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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무 May 02. 2020

나도 작가다

나의 꿈을 이루다

  고등학교를 졸업한지 36년이다. 내가 문득 고등학교를 졸업한 년도를 헤아리게 된 것은 어제 받은 한통의 전화 때문이다.

어제 내게 전화를 한 친구는 고등학교 때 두 번이나 같은 반을 한 가장 친한 친구여서  지금까지 꾸준히 연락하는 친구다. 고향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고향 밖을 떠나 본적이 없는 그녀는 유일하게 학창시절 친구들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소식통이다.

사실 내 일상이 바쁘다는 이유로 어릴 적 친구들의 안부를 수시로 묻거나 궁금해 하지 않았었다. 그런데 며칠 전 친구중의 한명이 가게를 오픈한 덕에 여럿이 모였나보다.

그때 친구들은 자연스럽게 꿈 많던 학창시절 이야기를 했다고 한다.

‘그 애는 글 쓰는 거 참 잘하지 않았니?’

‘맞아 잘 쓰기도 했지만, 좋아했잖아. 우리 집에 그 애가 써준 편지랑 시랑 아직도 있어’

‘정말? 어떻게 그게 아직도 있어?

‘난, 나중에 그 애가 작가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그래서 버려지지 않았나봐. 신춘문예니 뭐니 그런 거에 관심 가진 것도, 그 애 때문이었어, 나뿐아니고 우리들 거의 그런 게 있는 줄도 몰랐지. 그래서 나중에 나이 먹으면 무슨 작가인지는 몰라도 작가가 되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대충 이런 이야기들이 오갔다고 한다. 여기서 그 애라고, 그녀들이 말한 사람은 당연히 나다.

그런데 지금의 나는 작가 근처에도 가지 못했다.

작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은 졸업과 동시에 기억 속에 묻혔을 거다.

결혼과 동시에 나의 꿈은 가족을 보살피고 아이들 잘 키우는 거 이상은 아무것도 순위에 올려놓은 적이 없으니까.

남들보다 월등하게 아이를 잘 키우지도, 빛이 나도록 야무지게 살림을 해내지도 못하면서, 나의 목표는 우리 가족과 가정 안에서만 머물렀다.

 학교를 졸업하고 결혼 전의 몇 년은, 곧 죽으면 억울하기라도 한사람처럼 미친 듯이, 들로 산으로 여행을 다녔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어 해외로 다니거나 하지는 못했지만, 이름 들어 알만한 산이나 유명관광지는 거의 섭렵을 했다. 물론 그러느라 결혼할 때 빈털터리로 부모님 찬스만을 이용했다.

‘애비가 결혼까지는 시켜주마, 남들처럼 유산은 없다. 결혼시켜 주는 것까지 만이다’

아버지의 이 말씀은, 결혼 할 때 나는 돈 한 푼이 없어도 된다는 이야기로 알아들었다.

그렇게 철이 안든 채로 결혼을 했으니, 앞날에 대한 거창한 꿈이 있을 리 만무했다.

‘지금은 너희들이 시작이니, 도와주지 않지만, 열심히 살면 나중에 집을 살 때쯤이면, 애비가 조금은 도와 주마’

아버지의 이 말씀은 ‘집살 때 한 밑천 떼어 주겠다.’ 로 알아들었다.

그러나 직장을 그만두고 자영업에 도전한 남편의 일이 뜻대로 되지 않아 집을 사는 것은 생각보다 오래 걸렸고, 그사이 아버지의 재산은 아들이 다 해먹었다.

고로 나는 한 밑천은 고사하고, 넉넉하지 못한 부모님이 안스러운 딸이 되어 있었다.

그러는 동안, 나 스스로 인정하기 힘들 만큼의 많은 나이를 먹었다.

누가 나이를 물어보면, 얼른 담백하게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세상에 오십 두 기가 막힌데, 것 두 절반을 훨씬 넘어버렸다.

이러다가 육십이 넘고 칠십이 넘어, 어릴 적 내가 무엇을 하고 싶었는지, 꿈이 무엇이었는지 기억을 더듬다 못해 캐보아도 알 수 없는 순간이 올 것만 같다.

 딸아이가 초등학교 다닐 즈음 ‘엄마, 엄마는 나중에 뭐가 되고 싶어?’라고 물은 적이 있다.

그때 내가 깨달았다면, 아이가 물어 보는 뭐가 내게 있었다면...

이런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런데 오십대 중반을 넘어선 내게 자신감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장사수완이 뛰어나 엄청난 부를 축척할 능력도 없고, 가무가 뛰어난 예술 혼을 지니지 않아 문화계에 뛰어들 끼도 없고, 봉사정신이 투철해 철저히 남을 위한 삶을 살아낼 희생정신도 없다. 할 줄 아는 거라곤 식구들 밥 챙기기, 진부한 드라마 보면서 친구들과 수다 떨기, 강아지 산책시키기, 예쁜 맛 집 찾아다니며 인증샷 남기기...

내가 잘할 수 있는 게 무엇일까? 고민하는 내게, 남편은 100세 시대를 살아갈 준비가 무엇인지 고민해 보라고 한다. 우리가 건강한 상태로 경제적 능력을 갖추고 살아갈 수 있는 날과, 돈을 벌지 못하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날, 혹시 모를 노인성 질환으로 아픈 채로 노후를 보내야 하는 날들...

그러고 보니 어디선가, 들은 이야기가 생각난다.

‘행복하려면 좋아하는 일을 해라,

성공하려면 잘 하는 일을 해라‘

성공은 내게 버거운 일이다. 딱히 잘 하는 것이 없으니...

그렇다면 행복하려면... 정열을 쏟을 만큼 좋아하는 것이 없다.

나는 남다른 성공에도 함량미달, 만족할 만큼 행복해지기에도 함량미달인 셈이다.

이런 삶의 나태함으로 그날이 그날인 날들을 보내고 있는 내게 어릴 적 내가 좋아하던 것, 그나마 잘한다고 주변에서 추켜세워 주던 일이 무엇인지 알려준 친구의 전화는 진지하게 노후를 준비해야 하는 숙제 중 가장 큰 주제를 던져 주었다.

남들보다 잘한다는 의미에서는 자신이 없지만, 좋아한다는 의미를 부여한다면, 좀 더 행복해 질수 있으리라.

100세 시대를 산다면 난, 이제 반환점을 돌아 조금 더 지났을 뿐이다.

체력관리를 엄청 잘해 꼭 100세까지 살 자신은 없지만 통계적으로 그 가까운 나이까지 산다면, 실제 남은 내 인생이 결코 짧지만은 않다.

따라서, 나는 나중에 무엇이 될까? 꿈을 가지는 것이 옳다.

그동안 수없이 ‘지금 이 나이에...’ 를 되새김질 하면서, 무엇을 하지도 않고 할 엄두도 내지 못하던 내게, 토닥토닥 격려의 의미로 내 안에 있는 그 무엇을 위해 시작을 해보고 싶다.

우리 586세대들이 결실을 맺는 나이로 결론짓는 순간은 지나가길 바란다.

나와 같은 586세대가 또 다른 인생의 시작을 준비하는 시간이 되길 바란다.

왜냐 하면, 나는 지금 준비하고, 준비가 모자라더라도 시작하고 싶기 때문이다.

아마 상처투성이 일지도 모른다. 나의 오십년 넘는 인생이 보잘 것 없음을 인정하는 순간을 만나는 계기가 되어서 일수도 있고, 나의 시작이 너무나 빈약해 알아주는 사람이 없어서 일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누군가 나를 알아주는 것에 상관없이 즐길 수 있음을 스스로 인지해야 한다. 자기만족 상태를 기꺼이 받아들여야 함에는 두말이 필요치 않다.

감히 ‘작가’가 될 것이다. 나 혼자 수십 번, 수백 번을 읽어도 개의치 않는 여유로 내가 가장 잘 표현하고 쓰고 싶은 순간들을 글로 옮기는 ‘작가’가 될 것이다.

그것은 내 꿈이고, 내가 좋아하는 것이고, 살아가는 동안 가장 큰 행복을 가져다 줄 일이기 때문이다.

사실 멋진 상상력으로, 냉철한 통찰력을 가지고 세상을 들썩이는 작품을 쓰는 것은 불가능함을 알고 있다. 그러나 따뜻한 시선으로 아니면 다분히 평범하고 주관적인 시선으로 사람들을 관찰하고 지극히 객관적이지 못함으로써, 공감할 만한 이야기를 쓸 자신은 있다.

유난히 아이들을 좋아해 그들의 시선에서 보는 이야기에도 관심이 많으며, 타의 추종을 불사할 만큼, 철없는 남편을 만난 내공을 자산으로, 어이없고, 답답하며, 재미나게 철없이 사는 그 자들의 이야기를 나열할 자신이 있으며, 나를 스치며 인연을 맺은 많은 이들, 그들의 인생에서는 주연인, 지극히 평범하나 독보적인 스토리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를 지루하지 않게 쓸 감각을 자신한다.

그러므로 나는 주관적인 측면에서 가장 애정이 넘치는 작가다.

나는 다소 억지스럽고 모자란 ‘나’라는 작가의 가장 열렬한 독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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