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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an 15. 2024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

정아은, 마름모, 2023

글쓰기 하면 떠오르는 부끄러운 기억이 있다. 중학교 1학년 때인 것 같다. 주기적으로 내야 하는 독후감 숙제가 있었다. 어느 날, 무척이나 쓰기 싫은 날이었을 것이다. 집에 있는 책에서 그대로 베껴서 냈다. 제목은 기억나지 않지만 명작들을 짧게 소개한 책이었던 것 같다. 줄거리도, 느낌도, 원고 분량까지 적당했다. 한번 시도해 봤는데 용케 잘 넘어갔다. 몇 차례 더, 그렇게 숙제를 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선생님이 날 조용히 불러 말씀하셨다. 내가 참 글을 잘 쓰는 것 같다고…. 헷갈렸다.


아, 선생님이 알아채신 거야. 참다 참다 이제야 말씀하신 게지. 기분 나쁘지 않게.

아냐. 혹시 진짜 내가 쓴 글이라고 생각하신 것 아닐까. 칭찬하셨잖아.

두 마음과 싸우다가, 선생님 앞에서 내 얼굴이 달아올랐던 기억이 떠올랐다. 양심을 숨길 순 없는 노릇이지. 뭘 믿고 그렇게 뻔뻔한 짓을 한 거야. 그제야 부끄러움이 밀려왔다.


내가 글쓰기에 재미를 붙인 건, 자잘한 글쓰기 숙제에서 벗어난 대학 시절부터였던 것 같다. 내 마음이 왜 이런지, 글을 쓰다 보면 서서히 가닥이 잡혔다. 내게 일어난 일들을 쓰면서 화가 풀렸고, 정리됐고, 이렇게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늘 글이 먼저 나를 일깨웠지만 실행하는 몸은 느렸다. 결과물이 마뜩지 않을 때면 글쓰기는 슬럼프에 빠졌다. 반복되는 글만큼 지치는 일은 없으니까.

졸업 후 책을 만들어내는 일과 관련된 직업을 가졌지만, 내 글은 쓰지 않았다. 글이랄 게 없이 띄엄띄엄 일기장으로, 결혼 후엔 육아일기로 내 일상이 담겼다.


한참 세월이 흘러 여성 홈페이지 경진대회에서 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일을 그만두고 두 아이를 키울 때였다. 취업을 위한 웹디자이너 과정을 듣고 개인 홈페이지를 하나 만든 게 있어서 응모했던 거였다. 콘텐츠도 디자인도 엉성하기 짝이 없었는데, 운 좋게 수상작 중에 들었다. 시상식에서 심사위원이 말해 준다. 내 글이 좋았다고. 애들이 뛰어노는 놀이터에서 엄마들과 주고받는 이야기, 그 담담한 일상 이야기가 감동적이었다고. 앞으로도 계속 글을 썼으면 좋겠다고 덕담을 건넸던 것 같다. 아마도 처음으로 내 글이 인정받은 때가 아니었나 싶다.




흔히들 얘기한다. 글 쓰는 사람들은 마음속 이야기가 흘러넘쳐 쓰지 않을 수 없다고. 아직 무언가가 덜 채워져 있기 때문일까. 흘러넘치기는커녕, 나는 내 밑바닥 감정의 부유물들을 걸러야 한다. 애써 길어 올려야 겨우 한 편의 글이 완성된다.  


얼마 전, 정아은의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를 읽고 의기소침해졌다. ‘쓰기의 기술부터 작가로서 먹고사는 법까지’ 작가의 리얼 체험이 담겨 있긴 한데 도저히 따라갈 자신이 없다. 이토록 부지런하고 치열한 사람만이 작가가 되는 건가.


사실 글을 잘 쓰고 싶은 마음은 있지만 글 쓰는 법, 이런 책을 선호하진 않는다. 되레 글쓰기에 질려 버릴까 싶어서다. 저자의 한겨레문학상 수상작 <모던 하트>를 읽은 터라 <이렇게 작가가 되었습니다>도 내처 읽었다. 몇 달 전, 운전하다가 우연히 라디오에서 작가의 인터뷰를 들었기 때문이다. 신문 칼럼을 청탁받고 잘 쓰기 위해서 얼마나 노력했는지 말하는 대목이었다. 당연히 잘 쓰는 사람인데, 그는 칼럼은 다른 영역이기에 관련 책들을 쌓아놓고 읽었다 한다.   


그런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했다. 솔직한 경험담이 담겼을 것 같았다. 저자는 말한다.

단번에 잘 쓸 생각을 하지 말라고. 세상에 그런 글 없다고. 일단 초고를 쓰고 수차례 퇴고를 해야 제대로 된 글이 나온다고.

-> 지금까지 쓴 내 글은 과연 몇 번의 퇴고를 거쳤던가. 언젠가 허물어질 모래성 같은 걸 글이라고 축적해 놓은 걸까.


자신의 글에 대해 피드백받는 훈련이 필요하다고. 가능하면 글쓰기 모임에 참여하라고.

-> 누구나 그렇겠지만 나는 내 글에 대해 뭐라 하는 걸 극도로 싫어한다. 글쓰기 모임에 가면 무림의 고수들을 만날 텐데 아마도 그들과 직면하는 순간 내 글은 너덜너덜해질 것이다. 아직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았다는 핑계를 여전히 장착하고 있다.


에세이는 있었던 일을 그대로 주저리주저리 늘어놓 것이 아니라 주제의 메시지에 맞게 개인사를 드러내는 것이 핵심이라고.

-> 에세이 역시 ‘메시지’가 중요하다는 걸 일깨워 줘서 다시금 생각하게 됐다. 난 이제껏 에세이가 뭔지도 모르고 끄적댄 건 아닐까.


물론 이 책은 단순한 글쓰기 교재가 아니다. 어디에서도 접할 수 없는 작가의 경험담과 출판 과정에서 만난 편집인들의 이야기도 담겨 있다. 책을 내기까지 자신의 글이 몇 번이나 까였는지, 슬럼프에 빠져 얼마나 허우적댔는지, 그리고 어떻게 다시 작가의 자리에 다시 앉게 됐는지…. 무려 쟁쟁한 문학상의 대상까지 거머쥔 이도 이럴진대 무명 씨가 작가가 된다는 건 얼마나 힘든 여정일까.


그래도 작가는 용기를 준다. 잘 쓰고 싶은 마음이면 된다고.

“어쩌면 글쓰기란, 잘 쓰고 싶다는 마음과의 싸움이 그 시작이요, 끝인 장르일지도 모른다.

10년 넘게 글쓰기를 업으로 살아왔지만 나는 지금도 이 마음과 싸운다.”


그리고 다시 한번 강조한다.

글쓰기는 양이라고. “글쓰기를 잘하는 유일하고 효과적이고 치명적인 방법은 단 하나, 많이 쓰는 것”뿐이라고.

정도는 없다는 이 말을 붙들고 올해엔 좀 더 부지런한 글쓰기를 해야겠다고 마음을 잡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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