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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진형 Apr 28. 2020

명절에 설거지하기

현명해야 행복해지나 보다

 할머니 댁에 가면, 주방에 못 들어간다. 일이라도 할 싶으면 큰일이 나는 줄 아시는 할머니 때문이다. 몇 번 시도했지만, 엄마에게 "설마 집에서도 집안일을 시키냐"라고 묻는 말에 포기해버렸다.


 그래서인지 외가에서는 되도록 내가 고무장갑을 끼려고 한다. 이번 명절도 마찬가지였다. 혼자 설거지하는 손자가 심심해 보이셨는지, 외할머니께서 옆에서 말을 붙여주셨다. "친가에서는 설거지 못하지?"라고 물으셨다. 그렇다고 대답하니 당연하다고, 외할머니께서도 그렇게 생각했었다며 변하신 계기를 설명해주셨다.


 이야긴 즉슨, 외삼촌 신혼 때 이야기였다. 외삼촌은 당시 미국에서 유학 중이었다. 아들 생활이 궁금해 할머니 내외가 미국에 방문했는데, 외삼촌이 당연한 듯 설거지를 하고 있더란다. 할머니께서는 놀라 "왜 니가 설거지를 하니?"라고 물었다. 외삼촌은 조금 고민하시고, 공부가 힘들어 단순노동을 하면 머리도 식히고 좋다고 대답하셨다. 할머니는 일단 그럴듯해 물러나셨다고 한다. 물러나서 생각해 보니, 고리타분한 할머니 자신을 배려해 화살이 숙모에게 안 가도록 현명하게 말했구나. 싶고 나아가 내가 잘못했구나 깨달으셨다고 한다. 할머니께서는 이야기를 마치시고 덧붙이셨다. 사랑하니까 생기는 갈등은 네가 현명하면 해결할 수 있다고, 중간에서 잘 처신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다.


 가부장제와 남녀평등, 차별과 혐오 같은 주제들은 중요한 사회문제다. 보통 부당하다고 느끼지만, 생각에 그치고 돌아서곤 한다. 특히 내 삶에 들어오면, 사회 속에 나약한 개인이 되어버리고 만다. 물론 나는 가부장제가 옳지 않다고, 구성원이면 같은 일을 해야 한다고, 할머니가 틀리셨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 생각이 틀렸다고 말할 용기는 없다. 수십 년 동안 옳다고 믿으시는 일을 내가 나서서 고칠 자신이 없다. 세대의 상식을 감히 틀리다고 말할 자격이 있는지 확신하지 못하겠다.


 그동안은 이런 이유로 모른척했다.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외면했다. 때로는 어쩔 수 없는 일이 맞다. 괜히 나서면 문제만 더 크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할머니의 이야기에서는, 그 문제 속에서 행복함은 전혀 다른 문제였다. 내가 어쩔 수 없다고 돌아선다면, 결국 일하는 건 엄마와 할머니다. 괜히 나선다면 갈등만 조장한다. 그렇다면 내가 하고 싶다고, 자취를 시작해서 연습이 필요하다고 손에 고무장갑을 끼면 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선택이라고 생각하는 상황을 마주한다. 보통 상황에서 선택지는 가해자와 방관자만 주어진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냥 모른척하는 선택지만 있지는 않은 것 같다. 내가 한번 더 생각하고 공감한다면, 방관자와 가해자에서 다 같이 행복한 구성원도 될 수 있지 않을까. 더 나은 선택을 만들어낼 수 있지 않을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냥 '내가 나이 먹으면 달라야지' 하고 넘겼던 많은 찰나는, 결국 생각하기 귀찮아서, 가만히 있는 게 편해서 모른척하는 순간들이었다. 구조적이라며, 신체적 차이라며, 사회문제라며 수긍하고 돌아섰던 많은 순간들에서 한 번 더 현명하게 생각하고 행동했다면 나는 지금쯤 더 행복할 수 있었을 텐데. 내 주변 사람들은 조금 더 행복했을 텐데.


 동시에 다짐하기로 했다. 나는 센스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으니까, 꾸준히 생각하고 또 공감해 습관으로 만들어놓자. 이제는 모른척하기보다는, 현명한 처신으로 모두 행복한 방향으로 행동하자. 최소한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에게는 실망시키지 말자.


 기억 속 초등학교 교과서 바른생활에서는, '남을 배려하자', '가족을 사랑하자'라는 말이 그렇게 쉬워 보였는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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