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과 삶은 조화
적당히 일하고 적당히 쉬면서 돈까지 벌기는 쉽지 않다. 아마도 자격증은 몇 안 되는 답이다. 맨땅에서 워라밸을 쟁취하려면, 지금부터라도 때려치우고 수능을 공부해 의대생이 되거나, 당장 로스쿨이나 회계사를 준비해야 옳다. 일과 삶을 동시에 잡기는, 공인된 자격이 없으면 힘든 일이다.
워라밸 속에서는 삶과 일은 교환이다. 힘들게 일하거나 공부하고 나면, 그에서 나오는 돈으로 취미생활, 혹은 가족이나 애인을 통해 보상받아야 마땅하다. 워라밸은 덜 힘들고 더 재미있는 삶- 혹은 아이 추억에 기꺼이 남을 수 있는 아빠가 되는 삶- 의 핵심 개념이다.
다들 간과하는 사실은 일과 삶 모두 에너지를 쓰는 일이라는 점이다. 워라밸은 이 사실을 숨기는 단어다. 직장에서 내내 시달리고 나면 가족에게 웃어주기 힘들다. 밤까지 독서실에서 책과 싸우다가 집에 돌아오면, 어머니께 웃어드리기 힘들 뿐만 아니라, 밤새 롤을 해도 기분이 나아지지 않는다. 한국의 소환사들이 과격한 언어를 가지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국의 중고딩들은 라이프를 즐길 준비가 되어 있다기보다는, 스트레스에 시달려 라이프가 아니라 휴식이 필요한 상태다. 이는 공부를 얼마나 하는지, 일을 얼마나 했는지와는 관계가 없다. 그렇게 하기 싫은 일에 시달리고 나면, 결국 손가락으로 패드립을 연주하고 만다.
사람들은 덜 일하는 사람과 더 일하는 사람으로 구분되지 않는다. 남들에게 에너지를 나눠주는 사람과, 어두운 표정과 피곤으로 에너지를 뺏어가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취미생활을 못해서, '라이프'가 부족해서 사람은 불행해지지 않는다.
어니스트펀드에서 내가 만난 사람들에게서도 비슷한 걸 배웠다. 사람은 얼마나 일하고 얼마나 여가시간을 갖는지로 쉽게 행복해지고 불행해지지 않았다. 결국에는 워크와 라이프 모든 측면에서, 에너지를 나눠주는 삶을 사느냐 뺏기는 삶을 사느냐의 문제다. 내가 가치를 찾고 보람찬 기분을 직장에서 느끼면, 다른 한 부분에 시간이 부족하더라도 에너지 넘치게 살아갈 수 있다. 어펀에서 사람들이 그랬다.
문제는 얼마나 일을 덜 하고 돈을 더 버는지가 아니다. 결국 시간을 어떻게 보내는가의 문제다. 직장과 가정, 공부와 취미 두 마리 토끼는 세트다. 학연동도 마찬가지다. 결국 삶의 많은 가치에 대한 '선택'처럼 보이는 일들은, 일과 공부를 통해서, 가치 있는 일을 하는 느낌을 받는지, 내 가치가 늘어나는 기분을 느끼는지의 문제로 회귀한다.
일하거나 공부하지 않는 모든 시간을 애인하고 보낸다고 치자. 지친 일상에 내가 우울하고 사기가 꺾여 있다면, 높은 확률로 기껏 시간을 내어도, 차라리 가서 쉬지 그러냐는 대답을 듣는다. 내가 어떻게 낸 시간이냐고 받아치는 순간, 관계는 어려워진다.
사람은 쉽게 변하지 않는다. 기분도 마찬가지다. 하루 종일 나쁜 기분이 일이 끝난다고 좋아질 리 없다. 워크와 라이프의 밸런스가 중요하다기보다는, 둘 모두에서 신이 나는지가 중요할 뿐이다. 들뜬상태로 살아가는지가, 내가 에너지를 건네는 사람인지가 중요할 뿐이다.
들뜨는 일 고르기는 중요하다. 같이 있으면 신나는 사람을 만나는 일도 같은 정도로 중요하다. 워크와 라이프는 밸런스보다 하모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