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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Aug 18. 2023

모리(Mori)에게 희망을

 나비가 될 수 있는 모든 재료는 내 안에 있다



옛날 옛적 어느 마을에 한 아기가 태어났습니다. 아기의 이름은 모리(mori)였습니다. 모리는 무럭무럭 자라나 어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문득 모리는 먹고사는 것만이 전부가 아닐 것 같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생각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다. 때때로 가슴이 텅 빈 것처럼 공허하고 알 수 없는 불안이 수시로 떠올랐다 가라앉곤 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리는 어딘가로 떼를 지어 몰려가고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향해 몰려가고 있는지 궁금해진 모리는 그들을 뒤쫓아갔습니다.


그들이 도착한 곳은 수많은 사람들이 서로를 딛고 밀치며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 거대한 기둥 앞이었습니다. 마치 하늘에 닫기 위해 끝도 없이 쌓아가는 바벨탑 같기도 했습니다. 


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는 알 수 없었습니다. 어디로 올라가고 있는 거냐고 물어보았지만 모두들 서로 딛고 밀치며 올라가느라 모리의 말을 듣지 못하는 것 같았습니다. "저 위에 내가 찾는 그것이 있을지도 몰라. 사람들이 전력을 다해 올라가는 걸 보면 분명 뭔가가 있는 거야." 모리는 생각했습니다. 


모리도 다른 사람들을 밟고 올라서며 전력을 다해 오르기 시작했습니다. 일단 기어오르기 시작하자 뒤처지지 않을까, 낙오되지 않을까 하는 조바심과 불안에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그렇게 위만 보며 기어오르던 모리는 우연히 자신과 같은 것을 찾고 있는 아모르(amor)를 만나 사랑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둘이 함께 있고 싶어진 모리와 아모르는 이야기를 나눈 끝에 함께 기둥 아래로 내려왔습니다. 모리는 아모르와 함께 있는 것이 행복했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기둥꼭대기에 무엇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은 커져만 갔습니다. 사람들은 모두 위를 향해 올라가고 있는데 자신만 멈추어 있는 것 같은 불안도 함께 커져갔습니다. 


다시 기둥을 오르기로 결심한 모리는 아모르에게 함께 가자고 말했지만 아모르는 기둥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곳에 머물겠다고 말했습니다. 기둥을 오르는 동안 아모르는 몸과 마음에 상처를 입었고 무척 지쳐있었습니다.


모리가 떠나고 혼자 남은 아모르에게 끊임없이 삶에 대한 물음들이 찾아왔습니다. 나는 누구일까? 왜 늘 뭔가를 잃어버린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걸까? 어떻게 해야 행복해질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나는 여기에 그냥 머물러도 괜찮은 걸까? 모리처럼 다시 올라가야 하는 걸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여느 날처럼 호숫가를 천천히 거닐던 아모르는 붉은 옷을 입고 통곡을 하며 춤을 추고 있는 늙은 여인을 보았습니다. 아모르는 알 수 없는 기운에 이끌려 통곡과 춤이 끝날 때까지 그녀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춤을 끝낸 평온한 얼굴의 늙은 여인과 마주 섰을 때  아모르는 그녀가 자신이 찾고 있던 것을 찾은 자임을 단박에 알 수 있었습니다. 아모르가 그동안 상상해 왔던 행복의 길을 찾은 자의 모습과는 많이 달랐지만 아모르 내면의 무언가가 그 늙은 여인이 그 길을 찾은 자라고 말해주고 있었습니다.


아모르가 간절히 청하자 늙은 여인이 입을 열었습니다.

"이 길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과정과 같단다. 나비의 삶을 원하는 애벌레는 익숙한 애벌레의 삶을 끝내고 나비가 되기로 결심을 해야 하지.  쉬운 길은 아니야. 익숙한 애벌레의 삶을 멈추어야 하거든. 그리고 자신의 몸속에서 고통스럽게 실을 뽑아내야만 해. 누구도 그것을 대신할 수는 없단다. 내 몸에서 뽑아낸 실로만 나의 고치를 만들 수 있거든. 네가 나비가 될 수 있는 모든 재료가 네 안에 있다는 걸 믿어야 해. 사람들은 그걸 믿지 못해서 바깥에서 끝없이 길을 찾고 있는 거란다. 


사람들이 자신이 밟힐까봐 서로를 밟으며 올라가고 있는 바벨탑 같은 기둥을 나도 알고 있단다. 나도 한 때 그 꼭대기까지 올라간 적이 있었지. 세상에는 그런 기둥들이 셀 수 없이 많단다. 물론 그 꼭대기에 올라서면 잠깐의 기쁨이 찾아와. 그리고 긴 허무함이 이어지지. 그리고 다시 다른 기둥을 찾아 올라가는 거야. 그곳엔 다른 무엇이 있지 않을까 기대하면서...

 

기억하렴, 바깥에서 찾은 행복은 손에 쥐는 순간 사라져 버린단다. 진짜 자유와 행복은 너의 내면에서만 찾을 수 있어. 바깥의 어딘가를 향해 올라키는 것을 멈추고 네 안으로 안으로 들어가야 한단다. 때로는 너의 살과 뼛속으로 들어가야 할 때도 있지. 


기억하렴. 너를 나비로 만들어 줄 고치의 재료는 언제나 오직 네 안에만 있단다. 

너 자신을 믿어야 해.


나비가 되는 일은 변형을 위해 고통을 선택하는 용기가 필요한 일이란다. 

자신의 내면에서 실을 뽑아내어 고치를 만드는 작업은 무척 지난하고 고통스러운 과정인 데다 고치 안에 들어가 나무에 매달려 오랜 시간을 견뎌야 하니까. 

두렵고 힘든 과정이지만 애벌레에게 이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단다. 


나무에 매달린 고치는 성장을 멈춘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 고치 안에서는 아무도 모르게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있단다. 

애벌레에서 나비로의 변형이 매일 조금씩 일어나고 있는 거야. 외로운 변화의 시간을 견디다 보면 때가 이르러 애벌레는 고치를 찢고 나비로 재탄생하는 거란다. 


한 사람이 진정한 자아를 찾아가는 길은 애벌레가 나비가 되는 여정과 같아. 자신의 내면에서 상처를 꺼내어 고치를 만들고, 고치 속에서 외로움을 견디며 홀로 새 살을 만드는 지난한 시간을 견뎌야 하지. 


밖에서는 보이지 않지만 용광로 같은 고치 속에서 변형하고 있는 자는 자신의 변화를 때때로 느낄 수 있단다. 물론 불안과 두려움이 엄습하는 순간들도 있지. 그래도 괜찮아. 그 불안과 두려움은 너의 본질이 아니야. 


그 시간들을 온몸으로 관통하다 보면 용광로 속에서 고통으로 정제되어 새롭게 태어나는 쇠처럼, 자신을 가두었던 고치를 찢고 나오는 나비처럼, 오래된 상처를 찢고 새롭게 태어나는 거란다."


이야기를 마친 여인은 아모르를 자신의 집으로 초대했습니다. 그리고 오래된 상자에서 그녀가 찢고 나온 수많은 껍질들(한 때는 그녀 자신이었고 그녀를 가두었던 고치였던)을 꺼내어 아모르에게 보여주었습니다. 아모르는 아직 가보지 않은 그 길이 두려웠지만 가슴이 뛰었습니다. 아모르의 마음은 이미 그 길 위에 올라서 있었습니다.

 


아모르가 여인을 만나고 있던 그 시간에 모리는 마침내 꼭대기에 도착했습니다. 여인의 말처럼 꼭대기에 올랐다는 잠깐의 기쁨 뒤로 허무와 불안과 혼란이 찾아왔습니다. 그곳에는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다른 곳에는 내가 찾는 것이 있을지 몰라.' 모리는 허무와 불안과 혼란을 달래기 위해 다른 기둥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 후로도 여러 기둥을 올라갔지만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한 모리는 다시 새로운 기둥을 찾아 길을 걷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모리는 한 호숫가에서 붉은 옷을 입고 통곡하며 춤을 추고 있는 한 여인을 발견했습니다. 모리는 알 수 없는 끌림을 따라 그녀에게 다가갔습니다. 세상에, 춤을 추고 있는 그 여인은 바로 아모르였습니다.







눈치채셨겠지만 이 이야기는 트리나 폴러스(Trina Paulus)가 쓴 <꽃들에게 희망을 hope for the flowers>이라는 책의 내용을 각색해 본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진정한 자아를 찾아 나선 한 애벌레의 여정을 담은 우화입니다.

 

모든 애벌레는 내면에 나비를 품고 있습니다. 나비가 되지 못하고 애벌레로 삶을 끝낸다고 해서 그 삶이 더 작거나 초라한 것은 결코 아님을 알고 있습니다. 

다만 나비가 되고 싶은 꿈을 가졌던 나에게는 가슴 뜨거워지는 우화였습니다. 

다시 이 책을 꺼내 읽다 보니 고통에 몸부림치다가, 살기 위해 '진정한 자아'를 찾아 떠났던 나의 지난 여정들이 떠올랐습니다. 


물려받은 살과 뼈를 열어 피 묻은 손으로 실을 뽑고, 그 실로 과거로 돌아가려는 나의 에고가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촘촘하게 고치를 만들고, 용광로처럼 뜨겁게 끓어오르는 고치 속에 스스로를 가두어놓고 새 살과 뼈를 만들어내던 길고 치열한 여정이 내게도 있었습니다. 


나의 집으로 당신을 초대합니다. 나는 붉은 옷을 입고 통곡하며 춤추는 또 한 명의 늙은 여인일지도 모릅니다. 나의 다락에서 오래된 상자를 꺼내어 내가 찢고 나온 껍질들을 당신께 보여드립니다. 

그 껍질들이 또 한 명의 아모르에게 말해줄지도 모릅니다. "아모르, 네 안에 나비가 있단다. 너는 나비를 품고 태어난 자야. 나비를 찾아 더 이상 밖을 떠돌지 마."


그리고 아모르는 모리의 희망이 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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