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지 Jun 21. 2024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

황보름, 클레이하우스, 2022

퇴직하면서 주변에 책방이나 할까,라고 물으면 백이면 백 “망한다”는 답이 돌아왔다.

셀럽도 아니고 임대료 걱정 없는 건물주도 아니면서 괜한 꿈 꾸지 말라고 했다.

그래도 계속 기웃거렸다. 작은 서점을 팔로우하고, 가보고 싶은 책방에 찾아가서 주인장이랑 얘기를 나누기도 했다. 내가 읽은 책 이야기도 부지런히 인스타에 올렸다.


지금은 동네책방을 응원하는 사람 정도에 머물러 있지만, 꿈을 버리진 않았다.

내가 왜 책방을 좋아할까? 첫 시작은 아마도 이때부터인 듯하다.


# 따뜻한 동네 책방

아버지의 사업 실패는 우리 가족의 생활공간을 송두리째 바꿔 놓았다. 단칸방이 우리집이라는 사실이 믿어지지 않았고, 도대체 학교를 어떻게 다니라고 한강 다리 건너 낯선 동네로 이사했는지 엄마가 원망스러웠다.


중학교 3학년 추석 명절 무렵이었을 것이다. 모처럼 용돈이 생긴 나는 동생들을 데리고 동네 책방에 갔다. 딱히 필요한 책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 그저 선물처럼 뭔가를 받고 싶었던 모양이다.

책방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익숙한 책 냄새와 밝은 기운이 느껴졌다. 난 동생들이 집에 가자고 할 때까지 탐험하듯 두리번거렸다. 그리고 누군가의 에세이집을 샀다. 주인아저씨가 잘 골랐다고 칭찬해 줬던 것 같다. 아직도 집안이 어려워졌다는 게 실감 나지 않던 나는 우울했고 사춘기를 통과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그날은 행복했다. 이상하게 특별할 것 없는 동네 책방이 내겐 환상적인 공간처럼 다가왔다.


# 서점+출판사+살림집=완벽한 계획?

결혼 전 남편과 나는 출판사 언저리에서 일한 경험이 있다. 철없던 우린 구체적인 계획 없이 장밋빛 미래를 상상하곤 했다.

“나중에 돈을 많이 벌거든(여기에서 막히면 사실 대책이 없다) 3층 건물을 사서 1층엔 서점을 넣고, 2층은 출판사 사무실로 쓰고, 우린 3층에서 살자.”

신혼 초만 해도 난 그럴 가능성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부풀었던 것 같다. 그러나 우린 둘 다 돈 버는 재주가 없었다. 엇비슷하게 게으르고, 돈 안 되는 일만 했다.

결국 서점을 품은 건물주 계획은 마당 있는 단독주택에 살아야지, 다음으로 실현하지 못한 공약(空約)으로 남았다.


# 휴남동 서점이라면

아파트 도서관 지킴이를 하던 지난 금요일, 이상하게 내가 당번인 날엔 사람들이 안 오는 것 같다고 생각하다 책장을 둘러봤다. <어서 오세요, 휴남동 서점입니다>가 눈에 띄었다. 제목은 많이 들었는데, 이 책을 한번 읽어 볼까. 처음엔 작은 책방을 운영하는 사람이 쓴 에세이인 줄 알았는데 소설이었다. 휴남동 서점 주인 영주처럼 나도 베스트셀러엔 그다지 관심이 없었는데 표지 사진이 마음에 들었다. 주말에 읽으면 좋겠다 싶어 셀프 대출했다.


왜 진즉 안 읽었을까. 읽는 내내 행복했다. ‘작가의 말’을 읽고 내가 이 소설을 왜 좋았는지 알게 됐다. <카모메 식당>이나 <리틀 포레스트> 같은 분위기의 소설을 쓰고 싶었다니, 완전 내 취향 아닌가. 더불어 부러웠다. “두 인물이 알아서 내용을 진척시켰고, 신기하게도 다음 이야기가 머릿속에 떠올랐다”거나 “하루 노동량을 초과하면 안 된다는 나름의 규칙 때문에 아쉬운 마음으로 의자에서 일어났나”니. 나는 언제쯤 쓰고 싶은 이야기가 흘러넘치는 경지에 이르를 수 있을까.


자기의 모든 것을 갈아 넣어 일해야 하는 직장을 뿌리치고 나왔는데 원하던 책방을 하면서 소진된다면 얼마나 힘든 일일까. 개인적인 아픔을 겪은 영주는 대책 없이 꿈을 좇아 책방을 연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아니 할 수가 없다. 그러다 따뜻한 이웃을 만난다. 이제 제대로 운영해 봐야겠다고 생각한다. 서점과 인연을 맺은 인물들이 하나둘 구원투수처럼 등장한다. 2년만 해보리라 마음먹었는데 욕심을 내본다. 책을 팔아 임대료를 내고, 맛있는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에게 월급을 줄 수 있는 서점으로 키워낸다. 방황하던 인물들이 책방에 들락거리면서 조금씩 단단해진다. 예전 그 자리로 되돌아가지만 과거 같지 않을 거라는 자신감이 생겨난다. 남들과 같은 궤도를 가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한다.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고리를 끊어버려야겠다고 결심한다. 실패한 사랑 때문에 더 이상 주저하지 않는다. 그들 곁에는 서로를 가만히 지켜보는 따뜻한 눈빛, 연대의 손길이 있기 때문이다.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비단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라 동네마다 휴남동 서점이 생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아울러 서점과 인연을 맺은 인물들이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찾아 뚜벅뚜벅 걸어가기를 응원했다.

부작용이라면, 휴남동 서점 같은 작은 책방을 만들고 싶다는 꿈이 다시 몽글몽글 피어올랐다는 것. 또다시 대책 없이….

매거진의 이전글 어린이라는 세계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