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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Dec 20. 2023

불가능에 도전하는 엄마

결국엔 막말을 이겨내리

“언니, 엄마 수술한 그 의사 나갔나 봐.”

동생 목소리가 들떠 있다. 자신의 수술 실력에 도취해 있을 뿐 후속 조치나 협진에 관심 없고, 무엇보다 공감 능력이 제로였던 문제의 정형외과 의사 얘기다. 엄마의 상태가 최악에 달했을 때 병원에 문제제기 하자, 원장은 웬만한 사고가 아니면 계약 기간 내에 의사를 내보내기 힘들다고 속내를 얘기했었다. 이미 병원 내부에서도 이러저러한 갈등이 터져 나오고 있던 것 같았다. 그런데 1년도 못 채우고 나간 모양이다.  


투석하지 않으면 위험할 수 있다는 병원장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엄마를 요양원으로 다시 모신 건 병원에서 나을 수 있으리란 희망이 보이지 않아서였다. 다행히 사람 사는 듯 익숙한 목소리들을 듣고 따뜻한 보살핌을 받으면서 엄마는 살아갈 힘을 얻었다.


엄마가 퇴원한 후 몇 주가 지났을까, 정형외과 의사가 요양원에 전화해 자기변명을 하더란다. 듣다 못한 요양원 원장이 자기한테 할 얘기가 아니니 보호자한테 직접 하라고 했다는데, 그게 끝이었다. 내겐 연락하지 않았다. 병원에서 하라고 하니까 면피용으로 그냥 걸었던 걸까.  

‘엄마가 그렇게까지 악화되실 줄 몰랐다, 치매에 대해 무지했다, 죄송스럽게 생각한다….’

완벽하진 않아도 내가 바란 건 이 정도였다. 그런데 도대체 아무런 관련도 없는 요양원 원장에게 무슨 헛소리를 지껄인 걸까.


병원 홈페이지를 검색해 보니 내게 악담을 퍼부었던 외과 의사 이름도 보이지 않는다. 정형외과 의사와 함께 정리된 걸까. 엄마를 수술했던 정형외과 의사가 훌륭하신 분이라고 했던 그. 그는 엄마가 그렇게 누워계시는 한 욕창은 완치가 불가능하다고, 그깟 일로 소송할 거냐고, 그렇게 하면 이길 수 있을 것 같냐고 팔짱을 낀 채 말했다. 그렇게 상황을 모르냐는 듯 깐죽대는 표정에 욕지거리로 대응하거나 소리라도 질렀어야 했는데, 난 가슴이 두근거려서 서둘러 나와버렸다. 내가 못났던 순간이었다.  


아무튼 내가 만났던 최악의 의사들이 그 병원을 떠났다 한다. 진즉 정리되어야 했던 사람들이었다. 그러나 나와 무슨 상관이랴. 이제 와서 그게 무슨 소용이 있으랴.

엄마에게, 곱디고운 피부를 가진 엄마의 엉덩이와 다리에 뿌리 깊은 욕창의 상처를 남겼는데. 인공고관절 수술 후 재활치료 이르지 못해 침상에만 누워 계시는데. 호기심 많은 우리 엄마가 당신 다리로 요양원을 누비며 이방 저방 들여다볼 수 없게 됐는데….

그럼에도 문제의 그 의사들은 또 다른 병원에서 자신의 실력을 과시하며 보호자들을 무시하고 호통치고 있을 텐데….

   



엄마는 4개월 반 만에 콧줄을 뗐다. 행여나 삼키는 능력을 상실해 음식물을 넘기시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기우였다. 엄만 흰 죽을 잘 받아 드셨고, 반시 한 숟갈에 “맛있다!”라고 하셨단다.

하루가 멀게 당신 스스로 콧줄을 제거하셨던 건 당신 몸이 회복됐다는 표현인지도 모른다. 욕창 치료를 위해서라도, 영양 공급을 위해서라도 조금만 더 콧줄을 했으면 했지만 결국 엄마 뜻대로 됐다. 엄만 언제 튜브로 드셨나 싶게 숟가락으로 떠먹여 주는 손길에 맛있다, 고맙다 하며 삼시세끼를 드시고 있다. 그동안 얼마나 간절하셨을까. 옆 침대 할머니들처럼 식사다운 식사를 하길 얼마나 고대하셨을까.


완치가 어렵다던 엉덩이 욕창도, 회복이 더디던 다리 욕창도 눈에 띄게 좋아지고 있다. 2시간마다 체위를 변경해 주며 정성껏 보살핀 요양원 가족들의 손길 덕분이다. 다소 고가였던 콜라겐 보충제를 드신 것도 도움이 됐을 것이라고 믿는다. 완치가 불가능하다던 의사의 말을 비웃듯 엄마는 매일 불가능에 도전하고 있다. 여든여섯 해를 강인하게 살아온 당신 삶의 모습처럼 하루하루 힘을 내고 있다. 그 치열함 속에서도 미소를 잃지 않고 있다. 엄마 침대 앞에서 노래하고 우스갯소리를 하며 엄마를 웃게 만드는 요양원 식구들 덕분이다.


지난 면회 때 엄마 머리칼을 살피니 뿌리 쪽에서 검은 머리들이 올라오고 있다. 엄마에게 슬쩍 짓궂은 농담을 건넨다.

“엄마, 검은 머리 나는 거 보니까 시집가셔도 되겠어. 할아버지 한 분 소개해 드릴까?”

“그래!”

엄마는 마다하지 않으신다. 아니, 3초도 망설이지 않으신다. 불쌍한 울아부지.

함께 까르르 웃는다. 얼마 만의 웃음인지 모른다. 치열했던 2023년이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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