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시 가보고 싶은 여행지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할슈타트라고 말하겠다. 오스트리아 여행을 계획하면서 어떻게 이곳을 들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러나 아름다운 호수와 애니메이션 <겨울왕국> 배경지로 더 유명해진 이 마을은 코로나가 끝나고 본격 여행이 시작되자 ‘오버 투어리즘’으로 몸살을 겪었다 한다. 주민들이 대규모 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멋진 뷰가 나오는 사진 촬영지에 나무 울타리까지 설치했다니 얼마나 불편했으면 그랬을까 싶다. 내가 갔던 2018년 9월엔 여름휴가가 끝난 때여선지 그렇게 붐비지는 않았다.
잘츠부르크에서 할슈타트까지는 기차를 타고 이동했다. 조용하던 객차 안이 갑자기 시끌시끌하다. 어느 역에선가 오스트리아 전통의상을 입은 남녀가 우르르 타더니 기타 반주에 맞춰 흥겹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뮤지컬 배우들인가? <사운드 오브 뮤직>의 도시답다는 생각이 들었다. 무슨 노래인지는 알 순 없지만 마치 수학여행을 떠나는 기분이다. 긴장했던 마음이 살짝 풀린다. 이들도 우리처럼 할슈타트에 놀러 가는가 보다, 멋대로 생각해 버렸다. 그게 화근이었다. 무심히 기차에서 내리는 사람들을 바라보는데 눈앞에 할슈타트 역이 스쳐 지나간다. 아, 큰일 났다.
어딘지 모를 작은 기차역에 우리만 덩그러니 남겨졌다. 되돌아갈 기차가 올 때까지 뭘 한담. 워낙 작은 역이라 대합식 같은 것도 없다. 비는 부슬부슬 내리고, 어이없는 실수를 했다는 생각에 속이 상한다. 역 가까이에 카페인 듯한 노란 건물이 보인다. 사람 좋아 보이는 주인아저씨에게 더듬더듬 얘기한다.
“한눈팔다가 기차를 놓쳤어요!”
“괜찮아요. 조금 있으면 올 거예요.”
커피 한 잔을 마시며 더없이 평온한 마을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주인아저씨가 선물이라며 ‘마너 웨하스’를 내민다. 오스트리아 기념품으로 많이 사가는 것이라 한다. 낯선 나라의 여행객을 챙기는 마음이 고맙다. 불안한 마음이 어느새 달콤함에 녹아드는 듯하다. 여행은 이렇게 예기치 않은 길에 떨구어 놓기도 하지. 아침부터 기차 타느라 분주했는데, 덕분에 잘 쉬었다.
진즉 내렸어야 할 할슈타트 역에 어렵게 도착했다. 언덕 아래엔 우리가 타고 갈 작은 배가 보인다. 출발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호수 저편에 동화 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벌써부터 가슴이 설렌다. 선착장에서 우리가 묵는 숙소까지는 캐리어를 끌고 한참 걸어 들어가야 했다. 사람들로 북적이는 기념품 가게도, 무척이나 커 보이는 슈퍼마켓도, 들어가 한 잔 하고 싶은 맥주집도 패스하고 호텔로 향했다. 비 온 뒤 잠깐 개인 날씨라 언제 어떻게 바뀔지 불안했다. 얼른 짐을 내려놓고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할슈타트 하면 떠오르는 그 이미지를 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할슈타트는 누가 찍어도 할슈타트이다. 모두가 찍는 그 자리에 멈춰 서서 카메라에 담기만 하면 된다. 전망대로 향하는 구불구불한 골목길도, 다양한 디자인의 목조주택도, 테라스에 놓인 화사한 꽃화분도, 배경화면처럼 자리잡고 있는 예배당도, 낮게 깔린 구름과 호수의 조화까지도 완벽했다. 그야말로 비현실적인 풍경에 몇 번이고 걸음을 멈추었다. 햇빛이 쨍한 날씨보다 훨씬 분위기 있게 찍힌 사진에 감탄이 절로 나왔다.
할슈타트에 머물면서 예쁘다, 좋다는 말을 얼마나 많이 했는지 모른다. 관광지보다 문화유적을 더 좋아하는 J는 내 반응이 신기한 모양이다. 그렇게 좋냐고 다시 묻는다.
물론이지! 아, 이런 곳에서 살고 싶어.
우리는 다들 간다는 소금광산에도 가지 않고 동네 산책만 했다. 벽면을 각종 농기구로 장식한 솜씨 좋은 주인장 집 앞에서 발길을 멈췄고, 뭔가를 찾고 알리는 담벼락 광고판 앞에서 미소 지었다. 1박만 예약한 것이 아쉬웠지만, 똑같은 풍경을 찍고 또 찍으면서 다시 오리라 마음먹었다. 오늘같이 눈이 내린다면 할슈타트는 그야말로 순백색 겨울왕국의 모습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