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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Aug 25. 2023


내면아이 치유에 관한 Q&A 1

어린 시절 잃어버린 나의 조각 찾기에 관하여





1. 내면아이는 누구인가요?


'내면아이'는 내 안에 살고 있는 상처받은 어린아이라는 의미로 주로 쓰입니다. 

나는 주로 '상처받은 내면아이'라고 부릅니다. 상처받은 어린아이는 우리 모두의 내면에 살고 있습니다. 하늘 아래 완벽한 부모도 완벽한 가정도 없기 때문입니다.


내면아이는 우리의 성인자아에 통합되어야 하는, 아직은 통합되지 못한 어린아이의 자아입니다. 내면아이는 뭔가 잘못되었다는 느낌이나 뭔가 잃어버린 듯한 느낌을 채워 줄 잃어버린 자아의 조각입니다.




2.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왜 내 안에 살게 된 건가요?


표현 그대로 상처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상처'는 '충족되지 못한 욕구' 때문에 느끼는 고통입니다. 


그렇다면 충족되지 못한 모든 욕구가 상처로 남을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나에게 반드시 필요했고 의미 있는 욕구가 거부되고 좌절된 경험이 '나만의 상처'가 됩니다.


예를 들면 학교에 다녀와서 사과가 먹고 싶었는데 사과가 없어서 먹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이 특별한 감정을 일으키지 않았다면 이 사건은 상처로 남지 않습니다.


반면 학교에 다녀와서 사과가 먹고 싶었는데 엄마가 내게는 말도 없이 하나 남은 사과를 동생에게 주었습니다. 이 상황이 나에게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켰지만 감정을 억압해야 했다면 내게는 잊히지 않는 상처로 남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 상황은 그저 사과를 먹지 못한 사건이 아니라, '엄마'라는 중요한 사람과의 관계에서 나의 '돌봄 받고 싶은 욕구'와 사랑받고 싶은 욕구'가 좌절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한 아이가 자신의 잠재성을 충분히 발휘하고 자신에게 충족감을 느끼는 삶을 누리는 성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 어린 시절에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욕구들이 있습니다. 아이를 위해 '가정'이 감당해야 하는 가장 중요한 역할은 이 욕구들을 충족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어린 시절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욕구들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요?

나에게 필요했지만 좌절된 욕구가 무엇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다음의 표를 참고해도 좋을 것입니다. 지금 당신의 내면에서 구조 신호를 보내고 있는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어떤 욕구가 좌절된 아이인가요?


    <잃어버린 자아의 발견과 치유 Healing The Child Within>, Chaeles L. Whitfield, M.D. 중에서 발췌




3. 상처받은 아이가 내 안에 있는지는 어떻게 알 수 있나요?


고통스러워서 지워버리고 싶은데 수시로 떠오르는 기억이 있나요? 

도망치지 말고 그 기억을 대면해 보세요. 고통스러운 기억(생각)이 떠오르면 다른 곳(일, 사람, 음식, 책, 술, 기도...)으로 도망치는 습관을 잠시 멈추고, 그 장면 속에 잠시 머물러 보세요. 당신이 만나고 싶지 않았던 그 기억 속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한 아이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기억에서 사라져서 발견하기 어려운 내면아이들도 있습니다. 우리의 뇌는 감당하기 어렵고 생존에 불리한 기억은 의식에서 지워버립니다. 이런 경우 사건의 내용은 잊히고 내가 통제할 수 없는 몸의 느낌이나 부정적인 감정의 흐름으로 경험하게 됩니다. 


만성적으로 행복하지 못하다는 감정을 느끼거나 혼란과 불안이 반복되며, 만성적 공허와 두려움을 느끼기도 합니다. 관계를(특히 남편이나 자녀 같은 친밀한 관계) 엉망으로 만들기도 하고, 가슴의 답답함과 어깨의 짓눌림, 묶여있는 느낌, 안갯속에 갇힌 것 같은 모호함, 쉴 수 없음 등의 신체적 증상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것들은 의식에서 지워졌지만 내 몸과 무의식에 살고 있는 내면아이들이 보내는 구조신호입니다.


현재의 내 몸과 감정, 그리고 관계 패턴은 과거의 기록입니다. 나의 불편한 감각과 고통스러운 감정, 엉망이 된 관계 속에는 상처받은 그때 그 아이가  살고 있습니다.




4. 상처받은 내 안의 아이를 만나기 힘든 이유는 무엇일까요?


*내면아이치유가 시작되기 위해서는 소중한 것들을 상실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고통을 느끼기 두려워서 상실과 결핍을 부인합니다. 나는 괜찮아, 나는 문제없어, 나는 상처받은 적 없어, 나는 강한 사람이야, 그건 별일 아니야, 그건 지나간 일이야 라고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자신을 설득하고 강요합니다. 


*내면아이는 어른스럽지 못하고 미성숙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내면아이를 신뢰하지 못합니다.  내면아이를 인정하고 만난다면 그 미성숙한 아이가 내 삶을 망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있습니다.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어린 시절에 부모로부터 외면당하고 비난받았던 아이입니다. 보호받고 싶었지만 보호받지 못했고, 이해받고 싶었지만 이해받지 못했고, 사랑받고 싶었지만 사랑받지 못했던 아이입니다. 


우리가 행복을 원하지만 행복하기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어린 시절 부모가 나를 대했던 방식대로 나 자신을 대하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부모가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울고 있는 내면아이를 외면하고 비난하고 있지는 않나요?

넌 할 줄 아는 게 없어, 넌 멍청해, 넌 태어나지 말았어야 했어, 너같이 독한 년은 세상에 없을 거다, 너 때문에 내 팔자가 꼬였어, 넌 화냥년이야, 넘 아들로 태어났어야 했어, 넌 딸로 태어났어야 했어, 넌 약해 빠졌어, 넌 쓸모없는 아이야...


*내면아이는 보이지도 않고 만질 수도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그런 존재에 대해 두려움을 가집니다. 내가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나의 내면에 그런 존재가 있고 그 존재에게 압도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은 우리를 도망치게 하고 망설이게 합니다.



당신의 두려움과 망설임을 이해합니다. 문지르면 힘센 거인 지니가 나타나는 요술램프를 가지고 있다 해도 그 거인이 내편이라는 확신이 없다면 어떻게 램프를 문지를 수 있겠습니까. 


사실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지니보다 더 확실하게 당신의 삶을 바꿔놓을 수 있는 힘을 가졌습니다. 지니는

눈에 보이고 만질 수 있는 것들을 당신에게 가져다주겠지만, 치유된 내면아이는 보이는 것들로는 도무지 메울 수 없었던 내면의 공허를 채워주고, 갑옷을 입은 듯 굳어있던 당신의 몸에 따뜻한 피와 생생함이 흐르게 할 것입니다. 




4.  상처받은 내면아이를 인정하고 그 아이의 상처를 이해하는 것만으로 치유가 되나요?


'치유'는 삶이 달라져야 완전한 치유입니다. 삶의 변화는 상처의 발견과 이해, 공감만으로는 일어나지 않습니다. 


나의 내면아이는 이러저러해서 상처를 받았구나. 이러저러한 욕구가 결핍되었구나라고 이해하는 것은 치유의 구체적 여정을 시작하기 위한 준비 작업과 같습니다. 

의사가 환자의 개인적 히스토리와 병력과 통증을 탐구해서 구체적 병명을 진단 내렸다고 해서 병이 낫지는 않습니다. 


내면아이치유의 핵심은 몸과 무의식에 갇혀있는 감정들을 해방시키는 것입니다. 억압된 감정은 시간이 흐른다고 해서 그냥 사라지지 않습니다. 감정은 내가 그대로 인정하고 수용하고 온몸으로 느껴주면 내 삶을 풍요롭게 하는 내 편이지만, 억압하고 외면하고 방치하면 나를 공격하고 고통스럽게 합니다. 


감정은 어떤 상태에 관한 이미지나 이름이 아니라 살아서 움직이는 에너지입니다. 

상처로 남아있는 그 순간으로 뛰어들어가 그때 느껴야 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그 아이의 감정을 온몸으로 느끼십시오. 


불타는 장작처럼 온몸으로 감정을 불태우십시오. 다 타고 재만 남은 자리에서 새로운 삶이 시작됩니다. 온몸으로 울고 온몸으로 웃는 어린아이를 떠올려 보세요. 어린아이들은 감정을 온몸으로 완전히 누리기 때문에 과거의 감정에 묶이지 않는 존재들입니다.


회피했던 고통 속으로 온몸으로 뛰어들고, 내 안에서 절규하고 통곡하고 있는 것들을 토해내야 합니다

 

당신이 내면아이의 감정을 느끼는 모험을 시작하는 초보 탐험가라면 반드시 안전한 공간에서 감정 작업을 하십시오. 방해받지 않고 당신의 감정을 비난할 사람이 없는 곳에서 시작하십시오. 이 작업에 경험이 많고 자신의 삶의 변화를 이루어낸 사람이 가이드 겸 목격자가 되어준다면 더 완전한 작업이 될 것입니다. 그 사람이 당신의 두려움을 진정시키고 당신이 가닿고 싶은 지점을 보여주는 거울이 될 것입니다.




5. 내면아이에게 내가 해주고 싶은 대로 해주면 치유가 되는 건가요? 


상처받은 내면아이는 세상에 한 번도 알려지지 않은 아이입니다. 그 아이에 대해서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왜냐하면 누구도 그 아이의 말을 들어준 적이 없고 그 아이의 감정을 물어본 적도 공감해 준 적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 아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알지 못합니다. 누구도 궁금해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당신 안에 살고 있지만 당신은 그 아이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 아이를 내면의 깊은 우물 속에 가두고, 그 아이가 뛰쳐나올까 봐 전전긍긍하고, 그 아이가 자신의 감정과 욕구를 드러낼까 봐 당신이 그 아이의 입을 틀어막았습니다. 


당신은 내면아이가 진정으로 무엇을 느끼고 무엇을 원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니 반드시 물어보십시오. 그 아이가 듣고 싶어 하는 목소리로 다정하게 이름을 불러주고 무엇을 느끼는지 무엇을 생각하는지 무엇을 원하는지 물어보십시오.


너무 오래 방치된 아이는 처음에는 당신을 외면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절대 포기하지 마십시오. 그 아이는 수십 년 동안 어두운 곳에 갇혀 당신만을 기다려 왔습니다. 그 아이를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오직 당신뿐입니다





6. 내면아이치유작업을 하다 보니 부모님에게 사과를 받고 싶은데 그래도 되나요?


꼭 받고 싶다면 부모님에게 사과를 요청해도 되겠지만 당신의 치유에 도움이 될 만큼 진정한 사과를 받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들도 인생 초기에 자신들의 욕구를 채우지 못한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치유되지 않은 감정 문제를 고스란히 지닌 채 결혼을 하고 부모가 된 그들은 자신들의 상실과 결핍을 충족하고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자녀를 감정의 쓰레기통으로 삼고, 수치심을 가려줄 방패로 삼고, 대리 배우자로 삼고, 자신의 상처를 위로해 줄 대리 부모로 삼았던 것입니다.


그들이 자신의 어린 시절을 들여다보고, 자신의 상실과 결핍을 인정하고, 자녀들의 어린 시절에 있었던 일들에 대해 스스로 책임지겠다는 용기를 내기 전까지는 당신이 그들의 진정한 사과를 받기는 쉽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도 고통을 회피하기 위해 평생을 다른 곳으로 도망치며 살아왔습니다.  당신보다 나이가 들었을 뿐 울고 있는 아이가 그들의 내면에 여전히 살고 있습니다.


사실 부모의 사과를 받는 것은 중요한 일도 아니고 반드시 필요한 일도 아닙니다. '나는 상처받았다'라는 표현은 네가 상처를 주었다는 의미를 내포합니다. 그래서 상처를 해결할 수 있는 주체가 상처를 준 너라고 믿습니다. 그래서 너의 사과가 필요하다고 믿게 됩니다. 


내면아이치유를 통해 우리가 이르고자 하는 지점은 부모의 사과나 부모와의 화해가 아닙니다. 부모가 여전히 당신 삶을 침범하고 있다면 부모와 물리적인 거리를 두는 것을 강력하게 추천합니다. 


부모의 사과를 받아도 좋고 받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우리의 목적지는 어린 시절 부모와의 관계에서 입은 상처를 어른이 된 내가 책임지는 것입니다. 상처를 받았으니 상처를 준 사람을 가해자로 계속 비난하면서 나는 영원한 피해자로 남고 싶은 달콤한 유혹을 잘라내야 합니다. 


그리고 나 자신에게 이렇게 말해주는 것입니다. 

그래, 내가 어린아이였을 때는 나의 생존과 행복이 부모에게 달려 있었지. 나의 욕구를 충분히 채워줄 수 없는 부모였어. 나는 상처받았고 어린 시절의 상처 때문에 지금도 고통받고 있는 것도 맞아. 그렇지만 나는 더 이상 어린아이가 아니야. 나 자신을 계속 피해자로 묶어둔다면 나는 내 인생의 주도권을 잃게 돼.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이제 나의 결핍은 내가 채우고 내 행복도 내가 책임질 거야. 나는 나를 가두었던 과거로부터 내 발로 걸어 나갈 거야.


                                  Painted by 해원, <나의 상처받은 내면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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