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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Feb 19. 2024

엄마의 지청구

연탄불 때문에 된통 혼나다

지난 금요일, 동생과 엄마를 뵙고 왔다.

평소처럼 요양원 출입문 앞에서 손세정제를 뿌리고 중앙 휴게공간을 거쳐 안쪽 제일 깊숙한 방에 들어가려는데 “엄마, 왔나 봐요!” 하는 소리가 들린다.

방이 바뀐 걸까. 제일 가까운 원장실 옆방을 들여다보려는데  복도 쪽에서 짠~하고 엄마가 나타났다.

세상에, 엄마가 휠체어에 앉아 계신다. 늘 침상에서만 뵈었는데 이렇게 나와 계신 건 처음이다. 우리가 면회 예약한 시각에 맞춰 기다리고 계셨나 보다.


아이들 어릴 때 생각이 난다. 놀이방에서도 그랬지. 선생님들은 엄마들이 데리러 올 시각이 되면 아이 머리를 새로 빗겨 예쁘게 땋아주고 얌전하게 앉아 있게 했지. 아이들은 출입문에서 딸랑 소리만 나면 다 같이 고개를 돌려 자기 엄마가 왔는지 확인하곤 했지.

엄마도 우리를 맞으려고 머리를 빗으신 걸까. 못 보던 머리핀이 꽂혀 있다. 엄마에게 예쁘다고 말한다.


원장이 누가 왔느냐고 묻는다. 엄마 ‘딸’이라고 한다. 동생과 내 이름도 정확하게 말씀하신다. 열심히 반복학습을 한 덕일까.

우리가 손뼉 치며 칭찬해 드리자 활짝 웃으신다.

헌데 이내 표정이 바뀐다. 울퉁불퉁한 욕창방지 방석도 어색하고, 등을 똑바로 세워야 하는 휠체어 등판도 불편하신가 보다. 계속 누워만 계셨으니 일어나 앉는 게 아직 많이 불안하신 모양이다.   


동생이 옛날이야기를 꺼낸다.

“아니 씩씩한 엄마 어디 가셨나. 엄마가 예전에 그랬잖아. 내가 무섭다고 하면  뭐가 무섭냐고 내 손등을 찰싹 때리셨잖아.”

듣고 있던 원장이 추임새를 넣는다. “그러셨어요? 엄마가 잘못하셨네. 엄마, 지금이라도 미안하다고 말씀하세요.”

“미안하다.” 엄마가 동생을 보며 억지 사과를 한다.

엄마의 표정이 풀어질 때까지 원장이 한참 우스갯소리를 하고 나간다. 이제 엄마의 불안을 잠재울 유일한 사람은 원장뿐이다.


우리는 엄마를 만날 때마다 엄마와 함께 했던 기억을 소환한다.

작년에 출판사 관계자를 만났을 때 그런 얘기를 들었다.

“그런데요, 어머니한테 서운한 일은 없으셨어요? 그런 에피소드가 있을 법한데 브런치 글엔 보이지 않더라고요.”

별로 없는 것 같다는 말에 상대는 그럴 리가 없다는 듯 미심쩍은 표정을 거두지 않았다.

 

그 뒤로 생각했다. 엄마가 원망스러웠던 순간들도 기억해 내리라고. 그리고 생각해 냈다.

엄마가 혼냈던, 나로선 억울했던 순간 말이다.




초등학생 시절 난, 엄마가 외출하시면 돌아올 때까지 밥을 굶는 이상한 아이였다. 엄마가 미리 밥상에 다 챙겨놓고 가도 그랬다. 이상하게 식욕이 안 생겼고, 엄마가 나가는 것도 싫었던 것 같다.  

엄마가 집에 돌아오자마자 여태 밥을 안 먹었냐고 “아이고 못 살아.” 그러면서 챙겨주시는 밥이 얼마나 꿀맛이던지. 엄마가 동네 아줌마한테, 아니 얘는 내가 없으면 밥도 안 먹어요, 하는 말이 듣기 싫지 않았다.


그런 엄마가 친목계에서 여수로 2박쯤 되는 여행을 가게 됐다. 엄마는 밥이 제일 걱정이었나 보다. 내게 신신당부를 하신다. 밥 위에 손을 이렇게 넣고 물이 손등 여기에 잠길 만하게 물을 붓거라. 그것도 어려우면 손가락 마디 여기까지 넣거라. 단단히 준비를 시키셨다.

그날이 왔다. 아침 일찍 일어나 전기밥쌀을 안치고 오빠에게 물을 한번 봐달라 했다. 졸린 눈을 비비며 오빠가 건성으로 본다. 그 정도면 된 것 같단다. 취사 버튼을 눌렀다. 잠시 후. 취사가 완료된 밥솥의 뚜껑을 여니 아직도 물기가 뽀글뽀글 죽이 완성돼 있었다.


엄마가 돌아온 뒤 다들 내가 한 밥에 대해 얘기하며 놀려댄다. 그래도 기죽지 않았다.

“내가 밥 한 게 어디야? 그리고 오빠도 확인했으니까 공범이야. 사실 그렇게 죽 같은 밥 하기도 힘든 거야.”

그 말에 다들 어이없어하며 웃는다. 그 시절 나는 자기합리화 3종세트를 장착하고 있었다.

 

그런데 하루아침에 가세가 기울었다. 뭔가 실수해도 그렇게 한바탕 웃음으로 넘기던 집안 분위기도 달라졌다.

중학교 2학년 때였을 것이다. 엄마가 일하러 나가시며 내게 몇 시쯤에 연탄불을 갈라고 하셨다. 한 번도 해본 적 없는데…. 보기에도 무시무시한 집게를 들어 다 타들어간 연탄을 꺼내고 새 연탄을 넣었다. 스스로 기특하다고 생각한 것도 한순간. 집에 오자마자 연탄불을 확인한 엄마가 갑자기 소리를 지르셨다. 그러더니 내게 그 머리로 어떻게 공부하느냐고, 생전 들어보지 못한 험한 말을 뱉어내셨다.


“그 머리”라니. 엄마한테 혼난 기억이 없던 내겐 거의 돌***로 들렸다.

맙소사. 새 연탄을 밑에 넣은 탓에 불이 꺼져버렸던 모양이다. 엄마가 계속 잔소리를 한다. 불이 위로 타오르니 당연히 새 연탄을 위쪽에 넣어야 하는데 어떻게 거꾸로 넣을 수 있느냐고….  

고된 일을 하고 온 뒤라 가뜩이나 피곤한데 번개탄까지 피워야 하니 화가 나셨을 것이다.  

그걸 알 리 없는 난 어려운 연탄불 갈기에 도전하고도 머리 나쁘다는 욕까지 들어 속상하고 비참했다.  


그 뒤로 난 학교가 끝나고도 공부하고 온다는 핑계로 최대한 늦게 집에 돌아왔다. 집안일을 도와야겠다는 생각은 하지도 않았다. ‘그 머리’로 보란 듯이 학교 공부나 잘하리라 생각했다. 이유 없이 엄마 말에 툴툴댔다. 온 가족이 견디고 있는데 마치 나만 힘든 것처럼 못 되게 굴었다. 사춘기를 통과하던 때였다. 엄마도 사십 대 초반 젊은 시절이었다.


험난한 고빗길도 훌쩍 뛰어넘으신 엄마가 저렇게 작아지셨다는 게 아직도 실감나지 않는다. 휠체어에서 떨어질까 싶어 팔걸이를 꽉 잡고 계신 엄마가 여전히 낯설다.  

오늘은 어느 시절에 머물러 계실까. 엄마에게 몇 살이냐고 묻는다.

“열여섯 살이나 묵었겄지.”

“좋으시겠다, 엄마. 이팔청춘이시네….”

내게 연탄불 꺼트렸다고 소리치셨던 그 시절로 돌아가고 싶진 않으신 걸까. 엄마의 시간여행은 언제나 ‘홀로’인 때로 향한다.

봄처녀처럼 엄마가 수줍게 웃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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