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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Apr 16. 2024

엄마를 웃겨라~

요양원 면담 미션

“엄마, 왜 기분이 안 좋으세요?”

엄마가 입을 꼭 다문 채 웃지 않으신다. 자꾸 시선이 엉뚱한 데로 향한다.

요양원에 들어설 때부터 그랬다. 우리를 보자마자 활짝 웃으시던 엄마가 오늘은 왠지 뜨뜻미지근한 반응이다. 혹시 못 알아보시나 싶어 마스크를 벗었는데도 한번 미소 지어 주시곤 다시 무표정 상태다.


이럴 땐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다. 캐나다에 있는 오빠와 영상통화를 연결해도 힐끗 보시곤 집중하지 않는다.

예전의 엄마 모습을 유추해 보면 뭔가 마음에 안 드는 게 있으셨던 모양이다.

건강 상태가 나빠 보이진 않는다. 깨끗이 목욕시켜 드리고 보습제까지 듬뿍 발라드렸는지 엄마의 피부가 촉촉하다.


하는 수 없이 아무 말이나 던진다.

엄마, 목욕하고 나서 시원한 거 드시고 싶은데 아무것도 안 줬어?

아님, 누가 아프게 팔을 벅벅 문질렀나?

그것도 아님, 엄마가 소변 튜브 빼려고 해서 혼났어?


엄마는 아기처럼 모든 질문에 고개를 끄덕인다. 그중에 시원한 음료수에 더 큰 반응을 보인 것도 같다.

괜히 옆에 있는 동생을 나무란다. (마치 아이들이 넘어졌을 때 땅바닥을 두들기며 뭐라 하듯이 말이다.)

“넌 왜 엄마 간식 제대로 안 챙겼니? 엄마가 드시고 싶었다잖아.”


과일값이 워낙 올라 뭘 살까 고민하다 오늘따라 빈손으로 왔더니 낭패다.

“엄마, 지금 나가서 시원한 것 좀 사 올까? 아님 다음에 올 때 사 올까?”

엄마가 조그만 목소리로 다음에 사 와,라고 말씀하신다. 엄마의 기억은 많이 소실됐지만, 이럴 때 엄마는 진짜 우리 엄마다. 딸들 번거롭게 하지 않으려는 우리 엄마.  


요양원에 매달 내는 간식비 3만 원으로는 사실 풍족하게 어르신들을 챙기긴 힘들 터이다. 그래서 보호자들은 면회 갈 때마다 제철 과일이나 간식을 챙긴다. 친구분들과 함께 드실 수 있도록 넉넉하게 산다. 그런데 어떤 메뉴는 이게 참 불편하다. 원장은 신경 쓰지 말고 엄마 드실 것만 챙기라는데 그게 쉽지 않다. 지지난 면회 때도 엄마에게 갈비탕 사간다고 했는데 엄마 것만 테이크 아웃하기 뭐해서 그냥 갔다. 그날 면회 때는 못 되게도 엄마가 그 약속을 잊으셨길 바랐다.    




엄마의 기분이 조금 나아지신 듯해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계속 집중하진 못해도 띄엄띄엄 들으실 것이다.  

엄마, 엄마가 낙상하신 지 벌써 1년이 지났어요. 세월 참 빠르죠? 작년에 벚꽃 구경 다녀오신 다음에 넘어지셨잖아요.

이렇게 휠체어에라도 앉으실 수 있는 게 얼마나 다행인지 몰라. 감사해요. 그리고 애쓰셨어요.

지난달 엄마 생신 때, 요양원 선생님들이 너무 고마워서 양말 선물세트 돌렸어요. 미리 말씀 안 드렸지만 엄마도 좋아하실 거라고 생각했어요. 잘했죠?

엄마가 반응한다. 그래도 아예 관심을 끊으신 건 아닌 것 같다.   


어쩌면 기분의 문제가 아니라 그냥 피곤하셔서 그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욕도 하셨겠다 눕고 싶은데 불편하게 휠체어에 앉힌 게 마음에 안 드신 것 같기도 하다.

우린 여느 때보다 빨리 면회를 끝냈다.

요양원 원장은 걱정하지 말라고 톡을 보내왔다. 우리가 간 다음에 웃기도 하시고 즐거워하셨다고, 컨디션이 그때그때 다르다고.

그렇담 다행이다. 엄마를 웃겨야 활짝 웃는 사진을 형제들과 공유할 텐데, 아무튼 이번 달 미션은 실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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