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여행 9일 차. 여행 일정의 3분의 1이 지나가고 있다. 자유여행의 근력이 조금씩 붙는다 싶었는데 아니었다.
할슈타트 다음 행선지는 빈(Wien). 부킹닷컴을 통해 처음으로 호텔이 아닌 아파트를 예약했다. 슈테판 대성당 근처라 위치도 좋고 호텔보다 넓은 데다 가격도 착하다. 아파트형 숙소라도 건물 1층에 체크인을 도울 사무실 하나쯤은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리저리 서성이다 전화를 걸어보기로 한다. 잘 안 들리는 게 아니라 잘 알아들을 수 없어서일 텐데, 통화하는 J의 목소리가 점점 커진다. 예약시 알려준 이메일로 미리 숙소 출입 비밀번호를 알려줬다는 것 같다. 아뿔싸, 메일을 확인했어야 했는데…. 전적으로 내 불찰이었다.
빈에서는 일주일간 머물렀다. 처음엔 너무 길게 잡은 것 아닌가 싶었는데 볼거리가 너무 많았다. 빈은 내가 좋아하는 도시의 모든 것을 갖춘 곳이었다.
빈은 멋쟁이들이 가득한 도시이다. 특히 옷 잘 입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킥보드를 타고 출근하는 직장인의 뒷모습마저 멋있어서 괜히 쳐다봤던 기억이 난다.
빈 사람들은 카페를 정말 좋아한다. 광장 근처 노천카페엔 커피나 와인 한 잔을 앞에 두고 대화를 나누는 사람들로 가득하다.
브레히트도 이렇게 말했다지.
“빈은 사람들이 앉아 커피를 마시는 카페하우스들을 둘러싸고 지어진 도시이다.”
사람들이 왜 그리 카페를 좋아하는지 모르겠다던 J도 빈에 머물면서 생각이 바뀌었다고 한다. 여행의 순기능인 셈이다.
빈의 건축물들은 또 얼마나 멋있던가. 난 빈 시청사와 국립도서관에 반해 버렸다. 버스를 타고 지나가다 저 건물이 뭐지 살펴보는데 시청사란다. 건축적인 매력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관공서 건물들만 보아온 나로서는 충격이었다. 계획에 없었지만 일부러 내려 살펴보기로 한다. 개방 시간이 끝난 데다 행사를 준비하는 중이라 안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었지만, 시청 마당에선 시민들을 위한 다양한 이벤트가 사계절 진행된다고 한다.
호프부르크 신왕궁 옆 국립도서관도 가볼 만한 곳이었다. 마치 박물관에 들어온 듯 화려한 천정화가 돋보이는 메인 홀은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6세 때 만들어진 법원 도서관이었다고 한다. 특권층이 이용했을 그들만의 도서관일지라도 20만 권이 넘는 고서들을 소장할 수 있었던 건 건축의 힘일 것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서관을 소장하고 싶은 마음에 내부 전경이 담긴 포스터를 한 장 샀다.
빈 전통시장인 나슈마르크트(Naschmarkt)에서 먹은 브런치도 기억에 남는다. 시내 목 좋은 자리에 상설시장이 있고, 바로 옆에 식당들이 있다고 해서 찾아간 곳이었다. 대형마트에 밀려나지 않고 여전히 건재한 시장이 있어 반가웠고, 흰 차양 아래 은은한 햇살이 드는 자리에서 먹은 가벼운 식사가 맘에 들었다.
갓 구운 빵을 사러 나갔을 때 마주한 아침 풍경, 플리마켓이 서곤 했던 지하철 역, 미소 짓는 사람들로 가득한 카페 거리가 그리울 때가 있다. 빈은 아직도 그때 그 모습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