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의 나와 이별하기.
드라마 속 이별 장면에서 빠지지 않고 나오는 대사가 있다. 이별을 통보받고 질척대는 주인공에게 상대는 꼭 이렇게 말한다.
“너답지 않게 왜 이래?”
그러면 주인공은 이별 통보를 받았을 때보다 더 황당한 표정으로 부들부들 떨며 되묻는다.
“나다운 게 뭔데? 나다운 게 뭔데?!!!”
나다운 게 대체 뭐길래 이별 앞에서도 질척거리면 안 되는 걸까? 평소엔 세상 쿨한 사람도 사랑 앞에서는 세상 찌질 할 수 있지 않은가! 이런 사람은 꼭 계속 이래야 하고 저런 사람은 꼭 저래야 한다는 법이 있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요즘은 그 어느 때보다 자신에 대한 관심이 높다. 그 예로 온라인상에서 유행하는 MBTI가 있다. 정신분석학자인 융의 심리 유형론을 토대로 만든 성격유형 검사 도구로 모든 사람의 성격을 16가지 유형으로 나눈다. (참고로 나는 소심한 관종이 많다는 INFP입니다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다. 성격도 마찬가지이다. 인지심리학자 김경일 교수는 보통 4년에 한 번씩 MBTI가 바뀐다고 한다. 사람은 살면서 경험을 통해 배우고, 느끼고, 깨달으면서 스스로 변화한다. 외부적 충격으로 어쩔 수 없이 변화하기도 한다. 오늘 흐르는 강물이 어제의 강물이 아니듯 우리는 자의든, 타의든 변화할 수밖에 없다.
이런데도 누군가에게, 혹은 나에게 너답지 않다, 나답지 않다고 함부로 쉽게 말을 수 있을까?
그렇다고 삶의 기준을 타인이 아닌 나에게 맞추라는 뜻으로 나답게 살라는 말까지 부정하는 건 아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내 삶의 주인공은 내가 되어야 한다. 다만, 나다움에 나를 가두지 않길 바랄 뿐이다. 그래야 더 자유로워질 테니까. 원래의 나는 저랬으니까 이러면 안 돼가 아니라, 원래의 나는 저랬지만, 이렇게도 해보자가 될 수 있게 말이다. 때론 내가 아닌 다른 나로 살아보는 것도 꽤 신선하고 재밌지 싶다. 그래서 요즘 부캐가 그렇게 유행인가 보다.
부캐란?
본래 게임에서 사용되던 용어로, 온라인 게임에서 본래 사용하던 계정이나 캐릭터 외에 새롭게 만든 부캐릭터를 줄여서 부르는 말이다. 이후 일상생활로 사용이 확대되면서 ‘평소의 나의 모습이 아닌 새로운 모습이나 캐릭터로 행동할 때’를 가리키는 말로 사용되고 있다.
꼭 연예인이 아니더라도 본캐와 부캐를 오가며 자유롭게 자신을 표현하고 발전시키는 사람들이 많다. 세포가 분열하듯 한 사람이 본캐와 부캐로 분열하며 여러 우물을 파는 N 잡러들이 늘어나는 요즘. 본캐 하나로 여기저기 돌려 막기 하며 우려먹는 안타까운 사람이 나는 아닌지 돌아보게 한다.
40년 넘게 한 캐릭터로 살았으니 이제부터라도 지금의 나와는 다른 나로 살아보면 어떨까, 그래서 용기를 내는 중이다. 소심했던 나를 뒤로하고 뻔뻔해지기로! 그런 나에게 누군가가 이렇게 말할지도 모르겠다.
“너답지 않게 왜 이래?”
그러면 나는 당당하게 되물어주겠다.
“그래서 뭐? 어쩔 건데?”
뭐, 싸우자는 건 아니고… 그냥 그렇다는 거다. 이제부터 나는 나답지 않기로 했으니까, 뻔뻔해지기로 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