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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May 08. 2024

엄마의 기도소리가 그립다

온마음을 다해 청하시던..

엄마는 내 편지를 좋아하셨다.

분명 학교에서 억지로 쓰라고 해서 쓴 어버이날 편지였을텐데, 엄만 매년 비슷한 그 문장들을 읽으시면서 행복해하셨다.

그 생각이 진즉 났으면 편지를 써가는 건데..

어제, 엄마를 뵈러 요양원에 갔다. 그래도 어버이날 카네이션은 기억하시지 싶어 작은 꽃바구니 샀다.

요양원 거실에 엄마가 나와 계신다.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보여드리니 활짝 웃으신다. 오늘은 컨디션이 좋으신 것 같다.


휠체어를 밀어주는 간호사 선생님이 엄마에게 묻는다.

“엄마, 좀 전에 뭐 드셨지?”

엄마는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커피 드셨잖아.”

이제 생각났는지 엄마가 미소 짓는다. 카페인 효과 덕분일까. 달달한 믹스커피 맛이 좋으신지 엄마가 자꾸만 입맛이 다신다. 일찍이 믹스커피에서 아메리카로 갈아타셨던 ‘세련된’ 우리 엄마는 다시 믹스커피가 그리우셨던 모양이다.


엄마는 어버이날 노래(어머니의 마음)를 좋아하셨다. 동생이랑 “낳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노래를 시작하니 엄마가 자연스레 박수를 친다. 엄마가 특히 좋아하시던 대목 “진자리 마른자리”에서는 잠시 눈시울이 붉어지시는 듯했다. 어릴 적, 동생들과 이 노래를 합창하면 엄마는 꼭 한마디 하셨다. “그랬지. 너희들 키울 때 진자리 마른자리 갈아 뉘었지.” 그 얘기를 들을 때면, 알 수 없는 엄마의 자신감이 느껴지곤 했다. 온 정성을 다해 너희들을 키웠다는 듯한.

이제 더 이상 엄마의 코멘트를 들을 순 없지만, 그때의 이미지들은 생생하게 남아 있다.


엄마는 당신의 기억이 희미해질 때까지 매일 새벽, 가족들을 위한 기도를 하셨다. 어쩌면 기도는 당신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사랑이었을 것이다. 그 기도가 얼마나 세세한지 모른다. 하느님, 우리 손자 180cm까지 크게 해 주세요, 같은. 나는 엄마에게 “아니, 엄마. 하느님 힘드시게 뭐 그런 기도까지 해?” 그랬지만, 아들의 키가 쑥 자라자 엄마의 기도 덕이려니 생각하기로 했다.

 

불교와 무속신앙을 왔다갔다하던 엄마는 가세가 기울자 종교를 바꿨다. 풍요로웠던 시절, 점을 보러 가면 온 가족이 무탈하다, 잘 된다는 말에 힘을 받으셨는데, 망하고 나니 도통 희망이 보이지 않는 얘기만 들었던 모양이다. 누군들 몰랐을까. 얼굴에 시름이 가득했을 터이니. 아무튼 한푼이 아쉬웠던 때이니 복비도 아까웠을 것이다. 마치 새로운 인생을 살 듯 엄마는 교회에 나가셨고, 누구보다 열심히 신앙생활을 했다.  


엄마는 매일 자식들을 위한 기도로 하루를 시작했다. 일찍 눈을 뜬 날이면 엄마의 기도소리가 들리곤 했다. 힘주어 “믿습니다”라는 그 뉘앙스가 우스워 킥킥댄 적도 있었지만 고백건대 엄마의 기도는 내게 큰 힘이었다. 시험을 앞둔 어느 날, 대학 원서를 쓰던 날, 합격 소식을 기다리던 날….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온 마음을 다해 바라고 청했다. 그렇게 사 남매는 엄마의 사랑과 기도의 덕을 입었다.  


엄마는 어제도 여러 번 “다 잘 될 거야.”라고 말씀하셨다. 마치 이렇게 밝게 살아, 라고 보여주시려는 듯 많이 웃어 주셨다.

엄마는 핸드폰 화면 속 오빠를 단박에 알아보았다. 우리가 놀라자 어떻게 아들 얼굴을 몰라보겠냐며 기분 좋게 영상통화를 하셨고, 보이지 않는 ‘통통한’ 사위의 안부까지 챙겼다. 옆에 있는 큰딸 작은딸에게 금방 동생들이라고 하셨지만, 그건 아무런 문제도 아니었다.




어제 본 엄마는 꼭 어린아이 같았다. 엄마가 얼마 전 침실 벽지에 그려진 고양이랑 한참 동안 뭐라고 말씀하셨다던데 다시 동심으로 돌아간 모양이다.   

뜬금없이 엄마가 “나도 신발 신고 돌아다니는 거 좋아하는데….”라고 말한다. 어린아이의 “나… 좋아하는데..”엔 얼마나 많은 마음이 담겨 있던가.

갑작스러운 엄마의 혼잣말에 마음이 무너진다. 당신이 걸을 수 없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타까우시면 그런 말씀을 하실까, 그렇게 부지런하고 재빨랐던 엄마가 얼마나 답답하실까 싶어 마음이 아팠다.


동생이 얼른 화제를 바꾼다. 뭐 드시고 싶은 것 있느냐니까 엄마가 부끄러운 듯 말씀하신다. 닭고기가 먹고 싶어.

“아, 엄마 간장 양념 치킨 좋아하셨지? 엄마, 다음에 올 때 꼭 사 올게. 친구들이랑 같이 드실 수 있게 많이 사 올게.”

동생이 센스 있게 대꾸한다. 그냥 닭고기 말고 치킨, 그게 맞나 보다. 엄마가 웃는다. 모처럼, 돌아서는 우리들의 발걸음도 가볍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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