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우리 딸이 당당하게 살았으면 좋겠어.
각종 매체에서 본 ‘영업’은 어딘가 모르게 쓸쓸했다. ‘영업은 왜 항상 저런 이미지일까?’ 나는 짐작할 수 없는 그들의 이야기를 가끔 상상해보곤 했다. 그러다가 이렇게 결론 내렸다. 영업이란, 타인의 구매로 성공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에 때때로 쓸쓸한 것이라고. 가끔 마음에 없는 소리를 해야 하고, 단순 내 능력만으로 완성되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어렸던 나는 왜 그렇게 영업하는 사람들에게 마음이 향했을까. 생각해 보면 결국 신지민 때문이었다. 자신의 가게를 운영하는 신지민을 무의식적으로 떠올렸던 것이다. 신지민도 가끔 저렇게 쓸쓸한 순간이 있을까. 그러지 않기를 바랐지만 장담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척 지쳐 있는 엄마가 보였다. 엄마는 이렇게 말했다. “누군가에게 을이 되어 본 적이 없어서 순수할 수 있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워.”
당시에는 정확히 이해하지 못했다. 문장을 곱씹으면서 결국 엄마도 씁쓸한 순간이 있었구나 하고 짐작했다. 내 눈에는 항상 당당해 보였던 그녀도 결국 물건을 파는 동안 스스로 을이라고 느낀 순간이 있었구나 하고 짐작했다.
“딸에게 인생 선배로서 한 가지를 조언할 수 있다면, 어떤 말을 하고 싶은가요?”
질문이 어려웠던 건지 신지민은 한참 동안 대답하지 못했다. 그리고 웃으며 이렇게 대답했다.
“어차피 우리 딸은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살거라 조언할 필요가 없는데? (웃음) 엉망진창으로 산다는 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잘 고민하면서 자기한테 어울리는 선택을 잘 내릴 거라는 의미야.”
감동적이긴 했으나 내가 원했던 대답은 아니었다. 나는 신지민의 조언이 궁금했고, 그래서 집요하게 계속 질문했다. 그랬더니 예상외의 대답이 나왔다.
“나는 우리 딸이 멋지게 살았으면 좋겠어. 그러니까 항상 당당함을 잃지 않고, 비굴하지 않으며 양심적으로 살았으면 좋겠어.”
사실 나는 신지민을 항상 저런 식으로 설명했었다. 영업하는 입장임에도 불구하고 항상 당당하고, 비굴하지 않으며, 양심을 어기지 않는 사람, 그게 바로 신지민이었다.
아마 20년이 넘는 시간 동안 자신의 가게를 꾸리면서 자주 을이 되어야 했던 그녀는 스스로 다짐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내가 물건을 팔지언정, 양심을 팔지는 말아야지. 물건을 팔아야 생계를 유지할 수 있을지언정, 필요 없는 걸 구매하라고 하진 말아야지.
그렇게 그녀는 스스로의 품격을 만들었다. 스스로에게 당당했기에 다른 사람들에게 기죽지 않을 수 있었다. 상황이 어떻든 누구도 그녀를 무시할 수 없었다. 스스로에게 떳떳할 수 있는 사람이 가진 아우라를 나는 그녀를 통해서 보았다.
“딸아, 내 이득을 위해서 비겁하게 살지 말아라. 돈이 중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에게 얼마나 떳떳할 수 있는지가 중요하다. 작은 것에 집착하느라 스스로에게 부끄러운 일을 하지는 말아라.”
앞으로 작은 욕심이 생길 때면 그녀의 말이 떠오를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