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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서로 Sep 07. 2023

건너는 일

아까는 신발 한쪽이 없이 다니느라 애를 먹었다. 편의점에서 고무신이라도 사다 신을지 고민했으나 그리 안일하게 대처해서 될 일도 아니었다. 오후 수업 마치고 학교 앞 횡단보도를 건너다 발을 빠뜨리고 만 것이다. 그곳의 아스팔트 바닥과 흰색 페인트 사이는 사실 우물이기에 오른발을 헛디딤과 동시에 벗겨진 신발은 퐁당 하는 소리도 없이 표면을 뚫고 들어가 일순간 자취를 감추었다. 나는 그것을 곁눈질로 목격했다. 기왕에 납작 엎드려 손을 넣어 휘저어라도 보거나 낙심한 나머지 중도이탈할 수 있었으나 건너가는 중이기에 의연하게 나아갔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엔 좀 더 신중했어야 한다. 다시금 만전을 기하여 속으로 곱씹는다. 핵심은 발자국이다. 횡단보도에 당도하여 호흡을 가다듬다 마침내 파란불이 뜨면, 내 쪽에서 건너는 사람들의 발에 맞춰 순서대로 흰색 페인트만 밟도록 온몸의 운동신경을 각별히 제어한다. 우리는 앞에 사람이 디딘 자국을 딛고 간다. 오른발이 지나간 자리에 오른발을 포개고 왼발이 지나간 자리에 왼발을 포개야 한다. 핵심은 발자국이다. 오른발.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횡단보도의 줄무늬들이 숨을 참고 줄무늬들은 당신의 걸음걸이를 내내 노려본다. 그러니 도중에 박자를 놓쳐 발을 빠뜨림은 생각보다도 중대한 사안이다. 선천적 박치라면 미리부터 속으로 숫자를 단단히 세고 있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다. 왼발. 오른발. 왼발. 오른발.

몸이 기울던 순간 나는 재빨리 발을 바꿔 행렬을 꼬지 않도록 했다. 와중에

신발을 잃어버린 점에 관하여는 개의치 않는다. 신발을 지키는 일보다 중요한 문제는, 아무도 내 뒤꿈치에 발굽이 달렸다는 사실을 눈치채지 못하게 하는 것이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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