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에서 배운 기억으로는 아직도 체코슬로바키아가 익숙하다. 체코와 슬로바키아가 분리된 건 1993년이다.
빈에서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까지는 기차로 1시간 정도밖에 안 걸린다. 경부고속도로에 ‘아시안하이웨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어도 절대 실감할 수 없는 우리로선 경계 없이 타국을 넘나드는 경험이 낯설다. 이렇게 가볍게 다른 나라를 여행할 수 있다니 놓칠 수 없지. 가벼운 가방만 메고 아침 일찍 빈 중앙역에 갔다. 마치 소풍 가는 것처럼 기차에서 먹을 빵이랑 커피도 샀다.
브라티슬라바는 조용한 소도시 느낌이다. 역에서 내려 버스를 타고 브라티슬라바 성으로 갔다. 날씨가 좋다. 벤치에 앉아서 하늘을 쳐다보는데 한 사람이 와서 우리에게 뭔가를 내민다. 손을 내저으며 안 산다고 했는데 선물이란다. 귀여운 남녀 아이가 있는 냉장고 자석. 왜 우리에게? 의아했지만 동양인에게 내민 친절이라 생각하며 고맙게 받았다.
브라티슬라바에선 많이 볼 욕심을 버렸다. 브라티슬라바 성과 구도심을 어슬렁거렸다. 브라티슬라바 성의 첫인상은 그리 특별해 보이지 않았다. 빈에서 본 화려함이랑 비교하면 말이다. 그러나 무려 907년에 지어졌다니 그 역사성과 규모는 뒤지지 않는다. 저 멀리 다뉴브 강을 가로질러 있는 다리는 UFO라는 별칭이 있는 Most SNP이다.
길을 건너 언덕길을 따라 내려가면 구도심이 나온다. 골목길에서 만나는 소소한 풍경과 청년 작가가 그린 듯한 벽화가 귀엽다. 광장으로 들어서니 활기찬 분위기가 느껴진다. 구도심의 중심엔 시계가 있는 ‘미칼스카 브라나(Michalska brana)’ 건물이 보인다. 미카엘 동상이 탑 위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중세 요새를 지키는 문이었다고 한다. 구도심의 또 다른 볼거리, 익살스러운 맨홀 아저씨 동상 Cumil에 사람들이 모여 있다. 맨홀 작업을 하다 고개를 내밀었는지 어깨까지만 빼꼼 나와 있다. 놀랍게도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그의 어깨에 발을 얹고 사진을 찍는다. 나는 쭈그려 앉아 어깨동무를 해준다. 힘든 노동에도 웃음을 잃지 않는 모습에서 건강성을 읽는다.
파란 성당(크레파스의 하늘색 빛이다)이라고도 불리는 ‘성 엘리자벳 성당’으로 가는 길에 동네 축제 현장을 만났다. 가족 단위 참가자들의 모습이 즐거워 보인다. 그리고 우연히 발견한 태극기. 우리나라 대사관이 바로 근처에 있었다. 성 엘리자벳 성당은 마치 쿠키로 만든 성당 같다. 고색창연한 성당들만 보다가 이런 디자인의 성당을 만나니 재미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진 못했는데 유리문을 통해 들여다보니 놀랍게도 내부 의자까지도 하늘색이다.
걷다 보니 기차역으로 돌아가는 길이 가까워졌다. 큰 사거리 너머 웅장한 건물이 뭔가 했더니 대통령 관저인 ‘그리살코비흐 궁전’이라고 한다. 시민들과 가까이하고 싶다는 바람일까, 경비가 삼엄해 보이지도 않는다.
도시의 풍경이라는 게 뭘까. 브라티슬라바 거리를 걸으며 그런 생각을 했다. 손을 잡고 걷는 부부의 모습을 보면서, 가로수만으로 아름다운 거리를 보면서 여행이란 본디 이런 일상 풍경을 발견하는 것이리란 생각을 했다.
빈에서의 일주일, 전체 일정 중에 가장 오래 머문 도시였지만 떠나려니 아쉬웠다.
매일 지나갔던 슈테판 대성당도 안녕, 고장 난 기계투성이었지만 밀린 빨래를 해결해 줬던 빨래방도 안녕, 모처럼 한식을 먹었던 식당도 안녕, 아이스크림 먹는 사람들이 앉아 쉬던 구텐베르크 동상도 안녕, 앙징맞게 주차금지 사인을 표시한 작은 서점도 안녕. 언젠가 또 만나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