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 화장실 다 다녀오셨죠? 정확히 30분 후에 이곳에서 다시 뵙겠습니다. 사진 찍을 분들 찍으세요.”
“……”
그곳은 레이크 루이스(Lake Louise). 유키 구라모토의 피아노곡을 들으며 언젠가 가보고 싶다고 생각한 곳.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렸던가. 그런데 고작 30분이라니.
호텔 조식 대신 부실한 샌드위치를 준비해 줘도, 궂은 날씨인데도 굳이 전망대 리프트에 오르게 해도, 주변에 식당이 없다고 같은 식당에 또 가야 한다고 할 때도 참았는데 이건 정말 속상했다. 8년 전 캐나다로키 패키지여행은 긴 이동-짧은 관광-호텔 투숙의 반복이었다.
이번 사형제 여행은 그때의 한을 푼 여행이기도 했다. 햇빛에 따라 달라지는 호수 빛깔을 바라보며 멍을 때려도, 완벽한 구도를 위해 오래도록 사진을 찍어대도 재촉하지 않는 여행.
밴프 여행 3일 차는 호수 여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 번째로 본 페이토 레이크(Peyto Lake)의 호수 빛깔은 비현실적이다. 호수 위엔 구름 그림자만 드리울 뿐 호수의 일렁임조차 보이지 않는다. 마치 색 보정을 한 듯한 호수 빛깔이다.
모레인 레이크(Morain Lake)는 개인 차로는 갈 수 없다고 했다. 지정된 셔틀버스를 타고 호수로 향한다. 주차장에서 내려 록파일(Rockpiles)에 오르면 환상적인 뷰가 펼쳐진다. 그저 평화롭다. 카약을 즐기는 사람들도 보인다.
레이크 루이스에선 근처 호텔에 머문 덕분에 오후/해 질 녘/아침 풍경을 모두 볼 수 있었다. 조카는 여행계획서에 카누를 타라고 추천했으나 시간이 애매하기도 했고, 살짝 겁이 나기도 해서 모두 패스했다. 반짝반짝 햇살을 받으며 카누를 즐기는 청춘들이 그저 부러웠다.
다음날엔 미네왕카 호수(Lake Minnewanka) 크루즈 여행을 했다. 재스퍼 여행 대신 추가된 일정이었는데, 이미 놀랍도록 아름다운 호수들을 본 터라 감흥이 덜 했다. 드문드문 해설자의 설명을 듣는데 배가 천천히 멈춘다. 호수 한가운데란다. 배의 모터도 껐으니 가만히 호수의 평화로움을 느껴보란다. 가볍게 호수의 파도가 찰랑거릴 뿐 고요하다. 자연의 축복을 받은 캐나다의 대자연 속에 푹 안긴 듯 마음이 가벼워진다.
이제 다시 랭리로 돌아가는 일정만 남았다. 밴프 시내에서 하루 더 머문 다음날, 아침 공기를 느끼고 싶어 동생과 함께 걸었다. 빵이나 사러 가자고 나선 참이었는데, 한가롭게 풀을 뜯어먹는 엘크 한 쌍을 만났다. 반가워라. 조용히 다가가 사진에 담았다. 사형제 여행의 막바지, 마치 아쉬운 마음을 달래주는 선물 같았다.
“오빠는 이미 지났지만 이제 나부터 줄줄이 환갑이 돌아오잖아요. 2년마다 우리 만나요.”
“까짓것, 그러자고!”
본격 사형제 여행을 앞둔샌디에이고에서였던가. 내 제안에 다들 술잔을 부딪히며 호응했다. 캐나다, 미국에 흩어져 사는 사형제가 2년마다 만나는 게 쉽지 않은 일인 줄 알면서도 우린 꿈을 꾸기로 했다. 세 번 중에 적어도 한두 번은 만날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약속이라도 해 놓아야 또 기회가 만들어지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