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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무 May 02. 2020

노브라 챌린지

노브라 챌린지...임현주 아나운서...그리고 아줌마...

    

“1겹의 속옷을 뛰어 넘으면 훨씬 더 자유로울 수 있습니다”

노브라 챌린지를 경험한, 임현주 아나운서, 그녀의 말이다.

그녀가 ‘기생충’ 봉준호 감독의 수상소감을 빗대어 쓴 그 글을 읽으면서 약간의 웃음이 났다.

나는 그냥 오십이 훨씬 넘은 아줌마다.

성인지 감수성이 어떻고, 여성의 담대한 도전이 어떻고 하는 것에 큰 관심 없이 살아왔고 아마 앞으로도 큰 관심이 없을지도 모른다.

 중학교 1학년, 14살 소녀시절 처음 브래이지어를 했다. 요즘처럼 주니어용 이라 하여 작은 사이즈가 있지도 않았거니와 금방 자라날 딸아이의 체형을 생각하여 엄마는 내 몸체보다 큰 브래이지어를 2개 사오셨다. 뒤에 달린 후크를 잠그어도 빙 돌아가는 것이 영 못마땅한 나는 너무 크다고 투덜댔다. 엄마는 금방 맞는다고 가슴이 나오기 시작하면 금방이라고 귀뚱으로 듣지도 않으셨다.

나와 브래이지어와의 첫 만남의 순간이 그리 좋은 기억은 아니었다.

교복안에 낯설기만 한 브래이지어를 하고 학교를 갈때면 이리 저리 지 맘대로 돌아다니고 끈이 흘러내리고 흘러내린 끈을 미처 인지하지 못해 칠칠맞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들이 있다.

그 첫 만남이후, 42년 가까이 브래이지어를 하지 않고 외출을 해 본적이 없다.

그것은 마치 팬티와 같이 내몸의 일부로 동일시 되어 그것을 하지 않는 외출은 생각이나 꿈에서조차 가능하다고 여긴 적이 없으니까.

그런데 몇 년 전부터인지 간간히 방송에서 노브라 어쩌구 저쩌구 하는 말을이 나오는 것을 봤다.

그냥 그런 이야기가 있나보다. 아무 이야기려니 하고 관심이 없었다.

 새벽에 가게 문을 여는 나는 비몽사몽간에 집에서 나온다. 그날도 정신없이 화장실로 안방으로 뛰어다니다가 미친 여자처럼 가게로 돌진했다.

주섬주섬 장사 준비를 하고 가게 문을 여니 손님이 들이닥쳐 한 시간 정도 흘렀을 때였다.

뭔지 모를 어색함이 나의 몸을 감싸고 있었다. 왜 어색한지 뭐가 잘못되었는지 이 불편한 느낌이 무엇인지 깨닫는데 그리 오랜 시간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나의 몸 상태가 노브라였다.

세상에나... 브라를 안했다.

내 인생에서 브래이지어를 하지 않고 집밖을 나온 날이 있던가?

그때부터 나는 안절부절 상태로 돌입했다. 손님이 오면 내 가슴을 쳐다보나 싶어 내가먼저 고개가 숙여지고, 딱 달라붙는 옷을 입지도 않았는데 옷을 펄럭펄럭여 보고 고개를 똑바로 들지도 못하고, 도대체 편칠 않았다.

그렇다고 가게 문을 닫고 브래이지어를 가지러 갔다 올 수도 없는 일이고, 가까운데서 살 수 있는 상황도 못되었다. 아무튼 정신없이 오전이 지나가고 알바생이 왔다. 그런데 그 몇시간 동안 나는 어색함을 살짝 잊었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편안함이 느껴졌다. 알바생을 한쪽으로 끌고 와서 내가 오늘 처한 상황을 이야기 하며 표가 나냐고 물었다

알바생이 웃으며 “표 하나도 안나요. 사장님 말 안했으면 저 오늘 끝까지 몰랐을 걸요?”

그런데 묘하게 ‘사람들이 아줌마한테 관심이나 있는 줄 아나?’이렇게 속으로 말하는 표정인거 같았다.

알바생이 오면 얼른 집에 가서 하고 나와야지 했던 내 마음이 바뀌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하루를 온전히 보냈다.

나 혼자 아침에 허둥대고 부끄러워하며 보낸 시간이 우스워졌다. 순간순간 노브라의 감각은

‘내가 화장을 안했나?’

‘바지 지퍼가 내려갔나?’

‘머리를 안 빗었나?’ 하는 일상의 결함을 경험할 때의 부자연스러움과 같았다.

그래 이거야! 라고 꼬집기 힘든 부자연스러움이 나의 하루를 지배했다.

그 낯선 감정이 편안함으로 안착한다는 것 자체가 새로운 경험이었다.

그리고, 생각해 본다.

누구를 위한 것일까?

누가 정해 놓은 것일까?

왜 거부하지 못했던 것일까?

모르겠다. 이런 질문 자체가 나의 감성을 건드리는 존재감을 가지고 있는지...

브래지어에 어떤 의미를 부여하는 시대는 갔다.

불편하면 하지 않아도 무방한 가치를 지녔으면 좋겠다.

어린 시절 가정선생님은 말씀하셨다.

“브래지어를 하지 않는 여성은 예의를 갖추지 않은 정숙하지 못한 여성이다”라고.

지금은 칠십대 후반쯤 되었을 그 선생님은 아직도 그렇게 생각 하실 거다.

팔십 삼세의 우리 엄마도 브래지어를 하지 않으면 옷을 갖춰 입지 않았다고 생각하시니까.

나는 페미니즘이나 젠더라는 언어에 별 관심도 두지 않았거니와 옹호하지는 않지만.

나보다 더 오랜 세월을 살아갈 여성들이 자유롭기를 빈다.

그들의 노브라 시대를 응원한다.

별로 의미를 부여 하고 싶지 않은 것으로부터 여성이라는 이유로 갇혀 지내는 걸 원치 않는다.   

#노브라

#임현주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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