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 공주가 웬 말인가? 동네 사람들은 우리 집을 가리켜 칠 공주 집이라고 불렀다. 그 말은 일곱 명의 딸부자 집이라는 말이었다. 어렸을 적 나는 그 말이 싫었다. 공주라는 표현이 우리를 조롱하는 것처럼 들리기도 했다. 아마 아들을 낳기 위해 딸들을 줄줄이 낳은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나의 자격지심 때문에 그렇게 들렸는지도 모른다. 슬프게도 우리 엄마는 아들 낳기에 실패했다. 그리고 우리 엄마가 여섯째를 낳았을 때, 급기야 우리 할머니는 눈물을 손수건으로 찍어 누르며 우셨다. 또 손녀딸이라는 사실에 할머니는 절망하셨다. 어린 나는 우리 엄마가 아기를 낳다가 죽은 줄 알았다. 할머니가 엄마가 죽어서 슬픈 줄 알았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그 때 딸을 낳는 게 여자의 잘못이 아니라는 걸 알았다면 친할머니를 많이 미워했을 것 같다. 엄마는 먼 곳에서 일하고 계신 아빠에게 종종 가셔야 했기 때문에 큰언니는 그 빈자리를 채워야 했다. 큰 언니는 그야말로 독재자였다. 우리 자매들 위에서 왕처럼 군림했다. 심지어 우리가 볼 수 있는 프로그램과 볼 수 없는 프로그램을 정하여 보지 못하게 하였다. 보지 못하게 했던 프로그램 중 하나가 명화극장의 특정 장면이었다. 그 이유는 키스 신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동생들은 언니 말을 잘 따랐다. 나만 빼고. 나는 늘 궁금한 게 많았다. 왜? 왜 그래야 하는데? 권위적이었던 큰 언니는 둘째도 아니고 셋째도 아닌, 넷째인 내가 대드는 것을 하극상이라고 생각했다. 결국 내가 언니의 분노를 터뜨리게 만드는 사건이 터졌다. 어느 날, 큰 언니와 우리는 명화극장에 푹 빠져 TV를 보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큰 언니가 우리에게 명령했다. 이불 뒤집어 써. 우리는 일사분란하게 이불을 뒤집어썼다. 그리고 우리는 소리로만 상상의 나래를 펴야만 했다. 그 순간, 나는 이불을 휙 젖히고 큰언니에게 대들었다. 그런데 언니는 왜 봐? 왜 우리만 못 보게 해? 언니의 분노는 광선을 쏘아대는 눈빛과 코에서 뿜어내는 열기로 보아 극에 달했음을 알 수 있었다. 나는 마지막 한 방을 날렸다. 나도 보고싶다구. 신기하게도 그 뒤는 어떻게 됐는지 생각이 안 난다. 우리 모두 보게 했었는지, 언니도 TV를 끄고 명화극장 보기를 포기했는지. 오늘 오랜만에 자매들이 만나 밥을 먹었고 차를 마셨고 수다를 떨었다. 그 때 그렇게 억울했던 시간들을 공유하고 있는 우리는 밤새워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시간들이 한 해 한 해 줄어들고 있다. 그것이 재작년 보다 작년이, 작년 보다 올해가 더 소중해지는 이유다. 오늘, 자매들에게 하지 못했던 고백이 있다. 칠공주 중 넷째 딸로 태어나서 좋았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