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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pr 23. 2024

어린이라는 세계

김소영, 사계절, 2020

젊은 시절, 잠깐 글쓰기 선생님을 한 적이 있었다.

프랜차이즈 글쓰기 학원 지사를 운영하는 친구의 부탁 때문이었다. 아이 키우느라 시간이 안 될 것 같다고 했는데 일주일에 두 번, 팀 정도만 맡아 달라고 했다. 그 정도면 아이가 놀이방에 간 사이에 해볼 만하다 생각했다.

지역은 우리집에서 멀지 않은 신도시 아파트촌. 아이들을 만나는 건 즐거운 일이니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때만 해도 그룹으로 하는 방문 글쓰기 교실은 아이들 집을 돌아가며 모였다

어느 날, 진지하게 한 친구가 내게 말했다.

“선생님, 저희 집에선 안 했으면 좋겠어요.”

집에 무슨 일이 있느냐고 했더니 자기 집은 좁아서 싫단다. 같은 단지 안에 평수가 작은 아파트에 사는 아이였다.


아이들이 들려주는 이야기는 때로 충격이었다.

“우리 엄마가요, 열심히 공부하지 않으면 나중에 경비 아저씨처럼 된다고 그랬어요.”


이 아이들에게 그렇지 않다고, 어떻게 잘 설명했는지는 생각나지 않는다. 다만, 책을 읽고 글을 쓰면서 다른 사람(설사 부모라도)의 말이 아닌 자신의 생각들이 켜켜이 쌓여 반듯하게 자라길 바랐던 것 같다.


학습지라는 것이 그렇듯, 내가 생각한 교육 방향과 거리가 있다고 느껴질 무렵이었다. 한창 자기 얘기가 하고 싶은 저학년 그룹 시간이었다. 고만고만한 또래들을 교자상에 둘러앉히고 겨우 시작하려는데 여전히 할 얘기가 남아 있는 몇 아이들 때문에 소란스럽다. 자연스럽게 자리를 비켜줘야 할 그 집 엄마가 거실 한구석에서 답답하다는 듯 중얼거린다.

‘선생님이 저렇게 물러서야….’


카리스마 있게 아이들을 휘어잡아야 하는데, 아니면 혼을 쏙 빼놓을 만큼 재밌는 이야기로 아이들을 압도해야 하는데, 나는 그런 선생 상과는 거리가 멀었다. 학부모들의 다양한 요구를 들어주는 것도 피곤했다. 친구에게 힘이 돼 주지 못해 미안했지만 오래 지속하기 어려웠다. 그 당시 난 아이들을 만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어린이라는 세계>를 읽다가 그 시절 내가 떠올랐다. 조금 부끄럽기도 했다.


저자 김소영은 어린이책 편집인을 거쳐 독서교실을 운영하고 있다고 한다. 책을 읽는 내내 나도 모르게 미소 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오랜만에 행복했다.

아, 완전 내 취향이야…. 이런 글을 쓸 수 있다니.


인상적인 것은 아이들의 외투를 입고 벗는 걸 거들어 주는 일이다. 저자는 대접받아본 아이들이 나중에 어른이 되어서도 남을 대접할 줄 안다는 생각에서 아이들 외투 시중을 든다. 팔이 꺾일까 싶어 아이들에게 요령도 가르쳐 준다. 멋쩍어하며 아이들이 외투를 입는 모습이 그려진다. 엄마가 입혀주는 것과 얼마나 다른 느낌일까.


글을 읽으며 되돌아보았다. 운동화 끈을 처음 묶게 된 아이가 “나도 할 줄 알아요, 오래 걸릴 뿐이에요.”라고 말할 때, “괜찮아, 천천히 해.” 이렇게 기다려 주는 어른이었나. 어쩌면 아직까지도 무언가를 대신해 주는 게 엄마의 마음이라고 착각하고 있는 건 아닐까.


작가는 세심하고도 따뜻한 시선으로 어린이들을 대한다. 업무상 만난 어떤 이가 자신의 딸 뻘 된다며 말을 놓겠다고 했을 때 어떤 기분었는지 생각하며 아이들에게 존댓말을 하기로 한다. 아이를 키워본 경험이 없다는 사실 때문에 자신 없어 하기도 하지만, 누구보다 아이들의 마음을 잘 헤아리는 선생님으로, 적당한 거리감을 유지하며 어린이들을 대한다. 더 나아가, 이 어린이들이 살아갈 세상이 지금보다 안전하고 관대하며, 서로를 존중하는 사회가 되기를 바라며 희망을 이야기한다.


“언제나 절망이 더 쉽다. 절망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얻을 수 있고, 무엇을 맡겨도 기꺼이 받아 준다. 희망은 그 반대다. 갖기로 마음먹는 순간부터 요구하는 것이 많다. 바라는 게 있으면 가만히 있으면 안 된다고, 외면하면 안 된다고, 심지어 절망할 각오도 해야 한다고 우리를 혼낸다. 희망은 늘 절망보다 가차 없다. 그래서 우리를 걷게 한다.” (219~220쪽)


어린이 얘기를 접한 게 언제였던가. 어린이라는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어서 읽는 내내 행복했다. 다시 어른의 역할을 생각해 볼 수 있게 해 줘서 더더욱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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