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데이지 Jul 12. 2024

엄마의 그 말은 진심이었을까?

엄마, 잘 다녀올게요

그때가 언제였을까. 초등학교 6학년 여름방학이었을 것이다.

길고 긴 방학이지만 우리 가족은 피서라는 걸 떠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기에 매일 집에서 뒹굴대고 있었다. 심심할 때면, 오빠랑 수영장에 갔을 때 꽤 재밌었는데, 엄마가 처음 사준 오렌지색 수영복이 닳도록 미끄럼을 탔었는데, 그런 생각을 했던 것도 같다.


어느 날 오빠가 해수욕장에 데려가겠다고 어디로 가고 싶은지 고르라고 지도를 내밀었다.

와, 해수욕장이 이렇게 많다고? 해변마다 파라솔이 그려져 있는 지도를 보며 가슴이 설렜다.

하고많은 해수욕장 중에 왜 ‘연포 해수욕장’을 골랐는지는 모르겠다. 아마도 서울에서 너무 멀면 가기 힘들겠지, 싶어서 충청도쯤으로 한정했던 것 같다.


그런데 엄마의 한 마디에 우리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지금 정신이 있냐 없냐, 철딱서니 없이 공부할 생각은 안 하고….”

사실 그때 오빤 고3이었다.

엄마가 그렇게 공부 잔소리를 많이 한 것 같지는 않았는데, 그날은 좀 셌다.

내가 야단을 맞지 않아선지, 난 대책 없이 헛바람만 넣은 오빠를 원망했다.

얘기나 꺼내지 말지, 괜히 좋다 말았잖아….

 



“야, 호텔도 다 예약해 뒀다. 한창 휴가 때라 비싸긴 하네.”

그 시절 공수표를 날렸던 오빠가 올여름 여행을 계획하고 있다. 우리 사형제가 완전체로 여행을 떠나기로 했기 때문이다.


한국-미국-캐나다에 흩어져 사는 형제들이 조카 결혼식 참석차 LA에 모이니 지금이 기회다 싶었다. 일하는 동생들에겐 쉽지 않은 결정이었지만, 이럴 때 아니면 또 언제 함께 하겠냐며 꼬드겼다.    

작년 말, 브런치 글을 쓰면서 우리 사형제가 크루즈 앞에 서 있는 모습을 상상한 적이 있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꿈이 이뤄졌다.

대신 배경은 좀 달라졌다. 알래스카 크루즈 대신 캐나다 밴프의 환상적인 대자연 속이다.


출국을 앞두고 몸과 마음이 분주하다. 엊그제 엄마를 뵙고 왔다.

이번엔 딸 S도 동행했다. 대학교 1학년 한 시절을 함께 살았으니 엄마가 기억하시지 않을까.

엄마는 손녀가 늦게 들어오는 날이면 버스 정류장에서 기다리시곤 했다. 아무리 말려도 집에 식구가 들어오지 않으면 잠을 이룰 수 없다며 그 번거로운 일을 마다하지 않으셨다. 말은 때로 매섭게 하셨지만 사랑하는 마음은 늘 깊었다.


요양원에 들어서자 원장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원장은 어르신이라고 하지 않고 엄마라고 부른다), 누가 온다고 했죠? 딸들이 왔네요. 반가워, 안 바가워?”

“안 반가워!”

잉? 엄마가 안 반갑다고 말한 건 처음이지 싶은데 망설임 없이 반갑지 않다고 하시네.

더 자주 오지 않음에 대한 섭섭한 마음 때문일까. 자꾸만 곱씹어보게 된다. 엄마의 진심이 담긴 말이었을까, 그냥 의미 없이 마지막 말을 그대로 따라 하신 걸까.


엄마는 “푸른 하늘 은하수~ ” 노래를 부르고 계신 참이었다고 한다.

원장이 음료수를 내오며 그 얘기를 꺼낸다. 우리가 오는 바람에 흥이 깨졌나 싶어 엄마에게 그 노래를 불러달라고 청한다.

엄마가 아이처럼 밝은 표정을 지으며 노래한다. 우리도 함께 따라 한다. 어릴 적 손뼉을 엇갈려 치며 불렀던 그 동작을 해보려 했으나 엄마의 팔이 불편하다. 마음이 아려온다.

 

혹시 외손녀를 알아보시지 않을까 싶어 실마리가 될 만한 에피소드를 꺼내 보지만 실패했다. 엄마는 누구라는 이름에는 반응했지만 설마 그 ‘아이’가 저 사람인가 싶어선지 계면쩍어하셨다. 분명 낯설지는 않은데 모르겠다는 표정. 오늘따라 구름이 참 예쁘다고 우리가 가리켰던 면회실 창을 그저 무심히 바라볼 뿐이었다.

 

엄마에겐 형제들을 만나고 오겠다는 말을 하지 않았다. 조금이라도 환경의 변화를 눈치채지 않으셨으면 싶어서다.

당분간은 못 올 것 같다고 미리 말씀드려 봤자 불안해하실 게 뻔하니 그냥 말하지 않는 편을 선택하기로 했다.

그런데 마치 엄마가 우리 속마음을 알아버린 것처럼 무덤덤하게 반응하시니 찔린다.

‘이것들이…. 엄마만 두고 가냐.’ 이렇게 말씀하실 것만 같다.


엄마, 엄마가 아니었음 우리가 이렇게 살아갈 수 있었을까요? 인생의 고빗길에서 엄마의 과단성이 없었다면 리 집안이 제대로 일어섰을까요?

지금도 위로받고 싶은 날이면 “괜찮다, 잘 될 거다” 말씀해 주시던 엄마의 덕담이 그리워요.

엄마, 엄마도 다녀오셨던 태평양 건너 먼 도시들을 사형제가 함께 걸을 거예요. 멀리 있어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이번 기회에 진하게 추억을 남기고 올게요. 엄마 이야기도 많이 나눌 거예요. 지금처럼 건강하게 지내고 계셔야 해요, 엄마….

매거진의 이전글 “닭고기가 먹고 싶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