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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정을 잊어버리셨나요?
by
데이지
Jan 23. 2024
나를 단련시킨 돌봄의 시간들
다시 시작해야겠다
2024년을 맞이하면서 나는 어떤 계획을 세웠던가.
작년과 다르지 않은 일상인데 우울한 기분이 들었다.
억지로 산책을 나가고 책에 빠져들었지만 어느새 마음이 가라앉곤 했다.
생각해 보니 뭔가 허전한 느낌은 엄마를 뵈러 가는 면회 주기를 길게 잡으면서 생긴 공백 때문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고속도로를 달려 엄마를 만났는데, 이제 거의 회복되셔서 2~3주에 한 번 찾아뵙고 있었던 것이다.
어쩌면 퇴직 후 4년 만에 비로소 맞게 된 여유인데, 난 어찌할지 몰라 허둥댔다. 빈 둥지 증후군도 아
닌데
, 아무튼 그랬다.
내 마음 깊은 곳엔, 이제 뭘 하지? 더 늦기 전에 나를 찾겠다며 호기롭게 일을 그만뒀는데 그렇다고 특별한 일을 찾은 것도 아니잖아. 이런 질책이
도사리고
있었던 것 같다.
시간은
속절없이 흘러가
고 제2, 제3의 인생 따윈 없을 것 같은 막막함이 밀려왔다.
당장 해결할 수 없는 고민과 걱정들이 나를 짓누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다 곰곰이 생각했다.
이게 다 뭐냐고, 퇴직하면 여행 다니고 그동안 못한 일 하려 했는데 엄마의 치매는 심각한 상황이고 아버지는 암 진단을 받으시고….
마치 내가 일을 그만두길 기다렸다는 듯 한꺼번에 밀어닥친 이 어려움들을 어떻게 헤쳐나가야 하느냐고.
코로나야 세계인이 겪은 재난이었다 해도, 내게 닥친 고난은 너무 가혹하지 않느냐고.
모든 고통을 내가 짊어진 듯 불평하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그래서였을까. 평소였다면 덤덤하게 받아들였을 텐데, 며칠 전 주일미사 강론을 들으며 “고통이 은총”이라는 말씀에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내가 투덜댔던 3년여의 시간은, 돌봄을 통해 인간의 고통에 깊이 아파하고, 부모님의 사랑에 부족하나마 되갚을 수 있었던 기회였다는 생각.
풍족하진 않았지만 비교적 평탄했던 내 인생은 부모님의 희생과 기도 덕분이었다는 깨달음.
그동안
애썼다, 고생했다. 이제야 내게
따뜻한 위로
를 보냈다
. 내 마음이 받고 싶은 건
아마도
이것이었나 보다.
76세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 모지스 할머니(Anna Mary Robertson Moses)가 말씀하시지 않았나. 인생에서 너무 늦은 때란 없다고.
그런 마음으로 다시 시작해야겠다
.
지난 크리스마스 날, 어느 해보다 따뜻한 선물을 받았다. 요양원에서 엄마가 휠체어에 앉아 계시는 사진을 보내준 것이다.
엄마는 겸연쩍은 표정을 짓고 있고 요양원 원장은 감동한 듯 엄마의 어깨에 머리를 살짝 기대고 있다.
나중에 들어보니, 요양원 식구들이 다들 소리 지르고 손뼉 치고 난리도 아니었단다.
4월에 낙상하셔서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던 엄마가 그 뿌리 깊은 욕창을 이겨내고 휠체어에 앉으시다니. 그야말로 기적 같은 일 아닌가.
요양원이 떠나가라 요란스러웠던지 쿨한 우리 엄마가 한마디 하셨단다.
“알았어, 알았어. 이제 고마 해~!”
으이그. 치매에 걸리셨어도 이럴 때 엄마는 예전 모습 그대로다. 멋대가리 없다며 늘 아버지를 타박하셨지만 엄마도 다르지 않다.
속으론 당신도 감격스러우셨을 텐데 그 감정을 애써 드러내지 않으신다. 아마도 그렇게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어른의 모습이라고 생각하시는 듯하다.
이제 나는 안다. 그 평정심이 얼마나 지켜내기 어려운 감정인지, 늘 잘 될 거라고 말씀해 주시던 그 긍정적인 에너지 역시 얼마나 자신을 다잡으며 쌓아온 내공인지도
.
엄마의 휠체어 체험은 단 한 번의 이벤트로 끝나 버리고 말았다. 욕창으로 얇아진 피부가 다시 말썽을 일으켰고, 나을 만할 때 엄마가 다시 긁으셔서 상처가 도졌다
한다.
아쉽긴 하지만, 2024년에도 엄마는 삶을 위한 치열한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을 알기에 걱정하지 않는다.
지난번 면회 때 엄마에게 녹차카스텔라를 사 오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기억하실까.
평소 좋아하시던 녹차 향이 짙은 그 빵 맛을 아직도 기억하고 계실까. 다음 면회 갈 때 잊지 않고 꼭 챙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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