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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 법대로 한다 Oct 01. 2022

별 거 없는 이별

‘좋은 사람 만났으면 좋겠어’


그는 예상했다는 듯 감정을 꾹 눌러 말을 했다. 도대체 저 말이 나오기까지 난 그에게 얼마나 상처를 준 걸까. 


이미 그는 한 차례 눈치를 많이 채고 있었다. 감정이 예전 같지 않다는 말을 내게 들은 이후 그는 정말 최선을 다해 노력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별을 통보했을 때는 그는 얼마나 무력감이 들었을까.


그는 줄곧 한결같이 우리의 미래를 약속해왔다. 그리고 최근 들어 부쩍 더 우리의 미래를 그렸다. 그런 그의 입에서 좋은 사람을 만나라니. 날 놔주는 것보다 그가 받은 상처의 무게가 느껴져 더 아렸다. 병 주고 미안해하고 내가 미친년이다.


봄날의 햇살처럼 참 따뜻한 사람이었다. 출근길부터 회사 점심시간 업무 틈틈이 집에 가서도 그는 줄곧 내게 전화와 카톡을 했다.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이 24시간 들 정도로.


시간이 날 때마다 참 많이 쏘다녔다. 일출을 보러 동해로 가기도 하고, 안면도로 떠나고, 서해안으로 칼국수를 먹으러 가고, 추억을 차곡차곡 쌓았다. 그렇게 좋을 때는 참 좋았던 우리다. 눈만 마주쳐도 웃었으니.


문제는 좋을 땐 참 좋았지만, 번번이 가치관의 차이로 부딪치는 일이 생겼고, 결국 싸움으로 번졌다. 연인은 많이 싸워봐야 한다. 그래야 맞춰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참 많이 싸웠던 걸까. 문제는 우리는 싸움의 방식이 너무 달랐고, 싸움이 지속될 때마다 난 피로감이 쌓였고, 그렇게 마음의 문이 서서히 닫혔다. 우리의 사랑은 다를 줄 알았지만, 우리의 사랑도 결국 다른 연인들과 마찬가지고 참 별 볼일 없이 끝났다.


그렇게 그의 출근 모닝콜이 없는 아침을 맞이했다. 침대에서 비몽사몽 떠들고 있어야 하는데 느지막이 일어나는 일상이 낯설다. 내 사진으로 가득했던 그의 카톡 프로필 대신 기본 이미지로 설정된 그의 프로필. 나도 정리를 해야겠다. 그를 위해.


매일 챙기던 나의 끼니. 내 끼니를 걱정하던 사람이 사라졌다. 하루 종일 빡센 녹화를 끝내고 퇴근하는 길, 나의 고단함을 함께 나눌 사람이 사라졌다. 인스타에 맛집이 뜬다. 맛집 피드를 공유하고 함께 갈 사람이 사라졌다.


헤어짐은 늘상 이렇다. 내 삶의 일부가 툭하고 잘려 나간다. 다정했던 연인일수록 더욱더. 일상을 공유하고, 깊은 감정을 공유하고, 언제나 내 편이었던 연인이자 베프가 사라져 버린다.


우리의 사진첩을 본다. 1000장 넘게 쌓아 올린 우리의 추억. 아직은 삭제를 못하겠다. 이걸 지워버리면 내 지난 시간도 아무것도 아닌 게 돼버리니깐.


가끔은 미친 생각을 한다. 할리우드처럼 우리도 지나간 연인이 친구로 남았으면 좋겠다. 한 살 한 살 먹어갈수록 인연이 소중한데, 그럼 친구라도 건질 수 있으니. 우리의 지나간 세월이 아무것도 아닌 게 될 수 있으니. 알고 있다. 이기적인 욕심인 거.


그렇게 또 내 인생의 공백기가 생겼다. 스무 살 때부터 지금까지 이제는 적응이 될 법도 한데, 여전히 적응이 안 된다. 이 놈의 이별은. 한 땀 한 땀 쌓아 올린 사랑이 싱크홀처럼 매 번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진짜 부질없다 사랑. 사랑도 지친다 이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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