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아날로그숲 Sep 03. 2021

나만의 허브가든

정원사의 마음으로 살아가기

이탈리아 가정집에는 바질 화분 하나씩은 있다고 한다. 이탈리아는 아니지만 우리 집에도 바질 화분은 늘 있는 편이다. 파스타를 자주 해 먹기 때문인데 이 바질이 집안에서 키우기 은근히 까다로운 식물이라는 사실! 잎이 달아 벌레도 잘 꼬이고, 통풍도 잘 시켜줘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다.


양평 산속에 부모님의 주말 집이 있다. 평생 서울살이만 하셨던 부모님께서 전원생활의 로망을 품고 (정확히 말하면 엄마는 별로였으니, 아빠의 로망이 맞겠다.) 7년 전쯤 지은 자연 속 작은 집이다. 덕분에 우리는 마음껏 자연을 누리는 호사를 누린다. 지금 같은 코로나 시대에는 더 말할 나위도 없다.


그냥 자연에 가까운 정원을 가꾸며 소일하시는 부모님을 돕다 보니 식알못이던 나도 자연스럽게 식물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그러면서 나만의 허브가든을 꾸리고 싶다는 로망을 갖게 됐다. 하지만 부모님과 식물 취향이 달라도 너무 달랐던 탓에  강력하게 주장을 펼치지 못했다. 책임지고 지켜낼 자신이 없었으므로.


대신 집에서 키우던 바질을 가져다가 양평 집 정원 한쪽 구석에 옮겨 심었다. 영 비실비실 맥을 못 추던 녀석이라 자연에서 햇빛도, 바람도, 비도 마음껏 맞으면  건강하게 잘 자랄 거라 기대했다.


그런데 나의 바람과 달리 적응부터 쉽지 않았다. 밤새 맞은 이슬에 잎이 무겁게 늘어져서 땅에 닿을 듯 말 듯 위태로웠다. 유난히 초록 초록한 정원의 식물들 사이에서 옅은 초록색의 바질은 가냘프다 못해 병약해 보였다. 괜히 옮겼나? 걱정하는 나에게 엄마가 말씀하셨다.


이젠 스스로 적응해야지 별 수 없어. 기다려 봐. 그게 자연의 섭리니까.


육아도 마찬가지다. 내가 아이들에게 해줄 수 있는 건 어느 정도의 환경일 뿐. 그 이상은 스스로 해야지 별 수 없다. 엄마인 나는 그저 응원하고 격려하고 언제든 안길 품을 내어줄 준비를 하며 기다린다. 그게 다다.


저절로 엄마의 마음으로 동기화된 나는 한동안 양평 집에 갈 때마다 제일 먼저 바질부터 살폈다.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잎이 짙어지고 꼿꼿해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정원의 일원으로 당당하게 자리를 잡아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는 내가 다 뿌듯했다. 꽃은 정원사가 심지만, 키워내는 건 자연이라더니. 역시 엄마의 말씀이 옳았다.


그 후로 부모님 따라 화원에 갈 때마다 애플민트, 체리세이지, 잉글리시 라벤더같이 노지 월동이 가능한 허브들을 야금야금 사다가 바질 주변에 심었다. 물론 바질도 좀 더 사다 심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됐다.

하얀 꽃을 피우는 바질
연보랏빛 꽃을 피우는 애플민트

어느덧 정원 한쪽 구릉 진 언덕이 허브들로 가득해졌다. 여러 종류의 허브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룬 꽤 그럴싸한 허브가든이 만들어졌다. 노지에서 겨울을 난 바질은 초록이 짙고 널따란 잎을 가진 허브가든의 대장이 됐다. 바질에서 꽃이 핀다는 사실도 처음 알았다. 식물이니 꽃을 피우는 게 당연하거늘, 바질을 그렇게 키우면서도 바질 꽃을 한 번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연에서 자란 허브는 줄기도 굵고, 향도 더 짙었다. 허브향이 바람을 타고 정원 구석구석으로 배달됐다.


지난여름, 애플민트 잎을 따다가 모히또를 만들어 시원하게 마셨다. 바질 잎으로는 바질 스콘을 만들어 먹고, 파스타, 피자에도 듬뿍 올려 먹었다. 잉글리시 라벤더는 꽃대를 잘라 굴비 엮듯 엮어 거꾸로 매달았다. 잘 말려 집안 곳곳에 걸어두니 온 집안에 라벤더 향이 가득해졌다. 이러니 내가 허브를 애정 할 수밖에.


민트향이 시원한 청귤 모히또 & 첫째가 만든 바질 스콘
잉글리쉬 라벤더 말리기


작년 남해에서 우연히 지나갔던 로즈마리 숲길이 생각났다. 처음엔 로즈마리인 줄도 몰랐다. 바람결에 마스크를 뚫고 들어오는 향기 덕분에 뒤늦게 알아차리고 깜짝 놀랐던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전까지 내가 본 로즈마리는 화분에 심어진 여리여리한 풀이 전부였는데… 로즈마리 나무라니! 감탄 그 자체였다. 그리고 그때 처음 알았다.  


“남해의 태양과 해풍을 맞고 자란 로즈마리는 나무가 되는구나... ”


양평 집 정원의 허브들도 해를 거듭하면 나무가 될까? 점점 굵어지는 녀석들을 보면서 생각한다. 그리고 나도 굵어질까? 몸 말고, 마음이.

나도 나무가 되고 싶다.


남해 다랑이 마을에서 우연히 걷게 된 로즈마리 숲 길









작가의 이전글 나답기를 거부합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