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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꾸꾸 Oct 13. 2023

출판 마케터가 되었습니다 (4)

부산 '창비 편집자 학교'는 2022년 여름 동안 진행됐다. 여러 창비 관계자 분들이 강사로 오셔 수강생에게 편집, 마케팅, 디자인 등의 강의를 해주는 형식이었다.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며 많이 배우기도 하는 스타일이라, 같은 업종을 준비하는 사람들끼리의 네트워크도 바랐는데 그 부분은 쉽게 이뤄지지 않을 것 같아 보였다. 그래서 스터디를 만들었다. 이름하야 '편집자 준비생들을 위한 출판 스터디'. 편집자 지망생 총 6명(후에 5명으로 오랫동안 함께 했다)이 모여 매주 읽은 책을 바탕으로 서평을 써오고 서로의 글을 피드백한다. 맞춤법 공부도 인증하고 칼럼을 지정해 분석하기도 한다. 읽은 책의 보도자료도 써보고, 책 관련 인스타그램을 각자 운영하는 숙제도 낸다. 그냥 출판사 취업을 위한 모든 것을 함께 했다고 보면 된다. 우리는 김해, 울산, 부산, 기장 등 각기 다양한 지역에서 창비부산이 있는 부산역 근처로 모여 매주 치열하게 스터디에 임했다. 지금 돌이켜 보면 그립지는 않지만 아주 치열했기에 훈훈하게 남아 있는 시간이다.


'창비 편집자 학교'는 창비부산에서 진행됐다. 그리고 그곳은 나의 옛 일터였기도 하다. 나는 초창기부터 꽤 오랫동안 일을 했다. 그 인연으로 편집자 학교도 소식을 빠르게 들을 수 있었다. 나의 예전 상사셨던, 편집자인 팀장님은 편집자 학교의 담임교사로 수강생들을 관리해 주셨다. 여러 가지 많이 도와주신 덕에 편집자 학교가 잘 끝날 수 있었던 것 같기도. 어쨌든 같이 일을 한 사이자, 담임교사이기도 하셨던 팀장님은 우리 스터디 전담 멘토처럼 많은 걸 도와주셨다. 서평 피드백, 자소서 피드백, 기타 피드백과 상담 등. 사실 팀장님 없이 우리가 그렇게 잘 방향을 잡아갈 수 있었을까? 생각하면 아닌 듯하다. 아주 꼼꼼하신 분이라 서투른 우리가 배울 부분이 많았고, 잘 가르쳐주셨다. (대신 피드백을 받는 날은 창비부산에서 거의 하루종일 살다시피 했지만,,)


2022년 10월 중순부터였던가, 그즈음부터 12월까지 다들 자소서를 완성하는 데 혈안이었다. 동종업계지만 서로의 자소서를 공개하고 나름 날카롭게 피드백하며 서로의 서류를 만들어갔다. 팀장님도 바쁘신 와중에 우리의 피드백을 다 봐주셨다. 그렇게 고치고 또 고치고 또또 고쳐도 계속 고칠 게 생기던 자소서. 정말 정말 힘든 시간이었다. 와중에 친구들과 여수 여행을 갔는데 채용 공고가 떠 여행 가서 피드백을 듣고 전면 갈아엎었던 기억도 난다. 아마 모든 취준생이 그런 힘든 시기를 보내리라. 그런데 나는 도통 이 '편집자 자소서'에 확신을 못 가지겠는 것이다. 왠지 정말 문법적, 글로서 완벽해야 할 것 같고. 그 완벽해야 할 것 같은 부담감이 너무 버거웠다. 어찌저찌 완성시켜 내봐도 서류를 통과하지 못하니, 갈수록 이게 맞나 싶기만 했다. 그런데 어느 날 팀장님이 내게 한 말씀을 해주신다.


"OO 씨는 홍보 마케팅 쪽도 잘 어울릴 것 같아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 말이 나에게 하나의 빛을 줬던 것 같다. 그리고 나는 그 이후로 과감하게 진로 방향성을 바꿨다. 편집자에서 마케터로. 사실 이전부터 꿈꿔왔던 직업은 마케터였다. 그렇지만 마케터가 되기 위해 필요되는 역량이 무서워 도망쳤을 뿐. 편집자 자소서 쓰기를 놔두고, 마케터 자소서를 썼다. 글의 부담감에서 조금은 벗어난 듯한, 왠지 그래도 되지 않을까 싶은 마음이 오히려 긍정적으로 작용했다. 더 수월하게 썼던 것 같다.


근데 정말 신기하고도 웃긴 것이, 마케터 자소서를 완성하고 이리저리 넣었는데 턱턱 붙는 거다! 그때 생각했다. 아, 나는 마케터를 해야 하는 사람이었구나. 나는 마케터와 맞는 사람이었구나. 나를 아는 것은 취준 과정에서 필수적인 것 같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아는 나'를 외면하지 않는 것. 과감히 부딪혀보는 것. 그게 나의 취업 성공 비결이지 않을까. 조금은 돌아왔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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