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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나나 Feb 06. 2022

생각을 그만할 필요성이 있다.

리처드 칼슨 '스톱씽킹'을 읽고

야근을 끝마치고 사람들이 드문드문 서 있는 지하철에서 벗어나 코시국이다 보니 이미 반쯤은 잠이 든 거리에 올라서면 차가운 겨울밤의 공기가 기분이 좋다. 하루 종일 모니터를 바라다보면 꼭 퇴근 시간이 다가올 때는 두통이 찾아오곤 하는데 열이 눈과 눈 사이의 미간으로 몰려있다 겨울의 찬 공기에 겨우 제 온도를 찾아가는 듯하다. 터벅터벅 무거운 다리를 던지면서 직진 2분. 오랜 시간 앉아서 일하다 보니 퉁퉁 부은 다리를 좀 더 멀리 휘적여 던지다 걸음을 크게 우회전하여 다시 또 직진 3분. 쓸데없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가는 차에 이어폰을 괜스레 꾹 눌러 귓속으로 밀어 넣으면서 수 분을 걷다 보면 오르막길 앞에 도착한다. 


이 가파른 골목만 지나면 따뜻한 방 한 칸의 휴식에 들어갈 수 있다. 골목으로의 첫걸음을 떼면 이내 허벅지 근육이 피곤함의 비명을 내지른다. 마스크 안 쪽으로 습기가 축축하게 고여 내쉬는 숨결에 물방울이 튀어 오른다. 아직 몇 걸음 남아있는 오르막 저 윗편에 위치한 집을 올려다보면 내 안식이 너무 멀리 있다는 생각이 가끔 든다. 


겨우 겨우 올라가 정말 마지막 힘을 끌어내어 계단까지 오르면 그제야 문 앞에 도착하고, 문을 열자 편안함이 도래한다. 드디어 나만 존재하는, 나만 아는 공간. 고요하게 불 꺼진 방이 너무나도 반갑다. 하지만, 아뿔싸! 불을 켜자마자 나타나는 아침에 차마 하지 못한 설거지 더미들. 빨래가 쌓여있는 빨래통. 가득 찬 쓰레기통. 안식은 도대체 어디에 있지? 


편안한 상태란 무엇일까? 나는 자타공인 불안에 잠식된 인간이다. 작은 티끌에도 어마어마한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면서 있는 걱정 없는 걱정 모두 끌어안고 불안함을 외친다. 주변에서 생각을 좀 그만하라고 조언할 정도인데 그래서 생각을 하지 않으려 해보기도 했다. 아무것도 없는 흰 종이를 생각해보자. 빈 스케치북을 머리로 그려본다. 어린 시절 사용했던 가짜 캐릭터가 그려진 화려한 커버가 있는 그런 스케치북. 한 장을 넘겨보니 지난밤에 그려놓은 것들이 보인다. 이걸 찢어야 하나? 넘겨야 하나? 아유 다시 흰 스케치북을 상상해보자. 흰 페이지를 계속 바라본다. 근데 이게 흰 스케치북을 생각하는 건지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인지 헷갈린다. 계속 흰 페이지를 바라보면 종이의 결까지 보이는 것 같다. 스프링의 색깔은 검은색. 그게 놓인 책상은? 그래. 내 생각을 가리기에 스케치북이 너무 작다. 


이렇게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생각을 안고 살다 보니 불안함을 먹고 우울함이 계속 자라난다. 이게 가만히 아무것도 안 하고 있으면 더욱 커지는데 그래서 바쁘게 몸을 움직이거나 나름의 스케줄을 만들어서 머릿속을 어지럽혀야 한다. 이때 가장 좋은 것이 운동이었는데 이것도 이젠 운동하는 것에 집착하다 보니 운동 안 한 날에 더욱 스트레스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부정적인 생각의 고리가 커지다 못해 이제는 내 모든 사고가 부정에 절여진 거 같았다.


그런데 결국, 이 모든 부정적인 생각은 내 머릿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불안함의 원천은 사실 존재하지 않는 것들이 덩치를 키워서 합리적인 사고를 먹어치운 것이다! 스톱 씽킹의 저자 리처드 칼슨은 '부정적인 생각에 관심을 쏟으면서 계속 그 생각을 할수록, 기분은 더 나빠진다. 부정적인 생각을 하면 우울에 빠지는 길 말고는 그 어디에도 이를 수 없다!'라고 한다. 생각은 관심을 먹고 자라고, 불안은 커진 생각을 타고 점점 더 높게 올라간다. 머릿속을 제어하는 건 나인데, 나보다 불안이 높게 위치하게 되는 것이다. '생각의 주체'가 되는 것, 불안과 우울의 고리를 끊을 수 있는 건 나라는 것을 깨닫는 것이 '스톱씽킹'에서는 가장 강조하는 중점이다. 


'기억하라, 그 생각을 만든 사람은 바로 당신 자신이다!'


이 전에 나를 힘들게 했던 불안함들을 돌이켜보면 (책에서는 과거를 그냥 보내라고 했으니 이 것도 좋지 못한 것일 테지만), 나는 늘 지금의 문제에서 출발해서 발생하지 않은, 발생하지 않을 수 있는 상황들을 상상해서는 미리 고통 속에서 허우적거렸다. 최악을 가늠하고 그때를 방지하기 위해서라기엔 해결할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을 불안해했다. 예를 들어 전세 사기를 당해서 내가 빚쟁이가 되어 골목에 나앉게 되면 어쩌지, 라거나 (물론 요즘 유독 관련 영상이나 게시글이 많이 보이긴 하고 미리 알면 좋을 내용이다.) 업무 중 문제가 생겼을 때 이 이슈로 회사가 나에게 모든 금전적인 피해보상을 요구하면 어쩌지라거나 코로나에 걸려서 내가 무증상 확진자라 회사고 체육관이고 동네방네 퍼뜨린 슈퍼 전파자가 되어 전국민적으로 욕을 먹으면 어쩌지라거나... 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나도 좀 어이가 없을 정도로 웃긴다. 참나.


'고통스럽거나 힘든 일이 일어날 때마다, 그게 아무리 사소한 일이건 상관없이 당신은 최악의 상황을 상상한다. 끔찍한 독감에 걸려서 편도선이 부었다거나, 상사에게 질책을 들었다고 잘릴까 봐 걱정한다거나, 메시지에 답을 하지 않는다고 친구가 더 이상 당신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비관적 생각의 문제는 그 생각이 당신의 기분을 결정한다는 점이다.'


책의 예문들이 내 생각들을 꿰뚫어 주었으니, 그럼 나는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생각의 주체가 되어 파괴적인 상상의 고리에서 벗어나려고 노력은 해봐야겠지. 물론 우울함과 부정적 사고에 대한 책 좀 읽었다고 바로 부정적 사고 멈춰! 하고 생각의 마스터가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여전히 내 MBTI에서 N은 견고하고, 상상의 세계는 넓고, 이제껏 부정적으로 살아온 나날들로 인해 브레이크가 고장난 에잇톤 트럭 같은 상태고, 전세사기는 무섭다. 그래도 생각의 고리가 만들어지는 것을 조금은 인식하게 된 거 같기는 하다. 30여 년을 이렇게 살아왔는데 무 자르듯 단칼에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겠지만, 그래도 부정적인 생각이나 우울이 머리에 들어오는 걸 막을 수는 없어도 불을 지피는 짓은 좀 덜해야지. 


평생 부정적인 태도와 우울을 안고 살아오다 보니 심리학 책들을 보며 '너가 나에 대해 뭘 알아~'하는 마음가짐이 좀 있었는데 그래도 이 책은 나름 나에게 반성할 거리를 준 듯하다. 전체적으로 주려고 하는 메시지가 같다 보니 내용이 좀 반복된다 싶었던 것들도 많았지만 그래도 생각에 파묻힌 나를 인지하게끔 도움을 준 거 같다. 우울하거나 부정적인 상상의 나래가 펼쳐지려고 할 때, 안돼!!라고 외치는 작은 경찰관이 생긴 기분이다. 이름은 리처드라고 지어줘야겠다.


어딘가에서 본 바로는 우울함이 수용성이라는데 샤워를 하면 기분이 훨씬 나아지는 걸 보면 정말 맞는 말 같다. 생각의 고리가 자꾸 꼬리에 꼬리를 무는 상황이 또다시 나타난다면 샤워 한 번 때리자(?). 머리에 헤어팩도 발라주고 거품도 잔뜩 내서 박박 닦아 내면 물과 함께 조금은 고리들이 같이 씻겨가겠지. 샤워도 안 먹히는 생각이라면 플랭크 1분 3라운드 하기. 어후, 상상만 해도 힘들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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