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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Jun 03. 2024

“닭고기가 먹고 싶어”

엄마가 맛보고 싶은 건 행복한 추억이 아닐까

엄마가 점점 말라간다. 누워 계시거나 휠체어로 잠깐 이동하는 게 전부이니 근육은 점점 사라지고 앙상한 뼈만 남아 있는 듯하다. 휠체어에 편안한 머리받침대까지 설치했지만 엄마는 아직 불안하신지 팔걸이를 붙잡은 왼손에 힘을 다. 당신이 유일하게 힘을 쓸 수 있는 부위다. 그러나 모든 게 조금씩 굳어가는 것 같다. 가장 취약한 곳부터. 다리는 고관절 수술 후 회복되지 못했고, 어깨관절 수술을 받은 오른쪽 팔은 욕창으로 고생할 때부터 증상이 나타났다. 처음엔 모로 누워 계셔서 불편하신가 했는데 점점 힘이 빠졌다. 손가락과 팔꿈치에 아쉬운 대로 보호대를 댔지만 그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모르겠다.


엄마는 이제 불편한 틀니도 끼지 않으신다. 그나마 식사할 때만 겨우 끼셨던 것도 바로 빼버리시는 통에 아예 권하지 않는 모양이다. 얼굴에 살이 빠지니 그렇지 않아도 헐거운 틀니가 자꾸만 덜컹거릴 수밖에. 그래선지 엄마 얼굴이 조금은 낯설게 느껴진다. 위쪽 틀니가 있던 자리가 움푹 패어 있는 듯하다.

“그러게 엄마, 사탕 그만 드시라고 했잖아? 이가 없어서 어떡해?”

우스갯소리인 줄 아는 엄마가 환하게 웃는다.


문제는 음식이다. 당신의 이는 아랫니 몇 개밖에 없으니 드시는 음식도 잘게 잘라 드려야 한다. 그게 무슨 맛이 있을까. 매 끼니 비슷한 맛일 것이다. 그런 엄마가 지난 면회 때 닭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셨다. 원장에게 얘기하니 이가 없어서 많이 드시지 못할 거라고 안타까워한다. 하지만 동생과 나는 안다. 먹고 싶은 마음이 어떤지. 식도암 투병 끝에 돌아가신 아버지를 떠나보내고 뒤늦게 후회했다. 더 권해드릴 걸, 드시고 싶어 하던 음식 한 이라도, 한 숟갈이라도 더 드릴 걸. 어쭙잖은 간병 한답시고 우린 걱정부터 했다. 그러다 저번처럼 다리 붓는다, 탈 나신다, 몸이 더 축나신다, 분명 못 드실 테니 죄다 버려야 할 것이다….  


<오늘은 좀 매울지도 몰라> 드라마를 보고 아버지가 생각나 뒤늦은 눈물을 흘렸다. 아버지는 드라마 속 주인공 ‘다정’처럼 그렇게 간절히 먹고 싶다는 표현을 하지 않으셨다. 그래서 더 안타까웠는지도 모른다. 암투병을 하시면서도 자식들한테 아프다, 먹고 싶다, 힘들다는 말씀을 일절 하지 않으셨던 아버지. 우린 엄마만이라도 미리 살펴 최선을 다하리라 마음먹었다.


엄마가 말씀하신 닭고기가 간장베이스 치킨임을 알고 동생은 우리가 면회를 마치는 시각에 맞춰 미리 주문해 두었다. 갑작스러운 치킨 배달에 요양원 식구들이 술렁인다. 치킨의 냄새는 또 얼마나 강력한가. 모르긴 해도 요양원에서 치킨은 오랜만이었을 것이다. 원장은 엄마에게 치킨을 잘게 잘라 드렸더니 한참 씹어 드셨다고 카톡을 보내왔다. 덕분에 다른 어르신들까지 잘 드셨다는 인사도 잊지 않았다. 엄마가 예전의 그 맛을 기억하실까. 딸이 친정에 온 날, 저녁 메뉴가 마땅치 않은 날, 함께 축구를 본 날 먹었던 그 치킨의 맛을. 그리고 행복했던 순간들을.




이번 면회 때 엄마는 스물여덟 살이었다. 면회실에 들어서는 우리에게 원장이 귀띔해 주었다. 엄마에게 가족을 물으니, 엄마의 엄마 아빠가 2층에 산다고 하셨다. 결혼하셨냐고 물었더니 수줍은 듯 고개를 젓는다. 엄마의 표정이 밝다. 행복해 보인다.


엄마는 어느 시절에 머물러 계시는 걸까. 일본 히로시마에서 인력거 노동자로 사셨던 외할아버지는 원자폭탄이 떨어졌던 그날 돌아가셨다. 사전에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거라는 정보가 있었는지, 외할아버지는 가족들을 먼 시골로 대피시켰다고 한다. 엄마가 아홉 살 때의 일이다. 엄마가 말한 2층은 히로시마에서 살았던 그 집일까. 엄마는 스물여덟이 아니라 외할아버지가 살아 계시던 여덟 살 그 시절을 추억하는 게 아닐까. 외할아버지가 하루 종일 땀으로 뒤범벅된 채 일한 돈으로 한아름 과일을 사들고 들어오던 때, 몸은 힘들어도 내 자식들 대학 공부까지 시키겠다고 호언장담하시던 그때 말이다.


그래서인지 엄마는 “좋아”라는 말을 여러 번 하셨다. 캐나다에 사는 큰아들과 영상통화를 하시면서도 “건강해 보여 좋다”라고 멀쩡히 말씀하다. 쇠락하는 당신의 육체와 달리 엄마는 놀라울 정도로 평온해 보인다. 아이러니한 일이다. 엄마의 강점, 한없이 긍정적인 당신의 성품 덕일 것이다. 치매에 걸린 가여운 엄마가 아니라 당신이 돌아가고 싶은 시절에 머문 엄마의 행복한 모습을 본다.


동생은 엄마와 함께 살던 때, 치매 초기였던 시절, 엄마와 말다툼하고, 그러다 화해하고, 함께 치킨을 먹었던 그때가 떠오르는지 말없이 눈물을 훔친다. 그러면서 웃는다. 엄마가 좋아 보여서 좋다고.


엄마가 출입문에서 우리를 배웅한다. 엄마의 서운한 표정이 잡힌다. 엄마의 상태가 좋다는 신호다. 원장이 우리를 가리키며 누구냐고 묻는다. 엄마가 그제야 ‘딸’이라고 말한다. 원장이 재빨리 엄마의 기분을 살피고 농을 던진다.

“엄마, 나는 안 가요~”

모두의 엄마인 엄마. 당신은 스물여덟이어도 엄마라는 단어를 단 한 번도 거부한 적 없는 엄마. 우리, 또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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