조차 될 수 없는 것일까. 추행 기사가 난 후의 국민의 힘, 더불어 민주당의 반응도 너무 해로웠다. 특정 진영에서만 일어나는 문제가 아닌데, 정의당의 존폐를 언급하는 것 자체가 코미디였다. 국민의 힘도 성범죄 나올 때가 됐는데 왜 안 나오냐고 하는 더불어 민주당 지지자의 글을 봤다. 성범죄는 일어나서는 안될 사건이다. 누군가의 삶을 깡그리째 무너뜨릴 수 있다. 유력 정치인들의 잇따른 성범죄에 대한 어떤 반성이나 사과도 없이 당헌까지 바꿔가며 후보를 내는 당이 대체 이 사태에 어떤 코멘트를 덧붙일 수 있단 말인가? 좌파든 우파든, 여성은 동지가 될 수 없는 것이다. 그에게는 다른 진영의 정치인들을 허물어뜨릴 도구가 여성인 셈이다. 피해자를 욕하고 탓하고 가해자를 두둔하는 사람들, 이 사회, 이 분위기, 이 공기. 셀 수 없이 많은 성범죄자들이 어떻게 그토록 (자신들의 범죄에 비해) 작은 형을 받게 되었는지 알 것도 같다. 피해자의 고통은 안중에도 없다. 내가 위에 언급한 저 전도사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니었다. 그 성범죄를 저지른 부흥강사의 삶이 안타깝고, 뭔가 오해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한 건 저 사람 하나만의 생각이 아니었다. 저 사람 하나만의 판단 오류가 아니었다. 그의 발언은 너무나도, 지극히 평범한, 온건한, 보통의 의견이었다. 그저 쉬쉬하고 덮어주고 왜 우리를 박해하느냐고 하면 그만이다. 하지만 그러기엔 우린 너무 멀리 와 버렸다.
다윗이 위대하다고 하기 전에 우리는 그가 어떠한 반성을 했으며, 하나님께선 그의 죄에 대해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를 더 중점적으로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경을 너무 잘 알고 있는 자들의(본인들 피셜) 범죄도 정말 이제는 질릴 정도로 많이 봐 왔다. 대체 위대함에 뭐가 있는 건데. 크게 쓰임 받아서 뭐할 건데. 어차피 당신들 배만 불리는 거 아니야? 성도가 천명, 만 명 모이는 거대한 교회 만들어서 뭐할 건데 그 후에는. 하나님의 뜻이라고 포장했지만 결국 본인의 성취를 위한 정욕 아닌가? 제발 '위대함'의 신화에서 벗어났으면 좋겠다. 겉으로는 인자한 목자 인양 성도들을 구워삶고, 본인이 하나님의 종이라고 표현하면서, 뒤로는 불륜을 저지르고, 여신도들을 꾀어다 희롱하고, 폭력을 저지르는 인간들을 수도 없이 봐왔다. 미지근한 조치와 피해자들을 향한 2차 가해는 너무 당연하게 이뤄졌다. 우리는 무얼 믿고 있는가. 하나님의 정의와 공평이 우리의 삶에는 어떻게 임하고 있는가. 이 글을 쓰는 내내 속이 너무나도 쓰리고 아프다.
"전문직 중 성범죄 1위 직군은 성직자다." ('전문직 성범죄 1위' 어찌하오리까 https://www.newsnjoy.or.kr/news/articleView.html?idxno=2078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