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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날로그숲 Sep 27. 2021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사춘기 두 딸과 함께 성장하기

질풍노도의 시기에 접어든 중1, 초5 두 따님 덕분에 하루에도 몇 번씩 감점의 롤러코스터를 탄다. 이게 울 일이야? 이게 화낼 일이야? 싶지만, 아이들은 세상 심각하다. 쉽게 상처 입고, 툭하면 울고, 화내고, 따지고, 극혐 하고. 또 상처 입고 울고... 뫼비우스의 띠처럼 끝도 없이 계속 뙤는 감정싸움. 그 중심에서 나는 외치고 싶다.

아~놔! 드럽게 힘드네! 엄마 노릇 못 해 먹겠다! 증말~~~!!!

솔직히 고백건대 엄마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도망치고 싶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런데 어디 그럴 수야 있나. 이성의 끈을 부여잡고 결국 어른인 내가 마음의 중심을 잡을 수밖에. 아이들의 감정에 같이 휩쓸리는 날에는 모든 상황이 극으로 치 닿고 만다. 지난 토요일처럼 말이다.  


근교로 나들이를 가던 길이었다. 둘째가 좋아하는 방탄소년단의 노래를 들으며 기분 좋게 출발했다. 마침 토요일 오전 치고는 도로 사정도 나쁘지 않아 막힘 없이 시원하게 달릴 수 있었다. 하얀 뭉게구름이 CG처럼 펼쳐진 파란 하늘 아래 윤슬로 반짝이는 한강까지. 너무나도 평화로운 가을 풍경이었다. 하지만, 평화는 잠시, 폭풍전야의 고요였을 뿐.  


두 딸은 누가 먼저라 할 것도 없이 서로에게 시비를 걸고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무슨 사춘기의 의무라도 되는 양 날 선 신경전을 이어갔다. 그 시절을 지내본 사람으로서 아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었다. 나 역시 두 살 터울 여동생이 있고, 우리도 무지막지하게 싸웠으니까. 그래서 참고 기다렸다. 가능한 개입하지 않고 객관적 입장을 유지하려고 노력했다. 참고 또 참았다… 그러다 결국 버럭하고 말았다.


“다들 그만 못 둬?!!!”


이런…! 비로소 조용해졌다. 결국 이걸 원한 거였나? 엄마인 나에게서 싸움을 멈출 명분과 핑계를 찾은 건 아닌지 의심스러웠다. 왜 엄마인 나는 늘 악역을 맡아야 하는지. 아무튼 말려들고 말았다. 기왕 이렇게 된 거 잔소리 몇 마디를 마저 더 하고 다른 말로 화제로 돌렸다. 나는 노련하게 우스갯소리를 해가며 분위기를 환기시켰다. 다시 분위기가 살아나는 듯했다. 나름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칭찬했다.

그런데 첫째가 훌쩍훌쩍 우는 게 아닌가! 어찌나 서럽고 처연하게 울던지. 그래, 그럴 수 있다. 나 역시 그랬으니까. 지금 애들 못지않게 엄마에게 따지고, 대들고, 화내고, 울었던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엄마는 그런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곤 했다.


“더도 덜도 말고 딱 너 같은 딸 낳아봐라!”


결국 엄마의 말씀대로 됐다. 나를 똑 닮은 딸이 내 뒤에 앉아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흘리며 울고 있지 않은가! 이 역시 나는 이해할 수 있었다. 때로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분으로 울기도 하니까. 그럴 땐 차라리 실컷 울고 나면 마음의 울분이 풀리곤 한다는 걸 알기에 첫째의 마음이 가라앉기를 기다렸다.


잠시 후 감정이 잦아든 첫째가 조목조목 자기가 왜 울었는지에 대해 말했다. 그 말에 이번엔 내가 서럽게 눈물이 터지고 말았다. 갓갓으로 잡고 있던 이성의 끈이 툭하고 끊기면서  정말이지 목 놓아 엉엉 울었다. 가족 모두가 당황스러워하는 걸 알면서도 울음을 멈출 수가 없었다. 차 안은 나의 울음으로 가득 찼다.

나는 나대로 애들의 감정을 존중해 주려고 최선을 다했는데 첫째는 결국 그런 나 때문에 감정이 상했다고 했다. 두 딸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려고 했던 나의 말이 첫째에게는 서운하기만 했나 보다. 그것도 모르고 나름 잘했다며 속으로 자화자찬을 했으니... 민망하기도 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설움이 북받쳤다. 그 순간 오은영 박사였다면 ‘아, 그랬구나. 그래서 많이 속상했구나.’라고 받아줬겠지만, 나는 오은영 박사가 아닐뿐더러 나 역시 못지않게 기분이 상했다.


엄마도 이랬을까? 이랬겠지…!

문득 엄마 생각이 났다. 엄마가 되기 전에는 엄마는 다른 줄 알았다.  엄마니까 괜찮을 줄 알았고, 엄마니까 당연한 줄 알았다. 그 시절 엄마는 지금의 나보다도 훨씬 어렸는데도 말이다. 그런데 막상 내가 엄마가 되고 보니 엄마라고 다를 거 하나도 없다는 걸 알았다. 똑같이 상처 받고, 똑같이 아프지만 괜찮은 척했을 뿐, 당연한 건 없었다.   ‘우씨~ 나도 엄마 있어! 우리 엄마한테 너네들 다 이를 거야!’


애들에게 버럭 소리치고 싶은 걸 겨우 참았다. 한번 울음이 터지니 한없이 유치해졌다. 그래도 그 순간 내 편이 되어 줄 엄마가 있다고 생각하니 든든했다.


개인적으로 최고의 육아 서적이라 믿는 <피터팬>에 이런 장면이 나온다. 피터팬의 무리에게 엄마 같은 웬디가 생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 후크 선장이 격분하며 이렇게 말한다.

이제 게임은 끝났어.
녀석들에게 엄마가 생겼단 말이야!


엄마란 그런 존재다. 더 이상 어떤 설명이 더 필요할까. 존재만으로도 힘이 되고, 천군만마 부럽지 않은 최고의 지원군인 엄마. 그런 엄마에게 미안해서 눈물이 났다. 건강히 곁에 계셔주신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해서 또 눈물이 났다. 자꾸자꾸 눈물이 났다.


목적지에 거의 도착할 때 즈음 첫째가 내게 물었다. 왜 그렇게 울었냐고. 순간 창피했지만, 솔직히 말했다.


“엄마, 그러니까 너희 할머니한테 미안해서 그랬어. 나도 엄마가 처음이라 힘든데 우리 엄마도 그랬겠구나 싶어서….”


그리고 애들과의 오해도 풀었다. 나의 의도는 그런 뜻이 아니었노라고, 나도 엄마이기 이전에 사람이라 똑같이 상처 받으니 우리 서로 조심하자 말했다. 감정을 차근차근 말해줘서 고맙단 말도 잊지 않았다.


그날 저녁, 엄마에게 전화해 두 딸의 만행(?)을 몽땅 일러바쳤다. 어찌나 속이 후련하던지. 엄마는 그런 나를 다독이며 말씀하셨다.

“이 시기만 지나면 또 편안해져. 너무 걱정하지 말고 안달복달하지 마. 너희도 다 그랬어.”

엄마 덕분에 육아의 한 고비를 또 이렇게 넘기는구나… 나에게 엄마가 그렇듯, 아이들에겐 엄마인 내가 그런 존재겠지? 퍼뜩 정신이 들었다. 이성의 끈을 다시 이어 더 단단히 잡고 마음의 중심을 잡자! 두 딸이 엄마인 나에게 기대어 사춘기라는 인생의 첫 번째 고비를 무사히 넘길 수 있도록 말이다.


나도 엄마는 처음이라 매일 깨지고 깨닫고를 반복하며 사춘기 두 딸과 함께 엄마로 성장 중이다. 그럼에도 엄마 노릇은 언제나 참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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