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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두부두애 Oct 17. 2021

똥방구는 똥을 못싸요

오랜만에 들려드리는 노견 푸돌이와 방구 이야기

거의 두 달 만에 다시 키보드를 잡아봅니다. 이 놈의 게으름이 늘 문제입니다. 써야지, 써야지 하면서도 꾸준히 쓰지 못하는 제 모습에, 첫 마음을 잃어버린 것만 같아서 괴롭기도 했습니다.


그럼에도 다시 펜을 잡은 것은 노견 푸구(푸돌이와 방구)의 이야기를 궁금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서, 그리고 점점 마지막을 향해 가는 이 아이들을 기록하고 싶다는, 제 초심을 다시 되짚어보고 싶어서 브런치를 켰습니다.


첫 서문부터 너무 무겁게 쓴 건 아닌가 싶은데, 19살 몰티즈 '방구'와 18살 푸들 '푸돌이'는 다행히 아직 잘 지내고 있습니다.

개모차에 앉아있는 푸구

'잘' 지낸다고 말하기에는 아이들이 아픈 곳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어, '잘'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만, 고비마다 아내의 세심한 보살핌과 주치의 선생님의 적절한 치료로 인해 어려움을 '잘' 넘기고 있습니다.


1. 똥방구는 똥을 못싸요


요새 방구는 아예 걷질 못합니다. 곁에서 잡아주지 않으면 제대로 서있기도 힘든 이 녀석은 쉬나 응아가 마려울 적이면 괴로운 듯 끙얼대며 '왈'하고 짖곤 합니다. 볼 일을 보고 싶은데 본인의 몸을 가누지 못하니... 어린애가 보채듯 짜증을 부리는 것이지요. 그런 모습을 보면 짠합니다.


녀석의 몸을 부여잡고 억지로라도 몇 분 간 걷게 하면 갑자기 자리를 잡더니 쉬를 합니다. 기분이 좋은 듯 꼬리를 살랑살랑 흔드는 방구. 기저귀가 흥건하게 젖었습니다.


쉬는 어렵지 않게 해결할 수 있지만, 큰 볼 일을 볼 때면 본인도 괴로운지, 걸으면서 낑얼낑얼 거립니다. 잘 안 나오는 것이죠. 그렇게 십몇분, 이렇게 시간이 지체되면 방구를 잡아주고 있는 저희도 힘들고 녀석도 지칩니다.


어느 날은 그렇게 한참을 걷다가 '풀썩'하고 엎어집니다. 지친 모양입니다. 졸린 듯 멍하니 눈을 껌벅껌벅이다 피곤한 듯 눈을 감는 방구. 그 모습을 보면 방구의 어렸을 적 애칭인 '똥방구'를 부릅니다.

"똥방구!! 똥 안 싸고 자는 고야? 그런 거야?"

방구는 귀찮은 듯 일어날 생각을 안 합니다. 그냥 품에 안고 자리에 눕혀두니 잠에 듭니다. 얼마나 지쳤던 걸까요.


때로는 저희도 사람인지라 계속 칭얼거리기만 하는 방구가 답답할 때도 있습니다. 몇십 분째 방구에만 매달려 있다 보면 때로는 짜증도 나고 화도 나서 괜한 승질을 부릴 때도 있습니다.

"뭐 어떻게 하라고 이 녀석아!!!! 네가 응아를 해야지!!! 응아를 대신해줄 수는 없잖아!!"


그러나 얼마 못 가 힘겹게 응아를 하고 곤히 자는 녀석을 보면 안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어서
"미안해 방구야.. 짜증내서... 힝 ㅠㅠ"하며 사과하곤 합니다.


우리 똥방구, 별명처럼 응아 좀 잘 쌌으면 좋겠습니다.

귀여운 방구

2. 푸돌이는 더 이상 캠핑을 못 가요 ㅠㅠ


아내의 캠핑에 따라다니며 캠핑견이라고 불리던 푸돌이가 더 이상 캠핑에 가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래도 나이가 있는 만큼 외부 생활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강화도로 캠핑을 갔을 때였습니다. 따사로운 햇살에 광합성을 즐기고 있을 적, 푸돌이가 수면 중에 '헥헥'거리며 숨을 몰아쉬기 시작했습니다.


수면  호흡이 빠르면 응급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 아내는 동영상을 찍어 즉시 병원에 연락했습니다.

(푸돌이가 얼마나 힘들었으면 저는 여태껏 한 번도 듣지 못했던 푸돌이의 우렁찬 짖음을 처음 들었습니다)

"지금 바로 오실 수 있으세요?"

 우리는 텐트와 모든 물건을 그대로 두고 강화도에서 3시간 넘게 달려 병원으로 도착했습니다. 캠핑 급하게 온지라 저희의 몰골이 말이 아니었지만... 우리에게는 푸돌이의 건강이 더 중요했습니다.


다행히 나 심장 쪽에는 큰 이상은 없었는데, 급성장염이 심하게 왔더군요. 워낙 고령견인지라 장 기능이 많이 약화되어서 지사제를 꾸준히 복용해주는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컨디션이 많이 저하된 푸돌이는 입원을 하고 저희는 모도 캠핑장으로 또 먼 길을 달렸습니다.

캠핑장에 다시 도착하니 밤이 깊어 간 시간이었지만 그래도 잘 다녀왔다며 서로를 토닥이고 마지막 밤을 보냈습니다.

 

다음날 녹초가 되어 집으로 돌아 저희, 비록 아이들과의 캠핑은 이렇게 막을 내렸지만 여러 번의 캠핑으로 푸구와 행복한 추억을 쌓았습니다. 아이들이 잘 버텨준 덕분이죠..  저희 부부는 그렇게 생각하려고 합니다.

즐거웠던 녀석들과의 캠핑

회사에서 어느 누군가가 그러더라고요. 개모차에 앉아있는 녀석들이 부럽다고. 별 뜻 없이 한 말일 테지요.


다만 매번 개모차를 끌고 저녁마다 산책시키는 제 입장에서는, 저 녀석도 나름 사정이 있겠지 싶습니다. 어디가 아플는지, 무릎이 아파 걷지를 못하는 건지, 발바닥에 상처가 있는 건지. 그런 걱정이 앞섭니다.


푸구 주보호자인 아내가 약속이 있을 적이면 저는 되도록 시간을 조정하여 이 아이들을 돌보기 위해 달려갑니다.


이 녀석들과 한 집에 산 지 어연 1년이 넘은 것 같습니다. 시간 참 빠릅니다. 저희 집에 오기 전까지만 해도 얼마 못 갈 것 같다던 방구가 아직까지 살아있고, 암에 걸려 여생이 쉽지 않을 것만 같았던 푸돌이도 나름 삶을 잘 이어나가고 있는 것을 보면, 문득 "감사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피곤하고 귀찮고 짜증 날 적이 분명 있지만, 그럼에도 이 아이들이 우리에게 주는 기쁨이 있습니다. 말로는 다 표현하기 어려운 그런 묘한 행복이 있습니다. 그런 맛에 다들 육아를 견디는 것 아닐까도 싶습니다.


아내와 제가 늘 얘기하는 소망 중 하나는 이 할부지 멍뭉이들이 병으로 인해 고통스럽지 않고, 갈 때 조용히, 아내의 품에서... 그렇게 편안하게 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글을 마치려고 합니다. 오랫동안 소식이 없어 걱정하셨을 구독자님들께 오랜만에 인사드려 송구스러운 마음입니다. 종종 이렇게 우리 푸구 봐주셔서 감사드리고, 제가 더 부지런하게 소식 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럼 10월 한 달도 잘 마무리하시길 바라겠습니다! 푸구도 곧 또 인사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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