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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쌍쌍바 Nov 09. 2023

맥이 살아났습니다

힘들었던 오랜 직장생활을 끝을 내고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길었던 2년의 해외 살이를 했다. 한국으로 돌아와 '역시 내 나라가 좋구나' 도 한계절 정도. 육아와 살림이란 참으로 반복적이고 해도해도 티나지 않는 일이다. 이런 생활이 몇년간 계속되다 보니 한번 늘어져 좀처럼 탄력이 살아나지 않는 고무줄 마냥 일상이 느슨해졌다. 그 굴레에서 벗어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에게 감성이라는 게 존재는 하는걸까? 듣고 싶은 노래를 찾아 듣기 보다 들리는 노래를 들을 뿐이고 가고 싶은 곳을 가는 일 보다 가야 하는 곳을 향하는 일이 더 많았다.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별 감흥이 느껴지지 않은지 오래. 무딘 칼 같았다. 오랫동안 갈지 않아 무얼 썰어도 잘 들지 않는 그런 녹슨 칼 말이다.  

 


가끔 외출이라는 걸 해보지만 그 만남 속 대화에는 그저 아이, 남편, 부모님, 지인 심지어 지인의 지인 이야기뿐, 내 이야기는 없었다. '나 도대체 어떻게 살고 있는거니' 딱히 불행하다고 할 순 없지만 행복하지도 않은 시간들이 차곡차곡 쌓여 나를 망가뜨리고 있는 불안한 느낌.

긴박한 응급실 안, 심장박동 체크하는 모니터에서 들리는 소리.

'삐 이 --'

미동 없는 한줄 처럼 내 감성의 맥박은 뛰지 않았다.


그때 심폐소생기 처럼 나타난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 

그렇게 맥이 살아났다.

메마르고 까슬까슬한 정서에 촉촉한 단비가 내렸다.

꾸역꾸역 볼 가득히 입에 넣은 카스테라에 우유 같은 존재.

나에게 브런치 프로젝트가 그렇다.



<책 빌려 돌아오는 길 - 이번 프로젝트를 지원하지 않았다면 만나지 못했을 모과 친구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지 4주가 흘렀다.

아직 매일 읽고 쓰고 운동하는 삶 까지는 아니다.(그런 경지에 이른다면 난 아마 여기에 없을지도) 

우선, 매일 읽는 나를 실천해 보려고 도서관 대출증을 만들었다. 아들과 남편 것 까지. 도서관 문턱이 닳토록 다녔다 하면 오버이고 익숙하게 다닌다.

도서관에 없는 책들은 온라인 구매를 하고 있는데 이런... 언제 다 읽지? 점점 쌓여가는 책들을 째려보게 된다. 덕분에 우리집 앵겔지수가 살~짝 낮아진듯도 하고.


브런치에 첫 글을 발행하고 든 생각이 '기분 좋은 스트레스라는 게 이런거였군' 이다.

정해진 기간 안에 글을 써야 한다는 것, 생각 보다 스트레스가 상당했다. 멀티라고는 재채기 하면서 티슈 뽑기 정도 밖에 못하는 나에게 살림 하면서 글도 쓰라는 건...

그러다 보니 아이 식사 때 놓치는 일이 빈번하고 빨리 안자는 녀석 붙들고 꾸지람 하기 일쑤다.

서커스에서 재주 없는 곰이 공 굴리다 자빠져 성 내는 격이다. 그런데 그런 상황들이 결코 나쁘지만은 않다. 은근 기분 좋은 스트레스랄까.




기분 좋은 스트레스 또 하나. 사람 만나는 일이다. 극 I 내향형 최고봉인 내가 그렇게 생각하게 된건 '글감' 이라는 긍정적인 부분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대화 속에서 하다 못해 그날 입고 나온 상대방의 옷차림으로도 글감을 얻을 수 있는 운수 좋은 날. 그렇게 사람 만나는 일이 즐거운 스트레스가 되었다. 덕분에 요즘은 친구들과의 대화에 귀 기울이는 나를 발견하곤 한다. 나이가 들어 만나니 자기 할말 먼저 요란하게 떠드는 친구들이 많아졌다. 20대 때 그런 아줌마 부대들을 보면 인상 부터 찌푸렸던 사람이 나였다. 요즘엔 친구들의 쏟아붓는 사연들을 하나하나 귀담아 듣는다. 관심사가 달라도 듣는 귀를 화-알짝 열어놓으니 그동안 시끄럽게만 느껴졌던 친구가 달리 보였다. 내가 언제 이 친구의 얼굴을 이렇게 섬세히 살펴보고 하소연을 귀 담아 들어봤던가.  

친정 아빠와 다투고 하신 친정 엄마와의 통화도 마찬가지다. 체육 시간에 상대편의 반칙으로 졌다고 툴툴대는 아들 녀석의 하소연 까지도 이제는 귀에 쏙쏙 박힌다. 남편의 말은 아직 절반은 한귀로 빠져 나간다. 남편 미안. 듣는 귀가 열린다는 건 한편으로는 피곤한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는 요즘 글감을 줍줍 하고 있다. 감사한 일이다.




계절의 변화가 없는 나라에서 2년을 살았었다. 한국에 있을 때는 몰랐는데 1년 365일 같은 계절이라는게 한편으로는 참 무서운거란 걸 느꼈다. 한 해가 어찌 가는지 모르겠더라. 시간이 두배로 빨리 가는 듯 해서 자다가 '앗! 내일이 내 환갑이네' 하며 눈 번쩍 뜰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시간의 소중함. 이번 슬초 브런치 프로젝트를 하면서 시간을 구체적으로 아껴 쓰게 됐다. 

그간 흘려 보내는 물처럼 펑펑 썼다면 요즘은 시간 단위로 각별히 쪼개서 쓰고 있다. 분 단위로 나누는 고수가 됐을 때 나란 사람, 뭐라도 되어 있겠지? 


틈틈이 메모하는 습관도 생겼다.

덕분에 수두룩 모아놓은 우리집 이면지들이 제 몫을 다 하고 있어 얼마나 흐믓한지 모른다. 자다가도 일어나 기록 할 만큼의 열정은 아직 부족하다. 나의 한계다.

책상에서 꼼짝않고 메모하는 내 모습에 남편과 아들은 낯설었던 모양이다. 별 용건도 없으면서 수시로 내가 있는 방에 들락날락거린다. '저러다 한 소리 듣지 싶다' 그러고 보니 가족의 지나친 관심도 4주 동안 바뀐 변화 중 하나다.




브런치 작가의 길. 

나는 가랑비에 옷 젖듯 천천히 스며들고 싶다. 지난 수년간 워낙에 바싹 메말라 있던 감성이었던지라 활활 타오르기 까지 오랜 시간이 걸릴 것 같다. 아니 분명 오래 걸린다.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낸다면 나는 다시 4주 전 나, 맥이 뛰지 않는 나로 되돌아 갈 것이다. 그러면 안되겠지? 

나에게는 2기 동기들이 있다. 열정 한가득인 그들과 목표까지 달리는 속도는 다를 수 있다. 하지만 각자의 결과에 함께 기뻐하고 때론 위로의 힘을 보태며 달리고 싶다. 

두려움과 설레임이 공존하는 이 길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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