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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굴욕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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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유미 May 31. 2024

굴욕 일기



아침에 일어나며 기지개를 켜다 뜨끔 어깨가 결리는 기분이 들었다. 똑바로 서보니 이미 고개가 앞으로 한 뼘쯤 쑥 빠져있었다. 몇 년 전 엄마가 기침하다 갈비뼈에 금이 갔다고 했을 때 사람 몸이 이렇게 허술할 수 있나 싶었는데 지금 벌써 이러는 나는 나중에 엄마 나이가 됐을 때쯤 기침을 하려면 목숨을 걸어야 될지도 모르겠다 싶다.


진료마감시간에 임박해서 동네 정형외과에 갔다. 하루 종일 여기 아프고 저기 아픈 환자들에 시달리고도 의사는 새로운 환자만 보면 손봐줄 생각에 힘이 나는 건지 진료실에 들어서는 나를 보고 신나 보였다. 흥얼거리는 콧노래를 들은 듯한 착각을 느끼며 의자에 엉거주춤 엉덩이를 걸치려는데 자기 사정이 얼마나 급했는지 의사가 못 참고 먼저 입을 열었다.


“에헤, 운동을 안 해서 그래요.”

“네?”

“어디가 아픈데요?”

“어깨랑 목이요.”

“그러니까. 운동을 안 해서 그런 거죠.”

“......”


진찰을 하기도 전에 먼저 처방을 내리는 신기에 가까운 진료기술을 가진 그는 나중에 나의 척추사진을 보고는 거봐, 거봐 라며 더 신바람을 냈다.


“일자 목 조금 있는 거 말고는 척추상태 괜찮아요. 많이 먹는 게 정 힘들면 단백질 파우더라도 퍼먹으세요.”

“그리고 요가보다 근력운동을 하셔야 해요. 죽죽 늘리기보다 버티기를 하셔야 됩니다.”


병원에서 쭈그러들다 못해 삼체인처럼 급속 탈수인간이 되었다가 병원 밖 공기를 마시고 나서야 다시 소생한 나를 남편이 헬스장으로 끌고 갔다.

그래도 지금보다 몸 상태가 괜찮았던 30대 때 PT를 받다 무릎이 아작 나서 병원 신세를 졌던 안 좋은 기억만 가득한 곳에 내 발로 걸어 들어갔다.

처참한 인바디 결과지를 쥐고 운동시간을 예약하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아픈 어깨가 아예 빠져버렸는지 축 늘어졌다.


이제 트레이너에게 경악을, 내게 굴욕을 안겨줄 시간이 닥쳤다.

예전에 이웃 자경작가님께 사인받은 책에 적혀있는 글귀가 떠올랐다.

'유미님, 원하는 게 있으면 체력을 먼저 기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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