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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태윤 Jun 10. 2021

내가 만난 오지랖

때로는 작은 친절이 사람을 돕는다.

 예전에 재미 삼아 사주를 봤을 때, 사주를 봐주신 분이 나에게 '겨울바다 같은 사람'이라고 표현했다. 재밌는 표현이라 생각해서 친구나 가족들에게 말했을 때 다들 너를 잘 말해주는 표현이라고 했다. 이 표현처럼 나는 내가 생각해도 조금 차가운 사람이긴 하다. 일단 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잘하는 편이지만 끊어야 할 때는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그러면서 원체 낯을 가려서 낯선 사람들과는 말도 잘 섞지 않고 나는 아직 낯선데 다가오는 사람도 좋아하지 않았다. 사람이 바글거리는 곳도 싫고 기본적으로 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다. 조용하고 혼자 있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보다는 동물이 편하고 좋았다. 


 시부모님이 돌아가시면서 그 과정에서 사람과의 갈등도 많았다. 시어머님의 사망 보험금을 노린 친척 어른, 자존심 접고 울면서 부동산 처리 좀 도와달라고 부탁했으나 외면한 부동산 사업을 하는 친척 어른, 힘든 시기 연락도 없다가 결혼 소식을 전하는 사촌들, 사기를 치려 하는 시부모님의 오랜 친구, 장례식 중간에 사장님께 전화를 드려서 근조화환 잘 받았다고 감사인사를 드리라며 연락을 하는 회사 팀장. 사람이 싫어졌다. 무서워졌다. 돈 앞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 사람이 얼마나 무심하고 이기적인지 환멸이 났다.


 그렇게 사람이 싫어서 도망치듯 내려온 곳이 태안이었다. 


 남편이 태안으로 이직을 하면서 나도 10년 가까이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함께 태안으로 내려왔다. 태안으로 내려오는 차 안에서 평생 서울에서 나고자란 내가 시골에서 잘 살 수 있을까 하는 걱정보다 그냥 빨리 여기를 벗어나고 싶었다. 우리를 아무도 모르는 곳에 가서 숨고만 싶었다. 그렇게 도망치듯 내려왔을 때 내 마음은 정말 겨울 바다였다. 황량하고 차갑고 아무것도 없고 파도치는 소리만 나고 찬바람만 쌩쌩 불었다.


 이사 날, 이삿짐센터 사장님이 가구를 옮기고 커튼을 설치하고, 세탁기를 설치해주면서 이런저런 조언을 해주셨다. 이거는 어떻게 하고 저거는 어떻게 하면 좋고, 세탁기에 이런 뾱뾱이 비닐을 두르면 세탁기가 얼지 않고 추운 날씨에 땀을 뻘뻘 흘리시면서도 이사와 하등 상관없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셨다. 또래의 자녀가 있으신 것 같았다. 이사가 처음이라고 하는 자녀 또래의 부부에게 다정한 잔소리를 하셨다. 얼어있던 마음에 따듯한 입김을 하- 분 것 같은 기분이었다. 


 이사 과정에서 장판이 조금 찢어져서 장판 업체를 불렀다. '왜 태안에 왔어요?', '남편이 이직해서요', '잘 왔어요. 저도 원래 서울 살다 태안 내려온 지 10년 됐어요. 여기 정말 살기 좋아요'. 나는 원래 낯선 사람이 나에게 말을 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런데 친절을 담아 호감을 담아 경험을 담아 하는 사장님의 말씀은 이상하게 싫지 않았다. 서울에서도 서비스를 받으면 보통 다 친절했다. 하지만 그와는 조금 다른 친절이었다. 어찌 보면 오지랖일 수 있는 친절. 


 슈퍼에 가는 것도 싫어서 인터넷으로 생필품이나 식품을 구매하다가 우유가 똑 떨어져서 태안에 오고 2주 만에 집 앞 슈퍼를 갔다. 우유랑 과자 몇 개를 집어 카운터에 올렸다. '봉투 100원인데, 봉투 줄까요?', '아니오. 들고 가면 돼요'. 계산을 하던 아주머니는 갑자기 주변을 두리번거리더니 작은 비타민 박스를 가져오셨다. '여기에 넣어가요. 손 시려요'. 


 식당을 가서 조용히 식사를 하는 데, 테이블에 작은 알배추가 담긴 접시를 내려놓으셨다. '알배추랑 먹으면 더 맛있어요' 


 사각, 사각 

 꽁꽁 얼어있던 마음이 사각, 사각 녹아내렸다. 사람으로 인해 받았던 상처들이 조금씩 녹았다. 태안에 내려와서 어찌 보면 오지랖일 수 있는 그런 친절과 참견들이 계속되었다. 놀랍게도 그 작은 친절들이 나와 남편을 치유해줬다. 이제 더 이상 사람이 싫지 않다. 물론 싫은 사람도 있지만 사람 자체가 싫지는 않아졌다. 모두 따듯한 오지랖 덕분이다.


 오지랖. 작은 친절. 누군가에게는 부담되는 행동일 수 있다. 하지만 누군가에게는 꼭 필요했던 도움일 수 있다. 그동안은 목적지만 보고 걸었다면 이제 주변을 둘러보며 걷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친절한 한 마디, 친절한 행동, 오지랖을 부릴 수 있는 상황이 있다면 기꺼이 하기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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