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아버지 조금 전에 돌아가셨대"
"비행기 표가 없어. 제일 빠른 게 밤 8시 출발이네. 어떻게든 빨리 올라가 볼게"
아빠는 삼 남매 중 둘째로 위로는 네 살 터울의 누나, 아래로는 여섯 살 터울의 남동생을 두셨다.
할아버지는 6.25 전쟁이 나던 무렵 돌아가셨고, 할머니는 몇 해 뒤 재가를 하셨는데, 아빠는 국민학교 졸업도 못하고 동생인 작은아버지를 데리고 무작정 서울로 상경하셨다. 할머니는 말년에 중풍에 걸리셨는데, 내가 태어나던 해 즈음에 우리 집으로 아빠가 모셔 오셨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엄마가 온갖 병수발을 다 하셨다고 한다. 치매에 걸리시긴 했어도 나를 무척이나 예뻐해 주셨다고 하는데, 나에게는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전혀 없다.
아버지에게 작은아버지는 동생이라기보다는 아들과 같은 존재였고, 작은아버지도 생전에 형님을 아버지처럼 믿고 따랐다는 말씀을 자주 하셨다. 우리 형제들의 졸업사진, 나의 군대 첫 면회, 결혼식과 크고 작은 경조사. 사진 속 작은아버지는 항상 활짝 웃고 계신다.
81세의 나이가 무색할 만큼 건강하셨던 작은 아버지는 한 달 전에도 조기 축구는 물론이고 자전거도 타고 다니실 정도로 정정하셨다. 지난 설날, 아빠에게 인사하러 오신다고 했다가, 몸이 좀 안 좋다며 다음에 오시겠다고 하셨다는데, 그 후 찾은 종합병원에서 폐암과 간암 말기 진단을 받으셨고, 호스피스 병동으로 옮기신 뒤 열흘 만에 돌아가셨다.
죽음을 받아들이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을까, 작은 아버지는 면회를 원하지 않으셨다. 당신의 수척한 모습을 남에게 보이기 극도로 싫어하셨고, 먼 친척들에게는 연락도 하지 말라고 하셨는데, 그래도 마지막까지 아빠는 꼭 보고 싶다 하셨다. 임종 전날, 아빠가 "너 나보다 먼저 가면 안 돼"라고 하시자, 며칠 동안 한 말씀도 못하시던 작은 아버지가 산소호흡기 너머로 힘들게 "네"라고 대답하셨다고 한다.
입관식. 이제 마지막으로 작은아버지 얼굴을 볼 수 있는 시간이다.
장례지도사는 입관 전, 아직 고인의 귀는 열려 있으니 마지막으로 하시고 싶은 말씀을 전하라고 한다. 차가운 작은아버지의 뺨에 두 손을 올렸다.
"작은아버지. 너무 늦게 와서 죄송해요. 아빠 걱정은 하지 마시고, 작은엄마랑 큰 형 만나서 그곳에서 편안하게 지내세요. 동생이랑 누나는 우리 가족이 잘 챙길게요. 안녕히 가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