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케 잘 지낸다 싶었다. 결국 J와 따로 다니기로 했다. 전체 여행의 딱 중반에 들어선 때였다.
사실 내게 치명적인 단점이 있으니 길치라는 것. 설마 혼자 다닐 수 있겠냐는 미심쩍은 눈초리를 무시하고 길을 나섰다.
홀로 여행 첫째 날은 Hop on Hop off 버스를 타고 쇤부른 궁~벨베데레 궁전~호프부르크 왕궁을 둘러봤다. 혼자 커피도 마시고 이런저런 생각도 하고, 오히려 좋았다.
둘째 날은 다뉴브 강을 따라가는 페리에 몸을 싣고 훈데르트 바서의 ‘쿤스트하우스 빈’에 가기로 했다.
배는 여유로운 생각을 하기에 딱 좋은 교통수단이다.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고, 저 건너 여유롭게 낚시하는 사람들을 본다. 바쁜 일상이 언제였나 싶다. 행복하다.
어디쯤일까. 갑자기 배가 멈춘다. 협곡에 갇힌 듯하다. 운하 구간인 모양이다. 물이 차오를 때까지 기다린다. 마술처럼 양쪽 벽이 없어지고 미끄러지듯 다시 움직인다. 영상을 담는 사람들, 손뼉 치는 사람들, 페리에 탄 사람들이 즐거워 보인다.
중간 정차 구간에 왔다. 승무원이 표를 검사한다. <비엔나 패스>를 보여주니 여기에서 내리란다. 난 더 가야 하는데…. 난감하다.
당황하면 지도앱도 무용지물이다. Hop-on Hop-off 버스가 오길래 무작정 탔는데 엉뚱한 방향으로 간다. 다시 어딘가에서 내려 물어물어 시내버스로 갈아탔다. 힘들게 왔다, 쿤스트하우스 빈.
쿤스트하우스 빈은 세계적인 화가이자 건축가인 훈데르트 바서의 박물관이다. 생전에 그가 살기도 했다는 그곳으로 발을 내딛자 마음이 평화로워진다. 작은 정원에 머물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토요일 오후 2시, 자연인 듯 아닌 듯한 공간을 천천히 둘러본다. 9월 초의 적당한 기온과 살랑 부는 바람도 좋다.
‘낮술이 당기는 날이네….’
테이블에 앉아 인살라타 카프레제(카프리식 샐러드란 뜻이라고 한다)와 맥주 한 잔을 시킨다.
훈데르트 바서는 자연과의 공존을 실천한 환경운동가이기도 하다. 자신의 이름마저 100개(hundert) 강(wasser)으로 고쳐 부를 만큼 자연친화적인 사람이다.
“아픈 건축을 치료하는 건축 치료사”로 불린 그는 집이야말로 세 번째 피부(피부, 옷에 이어)라며 자연과 인간이 행복하게 동거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자 했다. 자연을 닮은 화려한 색채와 고집스러울 만큼 직선을 탈피한 디자인은 마치 어린아이의 그림을 닮은 듯하다. 그의 생애와 디자인 철학을 담은 영상을 보고 나니 내부 공간이 새롭게 보인다.
창가에 자연스레 자리 잡은 나뭇잎들과 바깥 정원의 풍경이 따사롭다. 주변에 훈데르트 바서가 지은 공동주택과 쓰레기 소각장이 있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돌아가기로 한다. 쿤스트하우스 빈에 머문 시간으로 충분하다.
호텔로 돌아와 낯선 거리에서 허둥지둥했단 얘기에 J가 즐거워한다.
“거 봐, 혼자 다니니까 고생이지?”
“고생은 무슨…. 쿤스트하우스 빈에서 낮술도 하고 좋았는데?”
‘아, 자연에 직선인 건 하나도 없다는데, 우리 맘은 왜 둥그러지지 않을까.’
훈데르트 바서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냉전을 종식하기로 한다. 나 홀로 여행은 이틀로 막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