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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봄날 Jun 21. 2023

엄마를 인터뷰하다 (1)

나도 한 직업만 오래도록 좇고 싶었어

티비에 나와 인터뷰하는 사람들을 볼 때마다 나는 항상 이런 생각을 했다. “우리 엄마도 참 멋진 사람인데 왜 아무도 인터뷰하지 않지?” 물론 우리 엄마는 세상이 말하는 성공한 삶을 살고 있지도 않고, 이렇다 할 멋진 스토리를 가진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여전히 멋진 사람이다. 특별하지 않지만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사는 사람. 어쩌면 성공한 사람보다 더 멋진 삶의 철학을 가진 그런 사람이다.


주변을 둘러보면 그런 사람들이 많았다. 세탁소 사장님이 그랬고, 택시 기사님이 그랬다. 학교에서 만난 선생님이 그랬고, 공항 직원분이 그랬다.


그래서 거창한 성공 신화를 가진 사람들의 이야기 말고, 일상의 영웅들을  기록해보려고 한다. 하루하루를 최선을 다하는, 각자의 인생철학을 가진 사람들. 그리고 그 시작을 우리 엄마 신지민 이야기로 해보려고 한다.






인간 신지민의 이야기 (1) 나도 한 직업을 오래도록 좇고 싶었어.


신지민은 참 우여곡절 많은 인생을 살아왔다. 어린 나이에 어떤 남자를 만나 결혼했고, 아이 3명을 키웠다. 책임감 없었던 남편 탓에 연고 없는 작은 도시에서 사업을 하며 온 가족의 생계를 책임져야 했다. 그래서 다양한 직업을 가질 수밖에 없었다.


누구는 신지민을 보며 이것저것 다 하는 욕심 많은 사람이라고 하기도 했고, 또 누구는 한 가지 일을 오래 못하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하기도 했다.


그 말을 들으면서 신지민은 참 속상했다고 한다. 그녀는 수많은 자기 직업 중에서 ‘옷가게 사장님’을 가장 사랑했다. 사실 딸의 입장이 아니라 객관적인 시선으로 보아도 그녀의 패션 센스는 무척 훌륭하다. 덕분에 오랜 단골들도 많고, 충분한 돈을 벌 수 있었다.


하지만 상황이 늘 좋은 것은 아니었다. 갑자기 동네에 옷가게가 잔뜩 생기기도 했고, 소비가 꽁꽁 얼어붙는 시즌도 있었다. 또 아이들을 혼자 돌보면서 일주일에 한 번, 1박 2일 간 서울로 가는 것도 쉽지 않았다.


그녀는 그녀의 꿈을 진심으로 사랑했으나, 꿈만을 좇기에는 현실이 녹녹지 않았다. 그래서 다른 부업들을 시작했다. 그리고 그 부업들이 옷가게보다 큰 수익을 주기 시작했을 때, 그녀는 자신의 꿈을 미뤄두어야 했다.




“나는 다른 사람이 뭐라고 말하든 그때의 내 선택을 후회하지 않아. 그때의 나는 최선의 선택을 했으니까.”


사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화가 났다. 아무것도 모르면서 쉽게 이야기하는 사람들에게 화가 났고, 책임감 없는 그녀의 남편에게 화가 났다.


하지만 신지민은 웃으면서 말했다. “우리 딸이 알아주니 고맙네.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돼. 어차피 그 사람들의 생각은 중요하지 않으니까.”


신지민은 이런 사람이다. 자신의 선택을 후회하고 자신이 얻지 못한 것들을 상상하며 슬퍼하기보다 과거의 선택을 존중하고, 그랬어야 했던 자신의 과거를 인정해 주는 사람이다. 그리고 자신의 선택에 최선을 다해 어떻게든 생활을 일구는 사람이다.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며 무기력에 빠지는 사람들을 볼 때면 나는 신지민을 떠올린다. 자신의 처지를 인정하고 자기에게 맞는 선택을 내린 뒤, 그 선택에 최선을 다하며 살아가는 신지민을 떠올린다. 평생 그녀를 보며 자랐기 때문에 하루하루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 일상이 되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녀는 요즘 작은 바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가게 한편 쇼룸을 꾸려 ‘옷가게 사장님’이라는 꿈을 유지하고 있다. 오랜 단골들만이 찾는 작은 쇼룸이 되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그 사람들 속에서 <동네 최고의 패셔니스타 사장님>이라는 타이틀을 유지하고 있다.


한 번은 신지민이 옷을 파는 광경을 보았는데, 옷을 파는 입장이 맞나 싶었다. “그건 너한테 안 어울리지. 언제쯤 언니 패션 센스를 배울 거야. 응?” 솔직한 매력을 뽐내며 손님들을 진두지휘하고 있었던 것이다.


손님들 사이에서 그녀는 신교주로 불린다. 교주님 말을 잘 들으면 나에게 맞는 옷을 합리적으로 구매해 오래 입을 수 있다는 이유 때문이다.


신교주는 좀 더 나이가 들면, 수익에 연연하지 않고 행복한 옷가게를 꾸리고 싶다고 했다. 당장은 바를 운영해 생계를 유지해야 하지만 언젠가 여유가 생기면 옷가게를 다시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나는 그녀가 언젠가 그 꿈을 이룰 거라고 믿는다. 0에서 1을 만드는 것은 언제나 그녀가 가장 잘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나는 벌써부터 그 가게가 그려진다. 그리고 그 속에서 행복하게 웃고 있는 신지민이 그려진다.

 그녀의 행복한 미래를 온 마음 다해 응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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