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로 Sep 02. 2023

채집생활

1

이렇게 하면 어떨까. 탁자 위에 까만 선글라스가 있다. 오른쪽 허벅지 중간에는 동그란 버튼이 나 있다.

선글라스를 끼면 원하는 만큼 원하는 삶을 체험할 수 있다. 버튼을 누르면 지금 즉시 고통 없이 죽는다. 모두에게 한 번씩은 선택권이 주어진다.


2

생각에 필터를 입혀 생각한다. 한창 신나게 하다가, 이 필터는 예전에도 한 번 사용했던 기억이 났다. 이럴 때 정신이 번쩍 든다.


3

상어는 부레가 없다. 가라앉지 않으려면 자면서도 헤엄쳐야 한다. 아가미는 남들 같은 운동기능이 없다. 입을 쫙 벌리고 또 바삐 움직여야 물이 아가미를 지나며 산소를 취한다. 사정이 이러하니 상어가 숨을 쉬려면 사나운 이빨을 다 드러내고 쉴새없이 누벼야 한다. 그러니까 그게 물고기들 겁주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살려고 그러는 것이다.


4

살기 위해서

계속 살기의 어려움


5

실행을 위한 명상노트

인지심리학자는 “우유”를 발음하라고 주문했다. 소리 내서 열 번 어때요 말하다 보면 그건 단지 “우”와 “유”라는 두 글자일 뿐이지요. 마시는 우유가 생각이 나던가요. 네. 나는데요. (아니면 열 번 더?) 아무리 곱씹어 발음한들 그 모두가 여전히 나에게 무엇이다. 기표에 지나지 않는 그것들을 지치도록 생각한다. 강박적으로 물고 빤다. 미처 배출 못한 것들이 주저리주저리 노폐물마냥 땀구멍에 박힌다. 팔다리가 자꾸만 따갑고 아프다. 반신욕을 하면 그나마 낫다.


6

They made a statue of us.


7

주말만 기다리며 살았다. 시간을 과소비했다. 꼭짓점에 다다라 굳이 비교하고 너무 많이 좌절하거나 너무 많이 우쭐하며 끝내 초조했다. 휴일과 일상, 보상과 과정을 분리했다.


감정과 상황의 파동을 뚝 뚝 끊어 단절된 페이스로 보던 것을 나는 이제 직선과 곡선으로 잇는다, 대자연 앞에서. 그리고 일희일비하지 않게 해 주세요! 좀 크게 보고 싶어. 여기 사방이 다 파래서 눈이 아리다. 뒤통수에 구멍이 뚫린 건지 뇌가 줄줄 샌다.


8

여장은 남자가 할 수 있는 가장 남성스러운 일이다. - 어느 대학 교수의 말

포저의 悲哀


9

저 아저씨는 길바닥에 자리 펴고 누운 곳이 곧 집이다. 나도 그만큼 허름하게 입고 맨발로 신문지 몇 장을 챙겼다. —그러나 어디로? 나는 구글 GPS부터 켠다. 아저씨와 나는 거기까지 도달하는 방법이 다르다. 그래서 노상의 질이 다르다.


10

Vous allez aller france avec moi?


11

기찻길은 전생에도 기찻길이었다. 다니는 사람은 있어도 실제 디뎌 본 사람은 없었다. 가상화된 땅이래도 믿을 뻔했다. 풍수지리라는 것도 타고나는 데가 있다.


12

동경은 못 가본 길에 대한 것이다

전혀 새로운 것은 어디에도 없다

지구는 닫힌계이므로




개발자의 화이트보드
작가의 이전글 전공기초를 위한 교양지식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