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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빈창숙 Jan 08. 2024

삶의 면역력 키우기

살아온 날의 단상


어린이 미사를 봉헌하는 날은 극히 드문 경우인데,  2024년 12월 25일  성탄에는 오후 3시 초등학생들로 이루어진 주일학교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아침서부터 몸이 으슬으슬하고, 목도 칼칼한 것이 독감인가 은근슬쩍 걱정이 되는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요즘 독감이 유행이라는데...


좀 누워있다가 점심 먹은 후 마스크 쓰고, 목에 목도리도 두르고 성당에 가니, 3층엔 주일학교 어린이들만 가득하고  어른들은 모두 4층으로 올라가서 미사를 봉헌하게 되었다.


어린이 미사라서 아이들은 미사 중간중간 율동과 더불어 기도를 성가로 부르며, 신나고 재미있는 축제를 벌이는 듯한 모습이었다.


강론 시간이 되었다.

신부님께서는 제대에서 내려오셔서 웃으시며 아이들과 함께 성탄을 맞이한 모두에게 축하의 말씀을 하시며 서로서로 축하 인사를 나누라고 하시니,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이 큰소리로 축하를 나누는 모습에서 "오늘이 정말 성탄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산타할아버지에게서 모두 크리스마스 선물을 받은 게 분명했다. 산타할아버지를 믿지 않는 초등학교 고학년도 중학교 올라가기 전 까지는 선물을 은근히 바라는 마음이 있었을 테니까.


신부님께서는 아이들을 둘러보시며

"왜 아기 예수님께서 누추한 구유에서 탄생하셨을까요?"하고 물으셨다.


여기저기에서 "저요~저요~"하며 손을 드는 아이들이 많았다. 그중에서 앞 줄에 앉아 있는 아이 하나는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 손을 높이 들고 목소리도 크게 지르는 것이 4층에서도 보였다. 신부님께서는 웃으시며 그 친구를 지목했다. 앞 줄에 앉은 것으로 봐서 1학년인 것 같았다.


"면역력을 키우려고요!"


어찌나 큰소리로 대답하는지 4층까지 울렸고 4층에서는 "와아~" 하는 소리와 함께 웃음보가 터졌다.

ㅋㅋㅋ

신부님도 웃으시며 그 말도 맞다고 하시며 다른 아이들에게도 물으시는데 4층에선 키득거리는 소리가 계속 들렸다.


나도 키득거렸다.

지금까지 성탄 때 아기 예수님께서 집이 아닌 말구유에서 태어나신 이유를 많이 들어봤지만, 이렇게  "면역력을 키우기 위해서"라는 기발한 말은 처음이었다.


아마 어른들이 "아이들은 너무 깨끗하게 키우면 면역력이 약해진다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었나 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돌아와서도 그 말이 생각나서 혼자 웃었다.


"면역력을 키우려고~~~ㅋㅋㅋ

면역력을 키우려고~~~ ㅋㅋㅋ"


그러다가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맞다. 면역력을 키워야 해.

이웃과 잘 살아가려면 관계의 면역력을 키워야 하고.

감기에 걸리지 않으려면 에 면역력을 키워야 하고.

상처받지 않으려면 마음의 면역력을 키워야 하고.

고통을 이기려면 정신의 면역력을 키워야 하고.

죄짓지 않으려면 양심의 면역력을 키워야 하고."


아~ 그렇구나~

아기예수님께서는 우리 모두를 면역력 키우시려고 구유에서 태어나셨구나.~ㅋㅋ


성당에서 한바탕 크게 웃은 것이 약이 되었나 보다.

으슬으슬 거리며 추웠던 것도, 목이 칼칼하게 답답했던 것도 다 나았다.

면역력이란 말만 듣고 웃은 것 밖에 없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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